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허지웅의 설거지
‘왕따’ 피해자를 ‘살인미수’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비극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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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하라는 대로 했다가
경계로 내몰린 세대들 앞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한국에서 왕따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내부고발자를 다루는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어떻게든 내부에서 조용하게 해결하길 바란다. 부조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내부고발자 개인의 성향을 들어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문제로 바꾸어 버린다. 남들도 그러는데 왜 우리 뭐만 가지고 그러냐는 옹호성 관전자들이 생겨난다. 그마저도 관심은 잠깐이고 내부고발자는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 왕따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한 지도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다. ‘이지메’라는 일본어를 쓰다가 내가 대학에 진학하던 해에 처음 왕따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즈음 되었을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실효성 있는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폭력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사악하고 강력해졌다. 원주의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나는 작은 옷가게를 하는 동네 동생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좀 여성스러운 친구다. 술을 마시다가 마침 이 이 사건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말했다. 이제 며칠 동안 전국에서 왕따당하고 있는 애들은 더 많이 두들겨 맞겠네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왕따를 하던 가해자들도 적어도 당분간은 조심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도 고등학생 때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마침 비슷한 칼부림 사건이 옆 학교에서 벌어졌다. 하루 종일 그 일로 학교가 뒤숭숭했다고. 그날 밤 이 친구를 괴롭혀왔던 패거리가 다시 그를 불러냈다. ‘빵셔틀’이나 시키고 그저 비굴한 웃음을 지어주면 몇번 쥐어박고 끝내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딘가 격앙돼 있었다. 그들은 “너도 나 칼로 찌를 거냐”, “해봐, 해봤자 너도 전과자밖에 더 되냐”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날 이 친구는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험하게 맞아야만 했다. “이런 사건은 학교나 지역 차원에서 쉬쉬하고 덮어서 그렇지 여지껏 셀 수 없이 많이 있었던 일이에요. 저 아이는 사람을 찔렀으니 처벌을 받겠죠. 이제 학교폭력에 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또 하나의 사례가 등장한 셈이에요. 사람들이 이런 건 또 안 까먹거든요.” 나는 늘 이기는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겨본 사람이 이길 의지를 가지고 다음에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도 학교폭력의 피해자도 비극적인 결말만 쌓여왔다. 이러한 경험치는 가해자들에게 매우 잘못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는 신호 말이다. 물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어른 시키는 대로 했다가 떼죽음을 당했다. 학교폭력으로부터 구해달라고 자기 발로 찾아간 어른과의 면담에서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면피만 할 뿐 해결의 의지가 없다. 그런 세상이다. 구제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자력구제뿐이다. 대체 이 아이들에게 칼을 쥐여주는 건 누구인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어쩌면 왕따 문제에 대해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리 가운데 상당수가 이 문제에 있어 심정적인 가해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고 그렇게 조직의 결속력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는 왕따라는 것도 일종의 사회화 과정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득 중학교 때 같은 학급의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왕따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을 때였지만 그건 명백한 왕따였다. 속눈썹이 무서울 정도로 길었던 그 친구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잘 씻지도 않았다. 괴롭힘을 당해도 그는 늘 웃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그 친구를 둘러싸고 왜 안 씻냐고, 왜 옷을 안 갈아입느냐고 손가락질했다. 누군가 발을 걸어 그 친구가 넘어지면 조소를 보냈다. 그 친구와 몸이 스치면 더럽다고 외치며 수돗가로 달려갔다. 그 가운데는 나도 있었다. 나도 그리 옷을 자주 갈아입던 형편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 친구가 독박을 쓰는 게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괴롭힐 일이 있으면 더 크게 웃었고 더 크게 욕을 했다. 나는 세상에 면목이 없다. 어른이 만든 세상에 어른이 하라는 대로 했다가 경계로 내몰린, 교복을 입고 있는 세대들 앞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허지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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