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7.10 10:18 수정 : 2016.07.10 20:13

곽병찬 기자의 나비의 꿈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이야말로 인간을 노예로 부린 원조 아닌가요? 그런 유럽인들에게 성노예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는 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8일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올드타운스퀘어) 천문시계탑에서 마침 오후 1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감실이 열리며 12사도 인형이 축복을 내리는 모습으로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시계탑 밑 작은 좁은 마당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의 사진기 셔터를 누르며 환호했다.

그 시각 체코의 종교개혁가이자 민족 혁명가인 얀 후스 동상 앞 드넓은 광장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는 ‘나비의꿈’ 캠페인이 열리고 있었다. 시계탑 밑의 관광객과 체코인들은 발길을 광장쪽으로 옮겼다. 그 중의 한 사람인 나이지리아 출신의 한 중년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여러분의 생각과 똑같다”며 서명했다.

시계탑 아래 광장쪽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태민이에게 한 장년 부부가 다가왔다. 피켓 내용을 살펴보던 부인은 먼저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캐나다인이지만 폴란드 출신이다. 2차세계대전 때 우리도 엄청나게 당했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그 문제에 대해 잘 안다. 할머니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다.”

우리만큼이나 오랜 세월 시련을 겪어온 나라, 그리고 시련의 자국이 지금도 선명한 올드타운스퀘어엔 온갖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즘 부쩍 늘어난 한국인을 배려해서인지 시계탑 입구엔 한글로 된 팸플릿도 있었다. 유럽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드믄 배려였다. 영국항공사가 세계 최고의 로맨틱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만큼 젊은 연인들이 많았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는 나라 사람들도 많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아이 둘과 함께 왔다는 중년 여성은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며 서명 방법을 알려줬다. 그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주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낸 곳이었다. 대만에서 온 16살의 한 소녀는 “대만도 일본군에게 당했는데 한국 여성들이 그렇게 많이 당한 줄은 몰랐다”며 피켓 시위를 함께 했다. 중국인들에게 다가가 서명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자위대 창설기념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 그런 유린을 한 나라 군대의 창설을 기념하는 행사가 어떻게 한국에서 열릴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역시 고개를 갸우뚱 하며 서명대로 다가갔다.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서 만났던 중년의 한 여성은 환호하며 다가왔다. “어른들이 하지 못한 일을 젊은이들이 이렇게 하고 있으니 한편 부끄럽고 한편 자랑스럽네요. 감사합니다.”

17세기부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에 병합되고,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됐지만,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에 의해 병탄됐고, 종전 후 해방되는 줄 알았지만 다시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으로 간접 지배를 당했고, 1968년 ‘프라하의 봄’ 혁명을 통해 추구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다시 소련군의 탱크에 짓밟혔던 체코. 결국 1989년 벨벳혁명을 통해 주권을 회복하고 민주화를 이룩했다. 4·19 혁명이 5·16쿠테타에 전복되고, 1980년 민주화의 봄과 광주항쟁이 신군부의 탱크에 짓밟히고, 1988년 6월항쟁을 통해서야 민주화를 이룬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철을 밟아왔다.

그런 체코의 날씨는 쾌청했다. 이제는 ‘동유럽의 파리’로 되살아난 프라하의 가슴은 그런 날씨만큼이나 맑고 밝게 열려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나비의꿈에게 따듯한 관심을 보여주었고,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집회 신고를 받는 시 공무원은 무려 3시간씩이나 집회를 허용했고, 광장의 비누거품 예술가 등은 ‘나비의꿈’이 플래시몹을 할 때마다 자리를 접고 피해줬다. 몇몇 한국인들은 “달리 도울 게 없으니 이거라도 받아 달라”며 격려 성금을 전하기도 했다.

프라하/글 곽병찬 기자, 사진 나비의꿈 미디어지원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나비의 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