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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08 19:40 수정 : 2017.03.08 19:49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세계 최대 축제 브라질 삼바 카니발과 촛불집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삼바 카니발. 노동효 제공
내가 반라 상태로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치고 브라질의 도시를 활보하게 될 줄은 몰랐어, 머리에 노란 리본까지 꽂은 채!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는 물론이고 차도 한가운데를 거닐기도 했어. 내가 브래지어를 차고 다닌다고 해서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리우데자네이루의 광장과 거리마다 성적 구별은 물론이고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전도된 복장을 한 사람들로 가득했으니까. 일상의 금기가 사라지고,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아래위와 좌우가 뒤바뀐 날이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간 이어졌어. 축제였으니까.

문화인류학자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란 저서에서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형태가 축제라고 했지. 삼바 카니발이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 최대 축제인 동시에 인류 최대 놀이터.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 전에 훌쩍 삭발을/ 비 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자우림의 <일탈>이 현실화된 ‘시공간’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지.

가톨릭 사제가 팬티스타킹을 입은 채 벌건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고, 베일을 쓴 수녀가 담배를 꼬나문 채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었지. 슈퍼맨이 낮술에 취해 보도블록 위에 엎어져 있지 않나, 마하트마 간디가 포터블 오디오를 들고 다니며 삼바춤을 춰대고, 배트맨이 원더우먼 치마를 입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어. 카니발이었으니까.

삼바 카니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두 대륙에 닿아. 하나는 카니발이란 형식을 제공한 유럽이고, 또 하나는 삼바라는 내용을 제공한 아프리카지. 기독교 문화권엔 양대 명절로 예수 탄신일과 부활절이 있지.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이 되기 40일 전부터 고기, 술, 성교 등을 끊고 금욕하기로 했어. 맨 먼저 그런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걸 보면 당시 권력깨나 있던 사람이었나 봐. 근데 저 혼자 참겠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다들 40일간 술, 고기, 심지어 성교까지 참으라니! 무려 40일을 참아내야 한다는 강박은 뜻밖의 방향으로 물꼬를 틀었어. 금욕기간에 들기 전에 배 터지게 먹고, 마시고, 놀자는 무리들이 생겼지. 숫자가 점점 불면서 카니발, 즉 ‘고기를 끊다’는 의미를 가진 의식은 난장으로 변했어. 대표적인 곳이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사람들은 가면을 쓴 채 일탈을 즐겼어. 귀족은 평민 옷을 입고, 평민은 귀족 옷을 입고, 남자가 치마를 입고, 여자가 수염을 붙이고. 기존의 질서 속에서 금기시하던 것들도 카니발 기간엔 허용되고, 일상과 일탈이 뒤섞인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카오스.

삼바 카니발을 즐기는 시민들. 노동효 제공
유럽의 카니발이 남아메리카로 넘어온 건 콜럼버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출신의 이민자들은 자국에서 하던 대로 진탕 놀며 카니발의 씨앗을 남아메리카에 뿌렸어. 배양된 카니발의 씨앗은 각국의 토양에 맞게 자랐지. 가령 볼리비아, 페루 지역에선 토착 원주민들의 전통문화와 뒤섞였고, 브라질에선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시키려고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이들의 문화와 뒤섞였어. 유럽에서 온 이민자에게 카니발은 전통문화였고,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이들에게 카니발은 해방구였지. 아프리카에서 온 청년들은 어머니가 기쁨에 겨울 때, 아버지가 슬픔에 겨울 때 추던 춤을 추고 북을 두드렸어. 단순하지만 격렬하고도 역동적인 몸짓. 그 강렬한 원시성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가져온 카니발을 삼켜버렸어. 그리고 토해냈지. 기독교 의식 위에 검은 성수를 뿌린 삼바 카니발이란 것을.

금기와 질서가 사라진
흥분과 열기, 전복의 일주일
촛불·태극기 집회도 이랬을까
동료애·평등·자유를 경험했을까

지금도 리우 삼바 카니발을 지탱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메리카에 끌려온 아프리칸의 후예들이야. 전체 인원 수만명에 달하는 퍼레이드를 펼치는 이도, 거리에서 흥을 돋우는 삼바 음악을 연주하는 이도, 카니발에 참여한 관광객에게 길거리 음식과 술을 파는 이도, 그리고 매일 골목에 버려진 술병과 음료캔을 수거해 가는 이도. 그들이야말로 삼바 카니발의 시작이요, 끝이지.

저녁 10시. 삼바 퍼레이드 시작을 알리는 폭죽 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셔대기 시작했는데 퍼레이드가 끝났을 즈음엔 취해선지 졸려선지 꿈과 현실이 뒤섞여 보이는 듯했어. 동이 터 오는데도 반라의 차림으로 북을 두드리고 거리를 쏘다니는 이 무리들은 뭐람? 악마와 천사가 어깨동무한 채 거리를 배회하고, 원숭이 꼬리 달린 여자와 나비 날개 달린 남자가 담벼락에 기대어 포옹을 하고, 내가 취한 건가?

삼바 카니발을 즐기는 시민들. 노동효 제공
낮이든 밤이든 어디선가 누군가가 북을 쳐대면 사람들이 모였고, 술과 음식을 파는 이들도 모였고, 모인 사람들은 난장법석을 떨며 적당한 인파가 모이길 기다렸다가 어딘가를 향해 몰려가곤 했어. 깃발과 아우성과 함성을 따라 걷다가 난 어떤 기시감에 휩싸였지. 서울광장에 모였다가 청와대로 향하던 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 사직로. 카니발의 행렬 속에서 느닷없이 촛불집회를, 태극기 집회를 떠올렸어.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분노를 위트로 승화시켰지. 기발한 패러디부터 기상천외한 퍼포먼스까지. 서울 거리 한복판에 소가 나다니기도 했고, 거대한 고래가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했으며, 경찰차가 꽃으로 뒤덮이기도 했어. 그 광경을 보고 어떤 이는 축제 같다고 하더군.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이관된 후엔 태극기 집회도 거리를 차지했어. 기발한 위트나 패러디가 없어도 기상천외한 퍼포먼스가 없어도 큰길 가운데 퍼질러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어른들은 말했지. “이거 마치 장날 같구먼!” 탄핵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저마다 집회장에서 느낀 건 축제의 감정이었는지도 몰라.

축제에 참여한 이들이 겪는 심리 단계를 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리미날리티’라고 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문지방’에 선 단계. 지난 몇 달 한국인은 문지방에 서 있었는지도 몰라. 비일상적 상황이 압축적으로 표출되기에 극도의 흥분, 위험성, 일탈이 용인되는 문지방. 그리고 이제 문지방에서 내려와야 할 시간이 다가왔어.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한 번의 축제가 더 벌어지겠지.

행렬을 뒤따르다가 지친 나는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아 술을 주문했어. 앉고 보니 가게 안엔 빨간 팬티와 스타킹이 장식품처럼 걸려 있었지. 돌아보니 남성 복장을 한 여성과 여성 복장을 한 남성이 떠들어대거나 동성커플이 부둥켜안은 채 키스를 하고 있었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노인이 브래지어를 찬 나를 향해 키스를 날렸어. 나도 할아버지도 서로의 성정체성을 확인할 길 없었지만,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동료애로 나는 방긋 미소를 지어 답례했지.

하비 콕스는 <바보들의 축제>란 저서에서 “인간은 일상의 이성적 사고와 축제의 감성적 욕망 사이를 넘나들면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고, 그를 통해서 문화 발달을 가져올 수 있다”고 얘기했지. 카니발에 참석한 이들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지위가 전도된 상태를 경험한 후 재탄생한다고 해. 축제 중에 겪은 동료애, 평등, 자유는 일상까지 따라와 기존 사회가 강요해온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게 하고, 그 의문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사회갈등을 극복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기에. 그래서 카니발은 난장인 동시에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한 교육장이기도 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삼바 카니발. 노동효 제공
문득 궁금해져. 지난겨울 한국인이 겪은 두 개의 집회는 정말 축제였을까?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경제적 신분이 달라도, 무엇을 들고 있든, 무엇을 걸치고 있든 “축제 땐 뭐든 허용되잖아!” 하고 웃어넘기며 다 함께 축제를 만들고 있다는 데서 오는 동료애, 평등, 무한한 자유의 감정을 경험했을까?

곧 봄이 오겠지. 리우 카니발 같은 축제를 대학에서 연다면 참 좋겠다. 지역주민이 함께 즐기며 시민축제가 된다면 멋지잖아? 마을에서 열어도 참 좋겠다.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 보다 큰 지역축제가 된다면 멋지잖아. 회사가 창립기념일에 맞춰 사옥 앞에서 벌여도 참 좋겠다. 인근 회사 사람들까지 끼어서 더 큰 거리축제로 확장된다면 멋지잖아. 만약 한겨레신문사 사옥 앞에서 그런 축제가 벌어지면 어떤 복장을 하고 참가할까?

라이방에 별을 단 군인모자 쓰고 빨간 팬티스타킹을 입고 나갈까? 코알라 탈에 브래지어를 하고 나갈까? 갓 쓰고 비키니를 입고 나갈까? 승려복에 비엔나소시지로 엮은 염주를 목에 걸고 나갈까? 환자복에 막걸리를 링거대에 매달고 나갈까? 손석희 헤어스타일에 금테안경 쓰고 끈 팬티를 입을까? 난장이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가면 축제고,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혁명이라던가? 그러나 한국 사회에선 카니발 같은 축제를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가 혁명이다!

글·사진 노동효/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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