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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0 20:40 수정 : 2017.05.10 20:57

아마존의 일몰. 노동효 제공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뱃길·하늘길 도합 4천㎞ 횡단해 대선 투표···퇴임때 지지율 높은 대통령 보고싶어

아마존의 일몰. 노동효 제공

아마존. 이 행성 위를 흐르는 최대의 강이자 남아메리카 전체의 40%(705만㎢)를 차지하며 한반도 면적 70배에 달하는 열대우림. 이곳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은 ‘지구의 허파’. 지구에 공급되는 산소의 30%를 생산한다고 그렇게들 부르곤 하지. 그래서 아마존의 삼림자원은 지구 대기와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주기에 세계인의 관심사이기도 해.

많은 이들이 아마존이 브라질 땅인 줄 알지만 브라질이 차지하는 면적은 아마존 전체 면적 중 60%. 나머지는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어. 이들 나라는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목소리엔 고개를 끄덕이지만 서구인의 지나친 간섭엔 콧방귀를 뀌기도 해. 오랜 세월 서구 국가는 타국의 자원을 약탈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저질러 가며 자국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았지. 그러고선 남미 사람이 가진 자원 개발해서 더 잘 사는 국가로 올라서려 하니 ‘인류생존’ 운운하며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거지. 더구나 다국적 기업을 만들어 자원외교니 투자개발이니 하면서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는 이들의 뿌리가 유럽이나 북미고 보면 우습기도 할 거야. 제 나라 자본가의 탐욕은 막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에게 감 놔라, 배 놔라는 식으로 여겨질 테니까.

아마존의 유래는 15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맞닥뜨린 원주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잉카 점령 후 스페인 정복자는 안데스에서 발원한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밀림에 사는 원주민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대.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서 외계인을 만난 지구인처럼 원주민은 이방인을 침입자로 여겼고 여성도 무기를 들었던 모양이야. 스페인 군인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족 ‘아마조네스’와 싸웠다고 호들갑을 떨었지. 그로 인해 이 지역 이름은 아마존으로 굳어졌어.

가장 유명한 도시는 브라질의 마나우스, 페루의 이키토스. 두 도시를 오가는 방법은 하늘길을 제하면 뱃길이 유일해. 두 도시 간 거리는 아마존강을 따라 2천㎞. 강변 마을에 생활용품 제공을 주목적으로 하는 선박이 오가. 승객도 이 배를 이용하지. 브라질 마나우스에서 배를 타면 7일째 되는 날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을에 도착. 페루 땅으로 넘어가 다시 배를 갈아타면 3일째 되는 날 이키토스에 닿아. 10일 동안 배 안에서 먹고 자면서 지내는 기나긴 여정.

아마존을 건너는 여객선. 노동효 제공
객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해먹을 천장에 걸고 자면서 다른 승객과 함께 사용하는 갑판실, 2층 침대가 있는 선실. 브라질 선박이 페루 선박보다 시설이 낫긴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배낭여행자들은 선상 난민수용소 같다고들 해. 낮이면 무더위, 밤이면 메뚜기, 모기, 풍뎅이가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배 안에서 지내는 거지.

남미 재외투표소 가길 망설인 나
영화 <더 플랜> 보고 투표 결심
아마존 건너 열흘만에 한표 행사
투표지엔 인류역사가 담겼으므로

애초에 아마존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어. 브라질 북쪽 해변마을에서 김어준이 유튜브에 올려놓은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더 플랜> 감상 후 내게 남은 건 지난 대선 개표조작 의혹이 아니었어. 내 심장에 내려앉은 두 여성의 눈물. 한 명의 미국인과 한 명의 한국인. 두 여성은 가상의 개표조작 상황을 목격한 직후 눈물을 왈칵 쏟았어. 가족이나 친구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투표용지는 한낱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던 거야. 한 방울의 포도주 속에 태양, 바람, 나비의 날갯짓이 들어 있는 것처럼. 한 톨의 쌀알 속에 농부의 땀, 흙냄새, 여름의 장마, 가을의 일몰이 들어 있는 것처럼. 한 장의 투표용지 속에 부당한 권력과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인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던 거야.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다 목숨을 잃은 이한열, 흑인 참정권을 위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피 흘리며 행진한 미국인들. 여성 참정권을 외치기 위해 달리는 말 앞으로 뛰어든 영국 여성 에밀리와 동료들. <더 플랜>에서 마주친 두 여성의 눈물이 재외투표소로 가길 망설이고 있던 나를 이끌었어. 마나우스행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아마존 뱃길을 지나 페루 이키토스로 가자, 그리고 다시 페루 국내항공을 이용해 리마 소재 대한민국 대사관까지 가자!

마나우스 상공에서 내려다본 아마존은 초록빛 열대우림 사이로 황토색 뱀이 구불구불 뒤치며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었어. 마치 가느다란 동아줄을 풀밭에 던져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 그래서일까? 아마존 강폭은 한강보다 훨씬 좁을 줄 알았어. 선착장에서 보니 아마존은 거대한 유람선이 수없이 오고 가도 텅 빌 정도로 넓었어. 마나우스에선 강폭이 16㎞나 된다고.

여객선에 올랐어. 물살을 헤치며 배가 누런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어. 해 질 무렵이 되자 강의 색이 변하더군, 바다처럼. 맑은 날, 해 질 무렵 바다는 거울처럼 변해. 파란 하늘이 수면 위에 내려앉으면 푸른 액체금속처럼 번들거리지. 색깔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그 푸른빛을 무척 사랑했어. 근데 그 빛을 아마존에서 보게 될 줄이야. 하늘도 강도 파랗게 변했어. 가운데 초록띠 같은 밀림이 길게 이어질 뿐. 그러다가 부욱, 성냥을 긋듯 번지는 일몰.

밤의 아마존은 사막 같아. 앞으로 나아가는 배의 엔진 소리뿐. 뱃머리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은하수가 지나가고 있었어. 먹물을 퍼부은 듯 새까만 강 위로 반짝이는 저 빛은 뭐지? 그건 별빛이었어. 어둡고 잔잔한 수면 위에 별들이 내려와 고스란히 떠 있었어. 순간, 아래가 텅 비며 우주를, 허공을 항해하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어.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면 이런 느낌일까? 명왕성으로 가는 길이 몇 개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어.

선박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뱃머리에 앉았는데 선박에서 일하는 친구가 곁에 와 앉더니 어디 나라에서 왔냐며 말을 걸었어. “리마엔 무슨 일로 가니?”, “한국 대통령 뽑는 투표 하러 가는 길이야.”, “여행자에게도 대통령 뽑는 선거가 중요하니?”, “응.”, “왜?” 한국에서 지낼 때 시청 앞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곤 했어. 그럴 때면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한국 밖에서 평생을 지낼 수도 있는데 왜 이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을까?’ 질문 끝에 다다른 결론을 친구에게 들려주었어. “이 세계 어디에 있든 난 모국어로 생각하기 때문이야.”

어떤 날 저녁엔 세찬 비가 내리기도 했어. 그런 날엔 아마존 숲 너머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왔지. 한 방향이 아니라 360도를 돌아가며 번개가 연달아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피뢰침이라도 된 것 같았어. 어떤 날은 아마존 돌고래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날엔 배 안에 가득 들어와 있는 수천마리 메뚜기 떼를 목격하기도 했어. 또 어떤 날은 갑판을 돌아다니며 뒤집어진 채 버둥거리는 풍뎅이를 한 마리, 한 마리 바로 앉혀 주며 시간을 보내곤 했지, 지구를 구하듯.

아마존의 먹구름. 노동효 제공
마나우스를 떠난 지 7일째, 브라질 국경 타바칭가 마을에 도착했어. 며칠 쉬고 여정을 이어가도 되지만 여유가 없었어. 투표 마감일에 맞춰 서둘러야 했으니까. 하선하자마자 출국도장을 받고 국경을 넘었어. 페루 이키토스로 가는 아마존 선박에 다시 올랐지. 브라질과 달리 페루인들은 먹고 남은 음식이며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아무렇게나 강물에 던졌어. 중간에 들르는 마을의 모습도 비슷했지. 선창가에 뒹구는 비닐봉지들. 자연에 대한 존중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이곳 사람들 의식수준이 참 낮구나, 하던 찰나 외계인이 지구인을 보고, 지구를 대하는 꼴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참 의식수준이 낮구나. 자신들이 사는 지구를 이따위로 다루다니!’

주페루 한국대사관 재외투표소. 노동효 제공

마나우스를 떠난 지 열흘째 되는 날, 주페루 대한민국 대사관에 도착했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내려놓으며 <문라이트>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가. 후안이 샤이론에게 말하지.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돼. 그걸 남에게 맡기지 마!” 아마존 뱃길 2천㎞, 하늘길 2천㎞, 도합 4천㎞를 횡단해서 투표를 한 건 내 권리이자 바람 때문이기도 했어. 미합중국 오바마 대통령 퇴임 시 지지율 60%, 우루과이 무히카 대통령 퇴임 시 지지율 65%, 핀란드 할로넨 대통령 퇴임 시 지지율 80%.

취임 시보다 더 높은 지지율로 퇴임하는 한국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노동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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