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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6 19:13 수정 : 2016.07.08 10:43

[매거진 esc] 허지웅의 설거지
삶은 불가사의의 연속…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지혜에 관하여

집에 걸어놓은 셔츠의 단추가 모두 채워져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는 한다.

첫 번째 이야기. 나흘 전 늦은 저녁이었다. 술약속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입을 만한 외출복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너무 무례한 것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것도 아닌 그런 옷 말이다. 내게도 그런 데님셔츠가 하나 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옷 위로 고스란히 쌓이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겨드랑이가 찢어져버렸지만 그거 입고 방송도 곧잘 한다. 며칠 전 마지막으로 입고 벗어서 걸어두었던 셔츠를 집어 들었다. 순간 멈칫했다.

셔츠의 단추가 모두 채워져 있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광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얼마 전 방송 스태프들이 이 방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누가 손댄 걸까. 아니다, 그 이후로 많이 입었다. 누가 들어와 만진 걸까. 아니다, 혼자 사는 집이고 이 집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없다. 혹시 내가 잠근 걸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마다 새 옷 입는 기분을 내려고 세탁한 셔츠의 단추를 채워 보관하는 일도 있던데 무의미한 의식이나 절차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심지어 이 셔츠를 벗던 순간조차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데님셔츠의 단추는 똑딱이라서 벗을 때 들리는 소리나 손맛이 좋단 말이다. 주르륵 뜯어서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기억이 확실하다.

두 번째 이야기. 사흘 전 일이다. 일 년 넘게 진행되어온 송사 하나가 마무리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극우 사이트에 나에 대한 황당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온 사내가 있었다. 흔한 일이니 그냥 넘기려 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이 지나쳤고 내가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죄질도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만한 악성이었다. 무엇보다 글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올리는 게 문제였다. 한번은 경찰서에서 사내를 만난 적이 있다. 변호사는 대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눈으로 꼭 한번 사내를 보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사내를 기다리면서 나는 사과를 받고 싶다, 사과를 받고 소송을 철회하자는 생각을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사내가 들어왔다.

사내는 눈이 엄청나게 컸다.

키가 나만하고 시커멓게 탄 얼굴에 너무 큰 눈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은 의외로 평범하게 생겼을 것이고, 그런 평범한 의외성이야말로 삶의 원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사내는 이토 준지 만화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아저씨가 나를 어디서 언제 봤다는 거냐, 이유가 뭐냐,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느냐, 말을 다 하고 사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그 큰 두 눈을 거의 깜박이지도 않았다. 마침내 입이 열렸다. “우리 봤잖아요.”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이 되어 사무실을 나섰다. 동시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태도가 너무 확고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게 아닐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인지 공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사흘 전 사내가 10개월의 실형에 처해졌다는 통보를 받고 나는 참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사내는 왜 내게 사과하지 않았을까. 이 사내는 형을 살기보다는 병원에 보내져야 하는 게 아닌가. 10개월 후 세상 밖으로 나오고 나면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세 번째 이야기. 이틀 전 우연히 재벌 4세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심사가 뒤틀렸다. 꼴을 봐선 완연한 힙스터에 스놉인데 되레 그들을 비웃으면서 자기들은 지상 위의 모든 고급, 하위 문화를 섭렵한 탈-재벌 4세들이며 무슨 대안문화의 슈퍼 전문가인 양 구는 게 취한 마음에 아니꼬웠다. 비아냥거리고 나와 집에 가면서 에스엔에스(SNS)에 자식이 스무 살을 넘기고 나면 부모가 땡전 한 푼 주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웠다. 술을 마시면 심사가 좀 더 쉽게 뒤틀리고 치사해진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건데. 그런데 새로 도착한 쪽지들 가운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니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

풀어놓은 셔츠 단추가 잠겨 있고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오해받고
모르는 사람한테 미움도 받는다
어쩔 텐가, 그게 우리 인생인걸

비겁하게 자신을 지목하지 않고 그런 글을 올려도 자신은 다 알고 있다, 우리 가족은 나를 비난할 수 있어도 너는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비겁하게 숨어서 글이나 쓰지 말고 당당하게 만나서 붙자, 하는 요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뭔 소리인지 계정을 들여다봐도 깡통 계정이라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자신에게 방송이나 글로 특별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았으나 이렇게 증오에 찬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떤 경위로 이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는 한다. 대개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체계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를테면 방금 이 원고를 쓰면서 피우고 있던 전자담배의 배터리가 모두 닳았다. 무심코 일어났다가 충전기 앞에 가서야 불과 십 분 전에 이미 충전을 했다는 걸 생각해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 미스터리한 게 아니다. 접촉 부위가 헐거우면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끼웠고 전자담배는 다시 잘 작동되었다. 이런 일은 체계를 알고 나면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셔츠의 단추가 채워져 있거나 엄청나게 눈이 큰 사내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거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니가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알고 있다며 일기토(일대일 싸움)를 신청해 오는 일 따위에는 체계도 없고 경위도 알 수 없다.

나는 조금은 진지하게 평행우주나 지구공동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평행우주나 지구공동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세간에 도플갱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사람은 때로 우리 집에 찾아와 셔츠의 단추를 잠그고 일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애꿎은 누군가를 에스엔에스서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이 하루 차이로 연달아 벌이진 게 우연인지 징조인지 그저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옷장 앞으로 걸어가 실눈을 뜨고 셔츠에 단추가 채워져 있는지 슬쩍 확인해본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혼자 웃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태도야말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능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지웅 작가

한겨레에 칼럼을 새로 시작합니다. 잡다한 일들을 설거지한다는 마음으로 씁니다. 한국의 싱크대는 남자에게 너무 낮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허리가 아픕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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