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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6 19:22 수정 : 2016.10.26 19:39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잃어버린 여행경비보다 더 큰 선물을 준 그곳

마르 델 플라타 도심 광장공원에 있는 회전목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500킬로미터, 대서양에 잇닿은 마르 델 플라타에 다다른 건 오후 5시였어. 스페인어로 ‘마르’는 바다, ‘플라타’는 은. 한낮의 해수면이 은화를 뿌린 듯 반짝이는 데서 온 이름. 지금은 비수기지만 휴가철엔 몰려든 피서객으로 60만이던 인구가 배로 늘어난다던가. 카지노와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을 벗어나 북쪽 해변으로 향했어.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도보 5분 거리 주택가에 여관 하나가 있었지.

“방 있나요?”

“그럼요, 일단 들어오세요.”

유창한 영어를 하는 중년 사내가 나를 맞았어. 루이스라고 자기소개를 했어. 마당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마테를 마시고 있었어. 배낭여행객 같아 보이진 않았어. 머리 희끗한 노인, 기타 치는 청년, 어린 여자아이 둘과 걸음마 중인 아기, 두 쌍의 젊은 부부. 호스텔 주인의 친척들일까?

여관 이름은 카루셀. ‘회전목마’란 뜻인데 그 이름은 <호밀밭의 파수꾼> 중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했어. 가출한 주인공이 자신을 따라나서겠다는 어린 여동생에게 화를 냈다가 달래주기 위해 태워줬던 회전목마. 소설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카루셀에서 아침은 늘 막심의 볼키스로 시작되었어. 여관에서 잡일을 하는 그는 늘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다가와 볼키스를 했어. 아르헨티나에선 남자끼리도 볼키스를 해. “안녕, 로. 잘 잤니?” 오전엔 다니와 해변을 걸었어. 아내와 사별한 그는 퇴직 후 휴양 중이라고 했어. 한낮엔 잡지사에 보낼 원고를 쓰다가 막심이 뚝딱거리며 보수공사를 하면 돕곤 했어.

오후 4시는 빵집에서 일하는 출로가 퇴근하는 시간. 우리는 낚싯대를 챙겨들고 방파제로 갔어. 바다가 푸른 액체금속처럼 번들거리는 일몰 전까지 물고기를 낚았지. 해지면 20페소(1600원)씩 갹출해 장을 보고 식탁에 모두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했어. 요리는 주로 출로의 아내 벨렌이 맡고 프랑코가 옆에서 거들었지. 프랑코는 건설현장 전기기술잔데 방 안에 앰프와 베이스 기타를 두고 띵가띵가 치다가 묻곤 했지. “로, 저녁에 음악 들으러 시내에 나갔다 올까?”

그러니까 소피와 막심 부부가 한살배기 카에타노를 데리고 방 한 칸, 벨렌과 출로 부부가 세살 안톤과 다섯살 키아라를 데리고 방 한 칸. 나와 프랑코와 다니가 도미토리 한 칸. 그리고 루이스. 그렇게 우린 카루셀 지붕 아래 같이 지냈어. 설거지를 벌칙 삼아 편을 갈라 탁구도 치고 포켓볼도 치면서. 철 지난 해변 여관은 마치 행복한 <사평역>(임철우의 소설) 같았지.

카루셀 마당에서. 왼쪽부터 막심, 소피, 루이스, 프랑코, 카에타노, 다니.
하루는 루이스가 물었어. 1년이나 2년씩 고국에서 떨어져 지내면 향수병에 걸리지 않느냐고, 고국이 그립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난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어.

“아니. 난 이미 집에 와 있는걸!”

“와우! 카루셀을 그렇게 여겨주니 정말 고마워.”

처음 보지만 편한 사람들
과장되지 않은 웃음
봄날 햇살처럼 내 집같은 곳
바로 카루셀이 그랬어

긴 여행을 하다보면 여러 곳에서 묵게 되지. 숙박업소, 지인의 집, 때론 낯선 이에게 초대되어 묵게 될 때도. 근데 내 집처럼 편한 거처를 만나기란 쉽지 않아. 지내는 내내 신세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집도 있고,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불편한 곳도 있고. 그래서 손님이던 사람들은 제 집에 도착하는 순간 “역시 내 집이 제일 좋구나!”라는 말을 하는 거야.

드물긴 해도 내 집처럼 편한 곳을 만날 때도 있어. 처음 보지만 전부터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낸 듯 편한 사람들, 과장되지 않은 웃음, 정겨운 아침저녁 인사, 순식간에 스며들어 봄날의 햇살처럼 느껴지는 집. 카루셀이 그랬어.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주말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랑코(맨 오른쪽).
일요일엔 프랑코가 주말학교 교사를 하러 간대. 나도 따라나섰지.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주말학교로 가난한 동네의 허름한 집, 방 두 칸이 전부. 찢어진 옷을 입은 아이들은 흙바닥을 뒹굴고 있었어. 프랑코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림 그리기랑 색칠 수업을 하고 숙제를 도왔지. 점심이 되자 봉사자 아주머니가 케이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어. 모두 책상 주위로 모여들자 초에 불을 붙였지. 오전 내내 밝은 표정이던 소녀가 후우 촛불을 껐어. 제 생일이라 그렇게 기분이 좋았구나!

곁을 떠나지 않는 한 소년이 있었어. 많은 이야길 내게 늘어놓았지. 스페인어를 다 알아듣진 못해도 맞장구는 누구나 칠 수 있어. “정말?” “우와!” “기똥찬데!” 신이 난 소년은 쉬지 않고 재잘거렸어. 수업이 없는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 때, 나는 연습해온 저글링을 선보였지. 아이들이 박수를 쳤어. 수업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 쉴 새 없이 얘길 들려주었던 소년이 가방에서 구슬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어. 대문을 나서려는데 다른 아이가 달려와 호주머니에서 팽이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더니 날 꼭 끌어안았지.

카루셀 앞 바닷가에서 바라본 마르 델 플라타 도심.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프랑코가 말했어. “정말 멋진 날이야! 그치?” “응, 정말 멋진 하루였어!” 하고 대답했는데 방으로 돌아오니 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 배낭 깊숙이 넣어둔 3천페소(24만원)가 보이지 않는 거야.

중남미로 여행을 올 때 마음먹은 게 있어. ‘조심은 해야지만 노트북이든, 카메라든, 휴대폰이든 잃어버리더라도 마음 쓰지 말자. 어차피 이생에서 잠깐 빌려 쓰는 물건이잖아. 그렇게 마음먹지 않으면 내가 소유한 것들은 날개가 아니라, 짐이 될 거야. 가진 게 많은 여행자일수록 길에서 움츠러드는 법이지.’ 그랬지만 달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친구에게 맡겨뒀고, 페소는 도둑맞았으니! 숙박비를 치르면 차비가 겨우 남겠구나. 앞으로 어떻게 한담?

별일 없는 듯 카루셀 식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잠들긴 전 프랑코에게 분실 사건을 털어놓았어. “그저께 와서 오늘 아침에 말없이 사라진 걔가 의심스럽긴 해.” 프랑코가 루이스를 데리고 왔어. “이런 일은 처음인데….” 루이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

“그냥 조용히 지나갔음 해.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 내가 말했어. “그래도 막심과 소피에겐 알려야 되지 않을까?” 루이스가 조심스레 물었어. “막심과 소피에겐 왜?” 내가 되물었지. “막심과 소피가 카루셀 주인이잖아?”

루이스의 대답에, 순간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는 느낌이었어. 부스스한 머리에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잡일을 하는 막심과 아침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소피가 여관 주인이고, 내가 여관 주인으로 여겨온 루이스가 직원. 한국 사회에서라면 금방 알았을 갑을(?) 관계를 열흘이 지나도록 몰랐다니! 하긴 존댓말이 없는 카루셀에선 누구도 갑이 아니고, 누구도 을이 아니었으니까.

멍한 내 표정을 읽고 프랑코가 물었어. “몰랐어?” “응….” “암튼 네가 괜찮다면 막심과 소피에겐 말할게.” “그렇게 해”라고 대답하는 내 머릿속에선 지난 열흘간 소피와 막심의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있었어. 첫인상은 히피형 장기투숙객, 그랬다가 청소며 잡일을 하는 걸 보고 직원이라 여겼고, 그러다 출로와 프랑코가 월세를 낸다니까 막심은 청소나 잡일로 월세를 대신하나 보다, 했지.

날이 밝았어. 일단 남은 돈으로 밀린 숙박비부터 지불하는 게 나을 듯했어. 비수기라 손님도 드문드문하니 형편이 넉넉하지 않긴 막심네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점심 준비를 하던 루이스에게 밀린 숙박비를 내겠다고 전했어. 루이스가 고개를 저었어.

카루셀의 부엌. 네덜란드계 미국의 성직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AJ 머스티가 남긴 말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가 쓰여 있다.
“막심, 소피랑 상의했는데, 돈이 사라진 건 네가 소홀히 한 탓도 있겠지만 우리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질 나쁜 손님을 받아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며칠이든 몇 달이든 네가 지내고 싶은 만큼 같이 지내자. 숙박비 걱정은 말고.”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니? 잃어버린 3천페소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지. 이젠 주인이, 직원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회전목마 여관에 숙박비를 내지 않는 이상한 손님까지 생기고 말았어. “내가 한 요리는 아무도 먹지 않아. 난 맛있는데 말이야. 로, 너는 같이 먹어줄 거지?” 루이스가 냄비에 물을 올리고 불을 붙였어. 가스레인지 옆엔 이런 문장이 씌어 있었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No hay camino para la paz. La paz es el camino.)

글·사진 노동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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