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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5 19:15 수정 : 2016.07.27 09:36

유창식·이태양으로 본 프로야구 승부조작

경기전날 선발명단 예고돼 모의쉽고
1회 투수 ’몸 덜 풀려’ 핑계거리 있어

유년부터 제대로된 교육없이 운동만
프로야구 선수 65명 대상 조사에서
7.7% “승부조작 범죄 아니다” 대답

승부조작 사실을 자수한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좌완 투수 유창식이 25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의정부/연합뉴스
‘제2의 류현진’. 유창식(24)이 2011년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했을 때 따라다닌 말이다. 신인 계약금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7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프로야구 승부조작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직전에 있다. 순간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대가다.

2012년 박현준, 김성현(당시 엘지 트윈스)으로부터 불거진 프로야구 승부조작은 ‘학습효과’도 없이 올해 이태양(엔씨 다이노스), 문우람(넥센 히어로즈·현 상무), 유창식(기아 타이거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상 첫 800만 관중을 향해 순항 중이던 프로야구 또한 4년 만에 터진 승부조작에 술렁이고 있다. 자칫 연이은 승부조작 사건으로 몰락의 길을 걸어온 대만 프로야구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유창식은 25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기아 타이거즈 구단 관계자와 함께 자진출석해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는 한화 이글스 소속이던 2014년 4월1일 홈 개막전인 대전 삼성전에서 1회초 3번 타자 박석민에게 일부러 볼넷을 내주는 등 두 경기 승부조작을 통해 인터넷 불법 스포츠도박 브로커로부터 300만원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24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자진신고를 한 유창식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양심에 찔려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나서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심리적인 상태가 안 좋아서 자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월 이미 유창식에 대한 승부조작 관련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벌여왔으나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내사 종결 처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창식 이외에 이태양이 넥센 히어로즈 야수 문우람의 소개로 2015년 네 차례 승부조작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현준, 김성현 등의 프로야구 승부조작이 처음 적발된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승부조작은 선발투수들에 의해 이뤄졌다. 프로야구는 경기 전날 선발투수가 예고되기 때문에 선수와 브로커의 사전 모의가 가능하다. 승부조작에 야수를 끌어들이기에는 상대 투수의 구질이나 심판의 볼 판정 등 예측 불가능한 돌발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이미 등판이 예정된 선발투수라면 단 한 명만 매수에 성공해도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1회는 선발투수들이 몸이 덜 풀린 상태라는 이유를 댈 수 있어 조작하기가 가장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1회 볼넷을 한 많은 선발투수에게 현재 의심의 눈길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복수의 선수들이 입길에 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카더라’에 불과한 수준이다.

유창식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낸 이는 4~5년 전 은퇴한 전직 야구선수였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야구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운동기계’로만 길러져 인간관계가 제한적이고 폐쇄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소위 ‘아는 형님’ 식으로 잘못된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이 짙고, 이 과정에서 도덕적 판단의 거름막 없이 유혹에 넘어갈 확률이 높다. 이태양의 법률대리인도 “(이태양이) 나이 어린 선수라서 판단력이 떨어진 것 같다. 운동만 열심히 했을 뿐 정신적으로 성숙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브로커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한국체육학회지 제54권 6호에 게재된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승부조작에 대한 의식과 예방교육 전략 연구> 논문(정영열·김진국 고려대 강사 외)을 보면, 조사에 응한 현역 프로야구 선수 65명 중 1명(1.5%)이 승부조작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으며, 13명(20.0%)은 동료 선수들로부터 승부조작 방법에 대해 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더욱 주의 깊게 볼 사안은 65명 중 5명(7.7%)이 “승부조작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2012년 승부조작 당사자들에게 가해진 일벌백계(영구제명)도 소용없이 이태양이나 유창식처럼 1회 볼넷 등을 단순 경기조작으로 치부하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때 11개 프로팀으로 승승장구하던 대만 프로야구는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거듭된 승부조작 파문으로 현재 구단이 4개 팀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한국야구위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진신고 기간(7월22일~8월12일)을 둬서 과거의 승부조작 사건을 전부 털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자진신고한 선수는 영구제명이 아닌 2~3년 관찰기간을 두고 추후 복귀가 논의된다. 그러나 문제는 수십조원 규모의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이 존재하는 한 승부조작의 유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전 경기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프로야구는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양해영 한국야구위 사무총장은 “불법 도박 시장이 있는 한 프로스포츠에 안전지대는 있을 수 없다”며 “선수들에게 계속 유혹이 올 텐데 야구위나 구단이 선수 개인을 일일이 쫓아다닐 수도 없다. 선수들 자신이 자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양희 기자, 의정부/김기성 기자 whizzer4@hani.co.kr

[디스팩트 시즌3#13_프로야구 승부조작, '아는 형님'과 손잡은 그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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