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목소리에 4년이 담겨 있었다. 19대 국회가 열린 2012년 6월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만난 이후 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39)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 모임과 함께 옥시에 찾아가 항의하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한 폐질환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하라고 환경부에 요구했으며,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장 의원은 9일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한겨레> 팟캐스트 ‘디스팩트’( ▶ 바로 가기 )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환경부 입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정당과 정부, 기업과 검찰까지 모두 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우선 환경부 책임부터 지적했다. 한 업체가 2003년 2월 수입한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에어로졸 형태로 쓰겠다’고 신청했는데,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외국 원재료 회사에서 만든 설명서에만 의지해 흡입 독성 검사를 하지 않았다. 장 의원은 “피해자들이 조만간 국가를 상대로 이 사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첫 형사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정부는 여전히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고,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일반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일반 국민이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가습기 피해자들도 세금 꼬박꼬박 냈고, 대형 할인점이나 동네 슈퍼에서 안전하다고 판매한 제품들을 사다 쓴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한겨레 팟캐스트 ‘디스팩트’에 출연했다.
환경부는 2012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하라는 장 의원의 요구를 묵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8월 임시국회를 통해 장 의원 등이 공동 발의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통과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태도를 바꿨다. 장 의원은 “환경부가 느닷없이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하고 피해자 지원을 시작했다”며 “속된 말로 특별법보다 환경성 질환 인정이 싸게 먹힌다고 여긴 것 같다. 그 과정이 기만적이어서 피해자들이 불신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기획재정부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을 발목잡기도 했다. 장 의원은 “추가경정 예산 17조원을 편성하면서 제가 50억원을 피해자 지원에 쓰자고 제안한 뒤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는데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됐다”며 “기획재정부가 돈이 없다고 말한 거다. 17조원 가운데 겨우 50억원조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에 쓸 돈이 없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 논리에 호응하는 새누리당의 행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여론이 악화하자 당 차원에서 피해 구제 특별법 통과 이야기를 흘리고 있지만, 실제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 의원은 “권성동 새누리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가 나서서 특별법 가운데 2개 법안에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고,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를 먼저 구제하고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되며, 심지어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의 과학적 인과성이 아직 덜 밝혀졌다고까지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하지만 환경부에서 2013년부터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을 3년 동안 써왔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이미 필요한 상황이 됐고, 과학적 인과성 역시 2011년 8월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결과 공식 사실로 인정됐다”고 반박했다.
옥시 등 가해 기업도 태도가 돌변했다. 장 의원은 “6년 동안 옥시에 찾아가 책임자 면담을 요구한 피해자들을 문전 박대하면서 흡사 악질 민원인이나 진상 고객 취급했다”며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의 인과성을 뒤집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마치 모르던 사실이 나온 것처럼 고개 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한겨레 팟캐스트 ‘디스팩트’에 출연했다.
국회의원의 무력함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장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 청문회 때 질의응답과 증인들이 말한 답변이 갖는 무게와 지금 국회에서 밝혀진 내용들의 무게감이 너무 다르다”며 “국회의원이 직을 걸고 행정부의 잘못이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 기업의 문제 등을 밝힌다는 건 그만큼 자료와 증거에 기반해 지적하는 건데 국회의 권위도 없고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걸 4년 내내 느꼈다”고 말했다.
“늘 산소통을 갖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분이 계세요. 이분은 숨이 차서 말을 길게 못해요. 폐가 섬유화된 거죠. 집 밖에도 못 나가서 엄마 노릇을 못한다고 그렇게 괴로워하셨어요. 그분이 올 초에 폐 이식 수술을 했는데, 비용이 수억원 들었어요. 그렇게 해도 일반적인 활동은 못하죠. 피해자분들, 이제는 더 상처받을 영혼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재훈 현소은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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