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렉시트 이후 ‘영국연방 탈퇴’ 카드 꺼낸 니컬라 스터전 수석장관
변호사 출신으로 29살에 정치 입문
2년전 분리독립 투표뒤 수석장관에
브렉시트 투표로 분리독립 이슈화
연방 내 스코틀랜드 독립지위 부각
“영국 국민투표 거부 검토” 밀어붙여
지브롤터 쪽과 ‘EU 잔류’ 연대 움직임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석장관이 지난 25일(현지시각)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한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비상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에든버러/AFP 연합뉴스
1996년 미국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휩쓴 <브레이브 하트>는 13세기 말 스코틀랜드 독립투쟁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일대기를 그린 할리우드 영화다. 영화 속 윌리엄(멜 깁슨)은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 참혹하게 처형되는 순간에도 ‘목숨을 구걸하라’는 요구를 물리치고 “자유!”를 외치며 최후를 맞는다.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지금, 스코틀랜드에 다시 한번 ‘분리 독립’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자, 스코틀랜드가 이에 반발하면서 분리 독립 움직임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그 중심에 니컬라 스터전(46) 수석장관이 있다. 스터전은 근육질의 전사가 아니라 강력한 리더십으로 무장한 여성 정치인이다. 스코틀랜드는 이번 국민투표에서 ‘잔류’ 의견이 62%로, ‘탈퇴’(38%)보다 훨씬 많았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스터전 수석장관은 24일 투표 결과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스코틀랜드가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지속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25일은 휴일임에도 비상 각료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한 뒤 “스코틀랜드를 (제2의) 고국으로 선택하는 유럽연합 시민들을 환영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와 거리를 두고, 유럽연합에는 러브콜을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이어 26일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터전은 “스코틀랜드 의회가 영국 국민투표의 브렉시트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다”며 “우리는 결국 그렇게 하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스터전은 글래스고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변호사 출신이다. <비비시>는 27일 “스터전 수석장관은 이미 자치정부 관리들에게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을 위한 두번째 주민투표를 실행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해둔 상태”라고 보도했다. 스터전은 “제2의 분리 독립 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발언도 흘렸다. 앞서 2014년 9월 스코틀랜드는 영국과의 합병 이후 처음으로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반대’ 55.3%, ‘찬성’ 44.7%로 부결된 바 있다.
그러나 스터전이 실제로 두번째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를 주도할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 <비비시>는 “스터전 수석장관이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를 ‘빅 이슈’로 만들고 있지는 않으며 ‘산탄총 위협’을 하고 있지도 않다”고 분석했다. 스코틀랜드로선 유럽연합의 멤버십 지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이 시급한 건 아니다. 스터전은 국민투표 직후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로부터 “스코틀랜드 의회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절차를 지지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물론”이라 답변했다.
브렉시트 투표가 불러온 대혼란은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집권 국민당과 스터전 본인에게도 정치적 기회가 될 전망이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영국연합왕국의 일원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독립적 지위를 훨씬 더 폭넓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유럽연합과의 독자적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해외 자치령인 지브롤터와 함께, 영국연방에 남아 있으면서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도 유지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지브롤터의 파비안 피카르도 자치령 총리는 27일 <비비시>의 ‘뉴스 나이트’에 출연해, 스터전 수석장관과 함께 두 지역이 유럽연합 회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아일랜드도 이런 논의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어 영국에서 벗어나 유럽연합에 남으려는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지브롤터 연대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스터전 수석장관은 스코틀랜드 어빈에서 전기 기술자인 아버지와 치과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엘리트 집안에 최고 명문대 출신이 많은 영국 정치권 주류와는 거리가 있다. 대학 졸업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29살이던 1999년 총선에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소속으로 당선해 정치에 입문했다. 2004년에는 자치정부 서열 2위인 부수석장관, 2007년에는 스코틀랜드국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어 2014년 9월에는 앨릭스 샐먼드 수석장관이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부결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서 수석장관직을 이어받았다. 비교적 짧은 정치 경력으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최고위직까지 올랐고, 브렉시트 투표를 계기로 영국 중앙정치 무대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스터전은 핵 군축과 양성평등 운동에도 앞장서왔다. 지난해 영국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현대화 사업’ 반대 성명에 서명하면서 핵무장 반대론에 힘을 보탰다. 또 지난해 초 영국의회 연설에서는 서민경제 활성화를 주장하며 “(보수당 정부의) 긴축정책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스터전은 스코틀랜드 유력지 <해럴드>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정치인’에 2008년 이후 세 차례나 선정됐으며, 지난해에는 <비비시>가 선정하는 ‘(영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올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디스팩트 시즌3#9_남들은 알려주지 않는 브렉시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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