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28 17:45
수정 : 2016.07.28 21:44
[리우올림픽, 숨은 1인치] 양궁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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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올림픽 양궁 대표 기보배가 7월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하며 활을 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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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양궁장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축제’가 매년 열리는 곳에 세워졌다. 바닥이 잔디가 아닌 시멘트로 돼 있고 평평하지도 않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활을 쏘는 사로를 카니발 행렬이 지나가는 시멘트 도로 위에 단을 높여 만들었다. 사로 양쪽에는 관중석이 있다.
지난 9월 프레올림픽을 치른 뒤 기보배(28·광주시청)는 “카니발이 열리는 곳이라 지면이 평지가 아닌 타원형이다. 평지를 맞추기 위해 1m 정도 높이의 상판을 올리는데 땅을 밟고 섰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를 위해 계단을 올라야 하고 사대에 오르기 전에 낮은 곳에서 과녁을 봐야 해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형철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사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위치에 조명이 있는 것도 고려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겠다”고 전했다.
이후 대표팀은 서울 태릉선수촌에 리우 양궁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시설을 만들어 훈련을 진행했다. 경기 시간이 지연될 경우 야간 경기에 나설 수도 있어 조명을 켜둔 상태로 훈련했다. 또 연습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세계양궁연맹이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곡을 택했고 단발 승부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를 대비해 심장이 뛰는 소리도 곁들여 연습했다.
1988년부터 금 28개 중 18개 따
여자단체 8연패 기보배 첫 2연패 노려
집중견제 당연 훈련도 남달라
양궁 심리요인 영향력 52% 최고
소음 조명 훈련 위해 고척돔서 연습
쉬면서 집중력 높이는 게임도 개발
지난 2일과 3일에는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소음 및 야간 조명 대비 훈련도 했다. 여자 대표팀 막내 최미선(20·광주여대)은 “리우 경기장과 동일한 환경에서 훈련을 실시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고 기보배 역시 “고척돔 훈련은 야간 경기에 대비해 좋은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전무는 “이번 올림픽은 현지시각으로 오후 5시에 경기를 치른다. 또 브라질의 8월은 겨울이라 일몰 시간과 겹쳐 어두워진다. 이런 환경에 초점을 맞춰 훈련했다”고 밝혔다.
대표팀은 선수들의 심리 안정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2006년 한국스포츠심리학회에 발표된 ‘종목에 따른 경기력 구성 요소의 기여도’ 논문(윤영길·김원배·임태희)에 따르면 심리적 요인이 경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종목은 양궁(51.9%)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사격(43.3%)과 탁구(32.6%)가 이었다. 더불어 이 논문은 양궁 종목에서 경기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술(32.8%)도, 체력(7.7%)도 아닌 심리(51.9%)를 꼽았다. 최정상 선수들이 겨루는 올림픽에서 양궁은 결국 심리전이란 뜻이다.
대표팀 선수들은 이에 대비해 뇌파 검사(뉴로피드백)를 정기적으로 받았다. 뇌파 변화 등을 개인별로 분석해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정신과 상담을 병행했다. 또 평상시에도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양궁대표팀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스마트폰 게임도 한다. 스마트폰과 뇌파 측정 장치를 연결시킨 ‘공 띄우기’, ‘활쏘기’ 게임이다. 문 감독은 “리우 현지에서 휴식 시간에 게임을 한다면 집중력이 더 높아질 것이고 심신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장비 확인도 철저하다. 대표팀은 선수들이 사용할 활에 눈으로 식별하기 힘든 흠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비파괴 검사를 도입했다. 기본 재질이 나무인 활은 브라질의 습한 기후에 쉽게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활 손잡이를 만드는 데 3D프린터를 사용해 각자의 손가락 길이에 최적화된 그립을 즉석에서 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양궁협회는 “장비와 관련된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한국 양궁이 선수들의 미세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이게 된 건 한국에 대한 세계 양궁계의 집중적 견제 때문이다. 한국 양궁은 올림픽마다 2~3개 금메달을 획득해왔다. 1988년 이래 올림픽 양궁 금메달 28개 중 18개를 한국이 휩쓸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장혜진(29·LH), 기보배, 최미선으로 구성된 여자 단체전에선 올림픽 8연패를, 런던올림픽 2관왕 기보배는 여자 개인전 최초 2연패를 노린다. 남자부는 모두 올림픽 첫 출전이다. 김우진(24·청주시청), 구본찬(23·현대제철), 이승윤(21·코오롱)이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한국 양궁이 기술적인 부분에서 세계 정상이라는 데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결국 관건은 마음에 있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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