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허지웅의 설거지
자기객관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기를
방송인 홍석천.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남처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행사날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나는 이 형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역시 <마녀사냥> 출연 당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여기 앞서 쓴 대로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형을 싫어했지만, 결국 내가 틀렸고 형이 옳았다는 이야기를 막 끝낸 참이었다. 갑자기 형이 프로그램 초반에 나 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마녀사냥>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출연자들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언론이나 여론의 관심이 내게 쏟아지자 형은 어쩔 수 없는 질투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괴롭고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태 단 한 번도 내가 누군가에게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질투를 느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건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을 실제 만나더라도 당신의 질투는 근거가 없는 오해일 뿐이다, 당신이 질투를 느끼는 건 실제의 내가 아니라 당신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나일 뿐이다, 라고 내심 생각하며 넘어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질투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가 질투를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일종의 겸손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질투를 살 만한 사람이 아니고 너는 뭘 모르는 거고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내가 겸손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방해해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행복하지 않으면 패배자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대해 불만을 가져왔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인증하고 전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어리석어 보였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감추지 않고 말하는 건 그런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반발심 때문에 행복에 중독된 사람들만큼이나 어느 순간 불행에 중독되고 종속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존감의 배경이 불행이라는 건 웃기고 슬픈 일이다. 언젠가부터 글로 풀어 써내지 않으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챌 수 없었던 것 같다. 글로 쓰면 늘 명확해졌다. 언제나 경계해왔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의 문제와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해버린 일. 그리고 타인의 질투마저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불행을 자신하는 오만함. 머릿속에서는 둘 다 내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이지만 결국 이 또한 나였다. 자기 삶을 현명하게 운영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란 도대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 글을 쓰지 않고서는 이마저도 유지해나갈 수 없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이 지면에 내 이야기를 채워왔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매번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건, 내가 나를 아직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다. 부디 우리 모두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먼발치에서 남처럼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끝> 허지웅 작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