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30 19:44
수정 : 2016.12.0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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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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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허지웅의 설거지
헤어지고 나서야 알아차렸던 내 첫사랑
그녀가 보낸 사진에 눈물이 났다
나 없인 상대가 살 수 없길
그렇게 바라는 사랑은 없다
그건 자신을 사랑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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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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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없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여기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대개의 경우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을 때 특히 더 그렇다. 누구나 이별을 겪는다. 그리고 내가 없으면 안 될 거라 생각했던 그 사람의 에스엔에스(SNS)에 꿀 발라놓은 엿같이 달콤한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보며 위산이 역류해 티셔츠를 흥건히 적시는 듯한 충격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내 생각과 현실 사이의 어마어마한 고도 차이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내 첫사랑의 경우에는 홀로코스트에 가까웠다. 첫사랑 이후 내 감수성은 씨가 말랐다.
첫사랑이란 이상한 것이다. 모두에게 서로 다른 정의를 갖는다. 말 그대로 처음 연애한 걸 첫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사랑이었다고 말하게 되는 경험을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내 경우는 후자다.
그녀를 만난 건 첫 번째 직장에서였다. 이제 막 내가 지금 코를 흘리고 있는지 묻히고 있는지 알아가고 있던 즈음 처음으로 여섯 쪽짜리 긴 기사를 쓰고 나는 거의 나라를 구한 듯한 공명심에 부풀어 있었다. <허생전>을 빗대어서 디지털 2차 콘텐츠 시장(이제 막 그런 개념이 생기던 시절이었다)을 풀어낸 것이었는데 괜찮은 기사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며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못 보던 누군가가 등을 보이고 자료실 앞에서 낑낑대고 있었다. 뭐 찾으세요, 하고 물어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은 내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애쓰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장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정말 미친 듯이 예뻤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예뻤다. 명치에 니킥을 맞은 것처럼 예뻤던 것이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녀는 온라인팀에서 일하는 기자였다. 자료를 찾으러 내려왔다가 헤매는 모양이었다. 나는 같이 자료를 찾아 주었다. 내 소개를 하는데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 기사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말하고는 다시 올라갔다. 나는 그녀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나는 부산영화제 취재팀으로 다시 만났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서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녀는 빨간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팀장이 오늘 취재할 내용들을 미리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를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가 별안간 펜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머리를 묶기 위해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쳐든 면적만큼 햇빛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햇빛 반 사람 반. <블레이드 러너> 도입부도 이렇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 장면은 십수년이 지나도 좀체 잊히지를 않는다. 나는 그 순간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졌다.
나는 그녀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넘쳐흘러 민중에게 베풀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만한 크기의 호감을 들킬까봐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혹시나 잘못 풀리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부산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하루 종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뷰가 길어졌다. 답변을 정말이지 오랫동안 하는 스웨덴 감독님이었다. 원고지에 궁서체로 받아 적어도 여유가 남을 만한 빠르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펜을 들고 있는 내 손은 파르르 떨렸다. 결국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인터뷰가 끝났다.
극장에 들어갔더니 초만석이었다. 계단에 앉아서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그녀를 찾기를 포기하고 저 뒤쪽으로 가서 영화를 보았다. 서럽고 슬펐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에서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옆자리를 비워두고 나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분명히 눈총을 받았을 텐데 어쩌나 싶어 나는 너무나 미안했다. 우리는 숙소까지 밤거리를 나란히 걸어갔다. 십오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오분처럼, 한시간 삼십분같이 걸었다.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그녀와 고궁으로 데이트를 갔다. 그렇다. 나도 한때는 고궁에, 데이트를, 갈 줄 아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데이트 때 비디오방에서 <박수칠 때 떠나라>를 보았다. 감독님께는 죄송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다른 걸 했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왜 이제야 왔냐고 대답했다.
몇 년이 흘러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가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어느 괴로운 밤 무작정 그녀의 집 앞으로 갔다. 그녀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파트 앞의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저께 꾸었던 꿈을 계속 생각했다.
꿈속에서 그녀는 내게 장을 봐 오라며 쪽지에 이것저것 살 것을 적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도중에 쪽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와 내가 헤어졌다는 걸 생각해냈다. 쪽지를 잃어버린 것이 너무 서러워서 나는 펑펑 울었다. 그러다 깼는데 그녀가 옆에 있었다. 네가 쪽지를 적어 주었는데 내가 그걸 잃어버렸고 우리는 헤어졌다고 말하면서 품에 안겼다. 바보, 그럴 리가 없잖아, 라면서 그녀가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모두 다 꿈이었다. 나는 쪽지를 잃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 가슴을 쥐어짰다.
다섯 시간쯤 지났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파트로 올라오는 언덕 끝자락으로 불빛이 퍼지더니 택시가 나타났다. 그녀가 택시에서 내렸다. 화장을 짙게 해서 다른 사람 같았다. “나보다 널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아니, 있어.” 우리는 몇 마디를 더 나누었고 헤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나는 완전히 냉소적인 사람으로 돌변했다. 나도 내가 놀라울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조금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건 몇 년 후였다.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여기 내 사진이 있으니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일단 가 보았다. 그녀에게 주었던 내 어린 시절 사진들과 편지 한 장이 맡겨져 있었다. 그녀가 내가 사는 동네를 알아내 동사무소를 찾아간 모양이었다. 이름으로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까 전화를 할 때 옆에 그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시 그녀가 지금쯤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았다. 편지에는 내 결혼 소식을 들었고 축하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게 사진과 편지를 집어 들고 동사무소를 나섰다. 세상은 평온했고 햇볕은 눈이 부셨다. 마침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닥치다 눈에 들어가 눈물이 조금 났다.
무언가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없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여기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그것이 나 없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게 되는 이유는 어느 순간 그것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 없이 상대가 살 수 없기를 바라는 종류의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깨달으면서 사람은 늙어가는 모양이다.
허지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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