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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8 09:55 수정 : 2017.09.28 10:12

[김양중 종합병원] 조현병

게티 이미지 뱅크.
“조현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치료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김아무개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한 학기를 다녔지만 선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전공으로 재입학을 준비 중입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정기적으로 예배에 나가 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으며, 건강을 위해 하루에 줄넘기 1000개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지난 여름방학부터는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취미 활동으로 기타를 치고 있는데, 역시 학원을 다니며 배우고 있습니다. 김씨는 “재입학을 한 뒤에는 다른 나라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토익 공부도 하고 있다”며 “지금 배우는 것들은 선교사가 되기 위한 예비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는 현재처럼 활동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에는 학급 임원은 물론 학교 선도부장으로 선발돼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업 부담감이 적지 않았지만 학생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학생회 활동에 시간을 많이 뺏기다 보니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체육대회나 축제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면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행사를 준비해야 해 수업 중간 쉬는 시간 때도 행사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며 “1학년 때에는 반에서 3~4등을 유지했는데, 학생회 활동 뒤에는 성적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명랑소녀였던 20대 여성
고3 스트레스 겪으며 증상 나타나
좀 전에 한 일도 기억 못하고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한다 망상

정신질환자 낙인 두려워
병원도, 약 먹기도 부담됐지만…

조현병이 ‘불치’라는 건 오해
적극 치료하고 주변응원 받으며
마음의 안정과 웃음 찾아

그는 고3 때 학급 회장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개학 초기 열린 반별 단합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 반에는 예체능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들이 다수를 차지해 학급 단합대회 참석 자체를 원치 않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다른 반에 견줘 행사 참석률이 크게 낮자 담임 선생님이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의 도움으로 참여자가 많아지면서 단합대회를 잘 마무리했지만, 그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그의 부모는 성적이 떨어진 것을 문제삼아 학생회 활동을 반대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반쯤 넋이 나가 있거나, 불안감이 극도로 치달을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그해 5월 겪은 한 사건은 그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사이 한 남학생이 교실 텔레비전에 음란물을 틀었는데, 그 영상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며 “그 뒤 거의 일주일 동안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정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이 없어진다거나, 손을 심각하게 덜덜 떨고 있었다는 얘기도 친구들에게 들었습니다. 일부 친구들은 그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증상은 심해져, 했던 말을 잊어버리거나 스스로 한 행동 자체를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어머니에게 전화로 얘기했던 사실을 그날 저녁에 기억 못하는 일도 있었다”며 “정돈된 집에 혼자 있을 때 여기저기 풀어 헤쳐놓은 두루마리 휴지를 발견했는데 내가 한 짓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해 봤다”고 말했습니다.

김씨 사례처럼 많은 경우 정신적인 충격으로 조현병이 시작된 것으로 보지만, 사실 전문의들은 뇌 이상과 심리적인 원인이 함께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정석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의 경우 아직 명확히 원인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뇌 이상 등 생물학적 원인과 심리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그 가운데에서도 도파민 등 뇌의 신경전달물질 이상이나 뇌의 구조적 이상 등 생물학적 원인이 큰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씨의 증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환청까지 겪게 됐습니다. 그는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한 낯선 남성의 목소리로 ‘네가 이렇게 죄를 짓고 사는데, 어찌 하느님의 딸이 될 수 있느냐’는 말도 들리기 시작했다”며 “너무 무서워 손이 떨리고 눈을 뜰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서 교실을 뛰쳐나가 멀리 화장실로 도망을 갔지만, 환청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친구들이나 가족을 만나기도 두려웠고, 외출은커녕 이불 속에 숨어 있으려고만 했습니다.

김씨가 병원을 가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고3 모의평가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긴장한 탓인지 등굣길이 멀게 느껴졌고, 아침부터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한 두통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게다가 몸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심하게 배가 아프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는 “당시 진단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위염’이었지만, 분명 위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고 말했습니다.

응급실에서 나온 뒤에 그의 부모님은 정신과를 찾는 것이 낙인을 찍는다고 여겼는지 그를 한방 신경정신과에 데려갔고, 그곳에서 공황장애 및 우울증을 진단받아 뜸, 침, 한약 등 한방 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학교에 이 사실을 알렸고, 그 때문인지 학교에 다시 나왔을 때 친구들은 긍정적인 응원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불안 증상과 대인공포증과 같은 증상이 계속돼 얼굴을 가리고 다니거나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습니다. 학교 공부는 아예 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행평가 가운데 하나가 10분 분량의 영상을 보고 느낀 점을 간단히 쓰는 서술형 과제였는데, 10분 동안 영상을 보는 것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3~4주 이상 한방 신경정신과를 다녔지만 별다른 증상 개선 효과를 보지 못하자, 결국 지난해 8월 정신과 전문의를 찾게 됐습니다. 김의태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약물치료”라며 “약물치료가 환자 증상을 크게 감소시키나 일반인이 오해하는 것처럼 중독성이 있거나 머리를 나쁘게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약물치료와 함께 환자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자신을 훈련시키는 정신사회적 재활치료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역시 매일 먹는 약으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약을 매일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약을 먹는 등 치료를 계속해야 하다 보니 제때에 약을 챙겨 먹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며 “게다가 약을 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질환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도 없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무기력하다 보니 약을 챙겨 먹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지만, 꾸준히 약을 먹지 않아 증상이 조절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정동청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조현병 치료 시기가 지연되거나 치료 중단 때문에 재발하게 되면 인지기능에 장애가 동반되며, 이런 경우 조현병 환자들이 꾸준한 치료를 받더라도 사회 복귀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뒤 3주가량 지나자 결국 김씨는 약 먹기를 자꾸 빼먹는다고 담당 의사에게 얘기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한번 주사를 맞으면 한달 동안은 약효가 지속되는 약으로 바꿔보도록 권고했습니다. 팔에 주사를 맞으면 되는 주사제였으며,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가 내야 하는 돈은 한달에 3만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장기 지속형 치료제로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한 지 한달가량 시간이 지나니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완전히 회복된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로부터 오래되지 않은 지난해 10월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4교시까지 듣기도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익숙해져 오후 늦은 마지막 교시까지 수업을 듣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약을 바꾸면서 김씨가 가장 의미있게 여기는 것은 약을 한달에 한번 주사하다 보니 환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매일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는 것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에는 치료제를 투여하는 날 즉 한달에 한 번 방문하고 있다”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매일 하지 않아도 돼서 질환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달에 한 번이지만 상담치료도 빼놓지 않고 받고 있습니다. 전에는 약을 제대로 챙겨 먹는지 등에 상담시간 대부분을 썼다면, 주사약으로 바꾼 뒤로는 최근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등 일상생활에 관해 말하고 상담하는 시간이 주를 이루게 됐습니다. 그는 “담당 의사에게 여전히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점과 이런 점이 유난스럽고 이상하다고 말했다”며 “담당 의사가 고3에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고 다분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상담해줘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김씨는 학교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치료 의지를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정신질환은 주변에 알리기가 쉽지 않은데, 그는 “주변인의 도움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되는데다가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꾸준하게 이어간 덕분에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었기 때문에 알리는 데 거부감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환자 주변에 있는 이들의 관심과 위로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사례에서 확인됐습니다.

그가 회복하는 데에는 가족의 도움도 컸습니다. 김씨는 “집에서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특히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졌을 때 표현력을 더 키울 수 있도록 해줬다”며 “옆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고 재미있는 영상을 함께 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치료를 받으면서 바라는 일은, 조현병은 치료되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선교사가 돼 경제적으로 능력이 되지 않거나 질병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현병은 꼭 치료되는 질병이니 마음의 편안함을 가지고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았으면 합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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