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세상의 배꼽’ 페루 쿠스코에서 만난 아름다운 친구들
|
잉카 제국의 옛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 ‘세상의 배꼽’이란 뜻으로 퓨마 형상을 한 도시다. 노동효 제공
|
|
하룻밤 8솔(2800원)이면 묵을 수 있는 쿠스코의 ‘아우키하우스’에서 음악을 즐기고 있는 여행자들. 이곳 좁은 마당에선 매일 밤 축제가 열린다. 노동효 제공
|
당신이 지금 페루 쿠스코에 있다면 거리에서 내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산페드로 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춤을 추며 돈을 버는 이가 내 친구다. 잡화를 파는 페루 아낙 곁에 앉아 기타를 치거나 하모니카를 불며 돈을 버는 친구가 내 친구다. 과일주스를 들고 다니며 “1솔~ 1솔~” 외치는 이가 내 친구다. 초콜릿을 들고 다니며 사 줄 이를 찾는 이가 내 친구다. 나는 그들을 아우키하우스에서 만났다.
티티카카 호숫가를 떠나 9시간 만에 도착한 잉카의 옛 수도 ‘세상의 배꼽’으로 불렸다는 도시. 어두운 밤, 콜롬비아산 방랑자 크리스티앙이 건네준 주소를 따라 간신히 아우키하우스를 찾아냈다. 음침한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리셉션은 없었다) 어두운 복도를 통과해 마당(4인용 텐트 한 동 칠 만한 공간이니 마당이라 부를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에 들어서자 스무명도 넘는 군중이 소파와 계단에 빼곡하게 앉아 정신없이 소리치고 노래 부르고 있었다.
|
아르마스 광장과 산페드로 시장 사이의 길에서 연주를 하고 춤을 추며 돈을 버는 내 친구들. 노동효 제공
|
의자 몇 개와 층계를 제외하면 앉을 곳조차 없어 벽에 기대 선 이들. 괴상한 모자, 레게머리, 치렁치렁한 치마, 넝마 같은 옷들. 기타를 치고, 북을 두드리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키스를 나눈다. 바닥에서 뒹구는 드럼, 피리, 곤봉, 훌라후프, 온갖 악기와 장난감들. 새로운 손님이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그들이 음악과 자욱한 연기에 휩싸여 있던 그 시간을 나는 하나의 화폭에 욱여넣고 ‘아름다운 혼돈'이라 이름 짓는다.
숙박료는 8솔, 우리 돈으로 2800원. 모두 도미토리이고 2층 침대로 구성된 4인실 3개, 6인실 2개, 12인실 1개. 아우키하우스에선 무조건 침대당 8솔을 받는다. 가난한 커플은 1인용 침대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에겐 1인당 1400원이었던 셈. 중남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격이었고 시설(서른여명이 사용하는 공간에 부엌 하나, 변기 두 개, 샤워기 하나)은 리버 피닉스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내 마음의 아이다호> 속 부랑자들이 모여 살던 철거 직전의 건물을 떠올리게 했다.
|
12각 돌이 있는 골목, 저녁이면 내 친구들은 이 거리에 앉아 수공예품을 팔았다. 노동효 제공
|
각국에서 모여든 내 친구들은 여행경비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갔다. 길에서 춤을 추고 연주를 하거나, 12각 돌이 있는 골목에 앉아 수공예품을 팔거나, 레스토랑 호객꾼이 되어 소리쳤다. “오늘 메뉴는 수프, 송어구이, 음료수 모두 합쳐서 15솔! 15솔!” 그렇게 하루 숙박비와 하루치의 빵과 과일 살 돈까지 15~20솔을 벌면 집-아우키하우스-으로 돌아온다. 먼저 귀가한 친구가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면 그날 벌이를 마친 이들이 차례차례 들어와 다른 악기로 연주에 끼어들며 마침내 ‘거대한 악단’이 되고, 새로 도착한 손님을 위한 ‘환영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도착한 그날처럼.
|
성스러운 계곡 ‘피삭’에서 다시 만난 프랑스 출신의 방랑자 알렉산더. 노동효 제공
|
아우키하우스의 주인을 다들 ‘마마’라 불렀다. 마흔쯤 됐을까? 같은 또래인 나는 이름을 불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철자, 알리스. 알리스는 나름의 운영원칙을 갖고 있었다. 집에선 음주금지. 그건 집의 평화를 위한 규칙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밤 11시면 마당의 불을 끄고 잘 사람을 배려할 것. 그래서 우린 11시가 넘으면 노래를 멈추고 소곤소곤대다가 자기 침대를 찾아들어가 잠들었다. 마추픽추로 떠나는 꿈을 꾸며.
하룻밤 2800원 남짓한 방이어도
노래와 음악으로 충만해지는 밤
허기와 추위를 아는 이의 연대는
이토록 배부르고 따뜻하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오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한 사내가 왔다. 희끗한 머리칼, 덥수룩한 수염. 온화한 미소에서 고수(高手)의 냄새가 났다. 배낭을 내려놓더니 사내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노랫소리와 함께 마당에 햇살이 들었다. 그날은 아무튼 묘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피리 소리를 들으며 마당을 치우고 부엌 정리를 했다. 자유롭지만 다소 지저분하던 집이 환하게 변했다. 연주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마도 아우키하우스에서 지낸 이래 가장 화창한 날이었으리라.
그날은 내가 1층 12인실에서 2층 4인실로 옮긴 날이기도 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와 샤워를 하고 계단 끝 방으로 올라갔다. 카일라는 서빙하러 나갔고, 프랑코는 액세서리를 팔러 나갔고, 나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누구지? 문을 나서려는데 한쪽 구석에 무언가가 있었다. 담요를 정수리부터 덮어쓴 채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였다. 마치 하나의 피라미드처럼 보였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근데 이 냄새는? … 백단향이로구나.
|
알렉산더는 나를 ‘내 아름다운 친구’라고 불러주곤 했다. 현재 페루 위파사나 공동체에서 수행 중이다. 노동효 제공
|
동갑이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을 거쳐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중남미에 온 유럽 출신 방랑자들의 전형적인 코스였다. 그들은 보통 스페인을 떠돌며 언어가 익숙해지면 중남미로 넘어온다. 그와 벗이 된 후 5시 무렵이면 같이 숙소를 나서곤 했다. 우리는 산페드로 시장을 향해 걷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행인이 지나는 거리였고, 보통은 지린내가 나는 길바닥이었다. 알렉산더가 기타를 치면 나는 옆에 앉아 손뼉을 쳤다. 땡그랑, 땡그랑, 노란 건 10, 20, 50센트. 하얀 건 1솔(350원). 동전이 떨어지면 노래 부르는 알렉산더를 대신해 나는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하고 답례를 했다.
|
12인실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왼쪽부터 카미, 마티아스, 키케, 프란치스코)과의 만찬. 노동효 제공
|
북미나 유럽 같은 넉넉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치고 동전을 내려놓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도 마찬가지. 말이라도 걸면 얼른 시선을 거두고 발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다. 늘 동전을 내려놓고 가는 이는 페루 학생들이거나 페루 아주머니들이다. 부자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나 값비싼 구두를 신은 페루인이 지갑 속의 1000분의 1도 거리의 악사에게 베풀지 않을 때 왜 넉넉하지도 않은 페루 서민들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100분의 1을, 10분의 1을 내려놓고 가는 걸까. 당신은 그 이유를 아는가? 가난한 이들은 ‘허기’와 ‘추위’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
아우키하우스에서 만나 연인이 된 카일라와 브루노 커플. 지금도 함께 에콰도르를 여행 중이다. 노동효 제공
|
동전 30개, 9솔밖에 벌지 못했는데 알렉산더가 이만 들어가잔다. 오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한국이 여름이면 페루는 겨울. 날도 추운데다가 알렉산더 목소리도 평소 같지 않았다.
“오늘 내가 저녁을 사도 될까?”
쿠스코의 한국식당으로 갔다. 얼큰한 부대찌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김치, 감자조림, 호박전 등 반찬이 나오고, 소주도 주문했다. 상이 다 차려지자 알렉산더가 오늘이 마치 ‘크리스마스’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공깃밥 두 그릇을 부대찌개와 함께 다 비웠다. 계산서가 나왔다. “100솔입니다.” 하룻밤에 8솔을 내는 입장에선 꽤 큰 돈이었다. 내가 무사히 계산을 하고 나오자 알렉산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알렉산더가 물었다.
|
여행자가 싼값에 묵을 수 있는 쿠스코 근교 피삭의 호스텔. 노동효 제공
|
“실은 진작 묻고 싶었던 건데, 너 같은 친구가 왜 ‘엔드 오브 월드’(막장)에 와 있는 거지?”
“숙박비를 아끼면 친구들에게 밥을 사줄 수가 있잖아. 오늘처럼. 어제는 펑크랑 먹었어.”
“넌 아무래도 좀 이상한 녀석이야.”
집으로 돌아왔다. 밤거리에서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고, 초콜릿을 팔고, 서빙을 하고, 식당 명함을 돌리다가 돌아온 나의 벗들이 마당에 앉아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잉카 제국의 옛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 노동효 제공
|
[%%IMAGE11%%] ‘눈을 떴을 때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수많은 별, 많은 이들 중 내 사랑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을 내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로 시작하여 ‘웃음, 눈물로 내 노래는 만들어졌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노래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나의 노래입니다’로 끝나는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삶에 감사합니다)를.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