등록 : 2017.08.30 19:32
수정 : 2017.08.30 19:46
|
그래픽 홍종길 기자
|
[ESC] 헐~
|
그래픽 홍종길 기자
|
아마 지난해 이맘때였을 거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손등에 난 털들이 움찔거린다. 내가 엽기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될 뻔한 사연은 이랬다.
일단 우리 가족을 소개하면 나를 100% 믿는 순둥이 아내와 어른이 되면 꼭 나비가 되고 싶다는 5살 아들, 그리고 직장생활 16년 차 나다. 휴가철은 지났지만 더위는 여전히 남아 있어 늦게라도 더위를 피해 보겠다고 아들의 100가지 소원 미션 중 하나인 ‘○○랜드’에 가기로 했다. 지구의 사람이 사라진 듯 도로는 텅텅 비어 있어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바로 놀이기구를 타기에는 출출했다. 아내의 눈빛을 순간 포착하고는 놀이동산 안에 있는 분식점으로 고! 고!
역시 간식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어묵과 떡볶이다. 그리고 그 사촌동생 격인 순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1인분씩 시켜 놓고 주문표를 받아 쥐고는 그늘진 테이블에 앉아 룰루랄라 순번을 기다렸다. 이윽고 어묵과 떡볶이 그리고 간장 종지가 나왔다. 종지에는 파와 양파 사이로 청양고추가 사이좋게 송송 썰어져 있는 고운 빛깔 양념간장이 있었다. 내가 어묵을 덥석 쥐고 간장 종지에 찍어 먹으려는 순간 카운터에서 벨이 울렸다. 아차 우리 순대씨를 잊고 있었다. 어묵 꼬치를 아내에서 바통 터치를 하며 “순대 가지러 갈게. 먼저 먹어” 하고 달려갔다. 순대 접시를 들고 자리로 와 보니 아내에게 할당된 어묵 2개가 아내의 뱃속으로 잘 전달된 상황이었다. 아들은 맵지 않은 떡볶이만 공략하고 있었고, 겨우 하나 남은 어묵을 들고 간장 종지에 양념을 찍으려는데, 나의 예민한 동물적 감각이 발동했다.
간장 종지에서 이상한 형체를 어렴풋이 보고야 말았다. 공포 반, 설마 반으로 간장에 손을 넣어 그것을 천천히 위로 견인해 보니 죽은 채로 배를 내밀며 반신욕 중인 ‘독일산 큰 바퀴벌레’였다. 옆에 있던 아내가 동공이 확장된 정지 상태로 10초 정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한마디로 바퀴벌레는 누워서 어묵 마사지를 받은 것이다. 마사지를 받다가 황천길로 간 걸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그 마사지 어묵을 맛있다고 열심히 먹었던 것.
그날 아내는 하루 종일 헛구역질을 했다. 뱃속을 중화시킨다며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아이스크림 대여섯 개를 아들도 주지 않고 충혈된 눈으로 꾸역꾸역 씹어 넘기기도 했다. ○○랜드에 항의해서 최소 아이스크림값이라도 변상해달라고 해야 하는 건데, 순둥이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빨기만 했다.
글·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