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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18 19:40 수정 : 2017.01.18 20:53

우루과이 바닷가 마을 푼타델디아블로에 이민을 가려고 산 자신의 땅에 텐트를 치고 쉬고 있는 독일인 제바스티안.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독일인 제바스티안은 왜 우루과이 한적한 바닷가 ‘푼타델디아블로’에 땅을 샀을까

우루과이 바닷가 마을 푼타델디아블로에 이민을 가려고 산 자신의 땅에 텐트를 치고 쉬고 있는 독일인 제바스티안.

“너도 우루과이 땅을 사보지그래?”

몬테비데오 숙소에서 만난 독일 친구 제바스티안의 말이었어. 독립광장에 선 벼룩시장을 둘러보고 호스텔로 돌아온 저녁이었지. 식사를 때울 요량으로 사들고 온 포도주와 안주를 내려놓고 여행자들과 나눠 먹던 중이었어. 제바스티안에 따르면 우루과이에선 외국인 여행자도 여권만으로 땅을 살 수 있다는 거야. 그는 유럽, 아시아를 거쳐 아메리카에 닿았고, 얼마 전 우루과이의 땅을 샀대. 1헥타르의 땅을 1만달러에.

“우루과이 사람 대부분은 해안에 살아. 주요 도시도 바닷가에 있고, 바다에서 가까울수록 땅이 비싸지. 바다에서 멀면 땅값이 떨어져. 이 나라엔 산도 없고, 평평한 초지가 대부분이라 개간하는 데 힘들지도 않아. 난 푼타델디아블로 해변에서 차로 5킬로미터 떨어진 땅을 샀어. 서핑을 하고 싶으면 자전거로 10분만 달리면 되지. 유럽인 사이에선 우루과이 이민 러시야. 이민 가고 싶은 남미 국가 1순위로 꼽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는 제바스티안이 장기체류 중이라는 푼타델디아블로로 가 보기로 했어. 2008년 <론리 플래닛>이 ‘꼭 가봐야 할 20곳’으로 선정한 곳. 평소 인구는 900명이 되지 않다가 여름 성수기에 반짝 2만명으로 불어난다는 어촌이었어. 제바스티안은 몬테비데오에서 볼일을 끝내고 내려오기로 했지. 동쪽으로, 동쪽으로, 브라질 국경 가까워지고서야 버스가 섰어. 난 바다가 보고 싶어서 해변 언덕 위의 호스텔로 찾아갔어. 일주일 이상 머물겠다니 호스텔 관리인이 하룻밤 15달러 하는 방을 10달러로 깎아주었지.

“마틴, 넌 이 마을에서 태어났니?”

“아니, 난 아르헨티나 출신이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때려치웠어. 돈을 벌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버티는 건, 단 한번뿐인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우루과이 여행을 하다가 이 마을에 이르렀고, 이 호스텔에서 묵다가 관리인이 되었지.”

숙소엔 브라질에서 온 카우웨니와 마테우스 커플도 묵고 있었어. 그들은 고향 쿠리치바에서 푼타델디아블로까지 지나는 차량과 트럭을 얻어 타며 왔다지. 스페인어론 ‘비아하르 아 데도’ 즉 ‘손가락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불러. 그들은 숙박비 대신 호스텔 청소를 하겠다며 공짜로 묵고 있었지.

브라질에서 온 카우웨니와 마테우스 커플.
“여기 온 지는 일주일 됐어요. 이 마을은 정말 멋진 곳이에요. 이틀 전엔 고래도 봤다니까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카우웨니가 바다로 난 창가에 앉아 재잘거렸어. 고향을, 고국을 떠난 게 처음이라고 했지. 외국인을 만나는 것부터 낯선 나라의 풍경까지 모든 게 신기하다며. 오전엔 같이 장을 보고, 한낮엔 대서양이 내다보이는 해먹에 누워 남극으로 내려가는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길 기다리고, 마틴이 쳐주는 우쿨렐레 연주를 들으며 석양을 보는 게 일상이었어. 천둥번개 치고 비바람 부는 날엔 전기가 끊기기도 했지. 그럴 땐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포도주를 마시며 밤을 보냈어.

인구 900명 어부·서퍼의 마을
정직하고 관대한 사람들 있는 곳
“10년쯤 휴가 때 대서양 오가며
집짓고 나무심으며 다른 삶 준비할래”

폭풍우가 지나간 아침, 보사노바를 틀어놓고 테이블에 앉아 꾸벅이며 책을 읽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지. “이봐, 형제!” 제바스티안이었어. 어찌나 반갑던지! “언제 도착했니?” “지금 막 몬테비데오에서 왔어.” “점심은 먹었어?” “아니.” “잠깐 기다려, 내가 스파게티를 만들어줄게.” 햇살 좋은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고 제바스티안을 따라 나섰어. 그는 푼타델디아블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 거대한 파도가 치는 갯바위부터 그란데 백사장으로 가는 길까지.

파도가 부서지는 푼타델디아블로 바다.
“이렇게 멋진 해변에 리조트 하나 없다니, 놀라운걸.”

“하하하, 그게 이유가 있지. 리조트 회사가 해변의 땅을 사긴 했어. 그런데 마을에서 이 해안으로 오려면 조금 전 우리가 걸어온 땅을 반드시 지나야 해. 땅주인이 영국 여자인데 리조트 회사가 아무리 땅값을 높게 쳐주겠다고 해도 팔지 않아. 그녀는 자기 땅을 팔면 해변이 망가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리조트에 묵을 수 있는 부자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이 해변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

“대단한 여자구나. 근데 네가 이 먼 나라의 땅을 산 이유는 뭐니?”

“일단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고, 생활 수준이 유럽과 큰 차이가 없어. 복지 수준도 높고, 정규직 비율과 장애인·여성 고용 비율 등 여러모로 안정된 사회지. 내가 지지하는 사민주의는 시민의 합리적 지성과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우루과이는 사민주의가 남미에서 가장 잘 정착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바다가 좋아. 이 마을엔 백사장이 네 곳 있는데 제각각 성격이 달라. 수영하기엔 그란데가 좋고, 서핑하기엔 리베로가 좋지. 한 시간만 걸어가면 산타테레사 국립공원이 있고, 비수기가 되면 어부, 예술가, 서퍼들만 남아 한없이 조용해지는 마을 분위기도 맘에 들어.”

파도가 높아 서핑하기 좋은 푼타델디아블로 바다.
푼타델디아블로의 평화로운 풍경.

“땅은 그렇다 치고, 영주권은 어떻게 되는데?”

“월세 내며 몇 개월 지내면 1년 임시체류증은 어렵잖게 받을 수 있어. 1년에 9개월 이상 거주하면 자동 연장되고, 5년이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지. 은퇴 후 이 나라에서 지낼 작정이야. 지난달엔 내가 산 땅에 과일나무 묘목도 심었어. 독일에선 건축 일을 하는데, 겨울엔 일거리가 없어. 휴가인 셈이지. 유럽이 겨울일 때, 우루과이는 여름. 휴가 때 와서 집 짓고, 과일나무 심고, 그렇게 10년쯤 보내려고. 지금은 대서양을 오가는 게 일도 아니잖아. 200년 전처럼 재산을 다 팔고 올 필요도, 한 번에 모든 걸 처리할 생각도 없어. 오가며 놀듯이 일하듯이 조금씩 하는 거지. 나무가 다 자라면 과일을 팔아서 지내면 돼. 큰돈 벌려고 이민 오려는 게 아냐, 내 취향에 맞는 곳에서 내 삶을 살기 위한 이민이지. 이 나란 인구밀도가 낮아서 이민에 관대하고, 사람들은 정직해.”

“우루과이 사람이 정직하다는 걸 어떻게 알아?”

“하루는 마을에 대마초를 사러 갔어. 근데 아무도 팔지 않겠다는 거야. 그 이유란 게 자기가 키우는 화초 이파리를 돈 받고 판다는 게 너무 어색하대. 대신 자기가 지금 피울 테니 같이 피우자고 하더군, 언제든 찾아오라며. 우루과이에선 정부에 등록을 하면 1인당 대마를 여덟 그루까지 기를 수 있어. 씨앗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몰래 더 많이 키워 돈벌이를 할 법도 한데, 여덟 그루 넘게 기르는 사람이 없더군. 이 정도면 정직하다는 게 증명되니? 하하하.”

“대마초를 허용하다니, 건강에 해롭지 않아?”

“건강식품은 아니지만 세계인이 술을 즐기지. 술을 허용하는 건, 극소수 알코올중독자가 생길 수도 있지만 서로의 절제력을 믿기 때문이야. 실제 대마초는 술보다 유용하고, 담배보다 덜 해로워. 대마초가 없었다면 비틀스, 이글스, 도어스 등 인류가 누리는 수많은 음악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테고,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남미를 대표하는 문예사조도 나오지 못했을 거야.”

“대마초를 허용하면 노동력 저하로 국가경제에 해롭다는 견해도 많아.”

“대마초로 인해 국가경제가 나빠진다면 대마초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나라들 경제는 곤두박질쳐야 되는 것 아냐? 네덜란드에선 합법이지. 영국을 비롯해 많은 유럽 나라에서 불법이긴 하되 일정 무게 이하를 소지하거나 피는 건 봐주는 식이야. 난 여태껏 그 나라들이 대마초 때문에 망했단 소릴 들어본 적 없어. 더구나 그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 축에 든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거니?”

푼타델디아블로의 평화로운 풍경.

푼타델디아블로의 평화로운 풍경.
제바스티안과 나누는 대화는 매번 흥미로웠어. 그는 늘 내가 생각지 못한 사례를 들어 나를 놀라게 했지. 매일 점심 무렵이면 제바스티안이 숙소로 찾아왔고,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한 뒤엔 맥주 두 병을 사들고 영국인 여자가 지켜내고 있는 해변을 산책하며 얘길 나누다가 돌아오곤 했어. 하늘이 발갛게 물들면 나는 언덕 위 호스텔로, 제바스티안은 자신의 땅에 세워놓은 텐트로 돌아갔지.

푼타델디아블로를 떠나기 이틀 전, 제바스티안이 먼저 독일로 돌아간다며 작별인사를 하러 왔어. 그는 나를 꼭 끌어안은 뒤 ‘다시 보자!’며 돌아섰지. 제바스티안의 작별인사대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푼타델디아블로엔 그의 둥지가 있으니까. 다시 만날 땐 그가 지은 목조주택과 마당 가운데 우물, 열매 풍성하게 맺힌 과일나무를 볼 수 있을 테지.

글·사진 노동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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