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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1 19:24 수정 : 2016.09.27 11:10

[매거진 esc] 허지웅의 설거지
“스트레스 안 받는 데 필요한 건 망각·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

픽사베이

동네 한적한 골목에 안마하는 집이 있다. 들어가보면 흐릿한 한약 내음이 듬성듬성 박혀 있다. 가만 보면 어떤 향을 쑤셔 박아놓은 듯한 공간이 있고 자리와 함께 향도 같이 나이를 먹은 것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후자라서 마음에 든다. 막상 그리 오래된 집은 아니라서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기저기 몇번 쿡쿡 눌러보고는 ‘사촌이 땅을 사셨군요?’ 할 것 같은 한의사 선생님도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한두 번 갔다가 시간이 영 마땅치 않아 가지 못했다. 요즘 몸이 많이 불편해져서 다시 오가는 중이다. 뒷목과 어깨가 단단하게 굳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좀 심각한 수준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안마를 해주는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백하는 건데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할 줄 아는 모든 이가 내게는 선생님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선생님은 고향이 광주인데 지방 곳곳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지역에서 자기 숍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여기서 일을 하는 중이다. 나를 안마하다 보면 땀이 많이 나는데 시술자가 땀이 나면 안마받는 사람에게 기를 빼앗기는 거라고 한다. 나는 유물론자라서 그런 거 안 믿는다고 했더니 “하긴, 자기 자신만 믿으면 되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고 선생님, 실은 저는 저를 제일 믿지 못합니다.

목과 머리가 연결되는 어느 한 부분을 누르니 거의 불알을 차인 것처럼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아픔이 가시고 나서 나는 불알이 목 뒤에 달렸더라면 체위는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지에 관해 궁금해졌다. 아무튼 선생님은 아픈 게 당연하다는 투다. 스트레스가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궁금해져서 여기를 아프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여태껏 그리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곳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말해줄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너무 빤해서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스님이었다. 분명히 아플 텐데 전혀 아프지 않아 해서 의아했단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스님이었다. 같이 왔던 분이 아내였는데 남편이 스님이라고 해서 뒤늦게 ‘아, 어쩐지 대머리’ 했다고.

나는 너무나 궁금해졌다.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오만가지가 힘들고 어려운데 스트레스를 옵션에서 끄고 주파수 144헤르츠(㎐) 모니터에서 60프레임을 고정하고 인생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최근 촬영 때문에 병원에 가서 남성호르몬 수치 검사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연애라는 단어조차 피곤해하고 만사 무기력한 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 스님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그냥 내려놓으면 됩니다.” 나는 이와 유사한 문장을 여러 번 보았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똥을 싸면 똥이 마렵지 않다”, “설탕을 넣으면 달고 소금을 넣으면 짜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

내가 궁금한 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려놓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노력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는데 ‘에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데 뭐’라고 여러 번 생각하고 나니 이제는 꽤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안마를 받을 때, 압이 들어가는 순간 숨을 내쉬며 이완을 억지로 해야 풀릴 것도 풀리게 된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안마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려놓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걸까.

마음속에 눌러 담아놓은 것들을 하나둘 떠올려보았다. ‘2억이면 뭐도 하겠다’고 나는 에스엔에스(SNS)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나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반드시 그 말을 언급한다. 돈이면 뭐든 괜찮다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서일 거다.

“마음속에 담아놓은 것들을
하나둘 떠올려보았다
화가 났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글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건 당시 곽노현 교육감이 상대후보에게 후보 사퇴를 대가로 2억을 주었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그때 곽노현 교육감이 문제의 2억을 두고 “대가성이 없었다”고 말한 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가지고 정말 대가성이 없었다고 편을 드는 나꼼수 팬덤이 가장 문제였다. 안그래도 ‘나꼼수 팬덤은 선거를 앞두고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크다’는 칼럼을 시사인에 썼다가 팬덤과 갈등이 한창이었다. 이걸 문제 없다고 말하는 순간 선거에서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할 중간층은 떠난다. 조바심이 났다.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을 진영의 이름으로 감싸안는 운동은, 언론은, 정당은 필연적으로 망한다. 세상을 간편하게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나누어버리고 무조건 내편 감싸고 보는 진영논리라는 게 얼마나 허무하게 판을 일그러뜨리고 망쳐버리는지에 관해 그때 당시보다 바로 지금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대가성 없는 2억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런 말을 진영논리로 감싸안는 게 정상인가, 나는 2억이면 뭐도 하겠다고 썼다. 결국 남은 건 뒤의 말 뿐이었다. 맥락은 결코 기록되지 않는다. 과격한 말이었다. 어쩌면 과격하고 선정적인 나중의 말만 남은 게 당연한 노릇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됐든 이후 나는 140자 단위로 말의 맥락이 절단되어 기록되는 트위터를 가능한 멀리했다.

<국제시장>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당시 진중권 교수와 한해 결산 한겨레 대담을 했다. 나는 반성하지 않는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의 지옥도는 외면하고 군사독재 경제개발 신화를 떠올려 자위할 기성세대의 정신승리가 토할 거 같다고 말했다. 이는 TV조선에 의해 “허지웅이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토할 거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고 왜곡되었다.

내가 토할 것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며 노이즈 마케팅이 꽤 오랫동안 계속됐다. 내가 아니라고 해봤자 내가 그랬다는 기사가 하루에 오백개씩 올라오니 이미 난 그렇게 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어서자 감독은 “허지웅씨 고마워요!”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했다. 나는 모 방송사의 출연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처음에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가 경로를 거쳐 팩트를 확인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화가 났다. 그러나 이제 와 떠올려보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감독은 별 악의없이 일종의 화해의 제스쳐로 그렇게 말했을 수 있고 모 방송사는 당시 여러모로 밉보이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까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까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까지 함께 잊어버리기 마련이더라. 그렇게 까먹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반드시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 말이다.

내가 생각한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이마에 땀을 닦아내고 있길래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럴 때는 늘 미안해진다. 스트레스가 모이는 곳이라는 저 뒷목 어딘가가 전혀 아프지 않을 그런 날이 과연 올지 모르겠다.

허지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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