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볼리비아 숲속에서 만난 ‘무지개 가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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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의 후예, 1969년 우드스톡에서 기원한 무지개모임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무지개 캠프 앞의 환영 표지판.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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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령 안데스산맥 해발 2천m 숲을 헤매고 있었다. 먹물을 끼얹은 듯 어두운 밤이었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닿을까. 벌써 두 시간째. 플래시로 앞길을 비추며 가곤 있지만 프랑스와 러시아 친구들도 초행이긴 마찬가지, 이정표도 지도도 없는 마당에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름난 국립공원이 아닌 터라 반듯한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무둥치만 덜렁 걸쳐놓은 다리를 건너다가 러시아 친구 샤샤는 개울에 빠지고, 진흙탕을 피해 덤불숲으로 돌아가던 프랑스 친구 미셸과 기욤은 얼굴을 긁히기도 했다. 오늘 중에 도착할까, 무사히 닿더라도 아무도 없거나 다들 잠든 뒤면 어떡하지?
“저기 봐! 무지개 표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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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모임은 초승달 때부터 그믐달 때까지 한 달 동안 숲에서 열리며 가는 길은 ‘무지개’로 표시한다.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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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녀 마들렌이 길옆의 돌멩이를 비췄다. 빨간 화살표와 함께 돌 위에 색색으로 그려놓은 문양은 분명 ‘무지개 가족’의 표시였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저마다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었던 까닭일까,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무지개 가족의 기원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그 많던 꽃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를 출간하게 될 배리 애덤스와 뉴욕 리빙시어터의 설립자이자 배우, 시인, 화가로 활동했던 줄리언 벡의 아들 개릭 벡은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체험한 뒤 ‘레인보 패밀리’(무지개 가족)라는 걸 만들기로 한다. 3일이 아니라 30일 동안 이런 시간을 보내면 전 세계가 가족이 될 거야! ‘패밀리’라지만 비폭력 평등주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원칙도 없는 느슨한 그룹이었다. 자연의 찬가를 함께 부르고 명상을 하고픈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레인보 개더링(무지개 모임). 1972년 봄, 콜로라도주 딸기호수에 모인 히피들은 스스로를 ‘레인보 패밀리’라고 선언한다.
고기·술·돈만 아니면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
달의 노래, 해의 춤 즐기는
‘30일간의 우드스톡’
그 후 반세기가 흘렀다. 베트남전은 오래전에 끝났고, ‘반전’과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던 히피 운동도 사그라들었다.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체제 반문명 자연찬미파의 사람들, 정도로 기억되고, 간혹 장발에 기운 옷을 치렁치렁 입은 채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던 차림만이 패션지에 등장할 뿐. 그사이 무지개 모임은 소리 소문 없이 유럽, 아시아, 중남미로 퍼져나갔다. 무지개 모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대중매체에 노출이 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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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이파타의 중심 광장. 저녁이면 배낭여행자들이 기타, 피리, 드럼 연주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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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서 지낸 지 2개월이 지날 무렵, 나는 케추아 부족어로 ‘언덕 위에서 쉬다’라는 뜻을 가진 사마이파타에서 머물고 있었다. 각종 관광안내서엔 거의 언급되지 않은 곳으로 중남미 배낭여행자들이 그야말로 ‘쉼’을 위해 찾는 안데스 산간 마을이었다. 가까운 대도시 산타크루스에 사는 가족과 연인이 소풍 삼아 들르는 ‘쿠에바스 폭포’와 잉카 전(前) 유적지 ‘엘 푸에르테’ 정도가 근교 볼거리. 그렇지만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영국,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무려 30여개국 이주민이 원주민과 어울려 사는, 지구촌이었다.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많았고, 총인구 3천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초콜릿 가게에선 주말의 영화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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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푸에르테. 사마이파타 인근 선(先)잉카 유적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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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연필들의 밤>이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당시 실종된 청년들을 다룬 영화를 보러 간 참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영화가 상영되길 기다리는데 덜컹 문이 열리며 낯선 무리가 들어섰다.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여느 여행자와 달리 텐트, 매트, 침낭뿐 아니라 훌라후프와 곤봉 등 잡동사니라고 불러도 좋을 것들을 배낭에 주렁주렁 매달고, 기타, 드럼, 피리를 들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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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사는 사마이파타에선 매주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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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로야, 이 마을에 온 지는 얼마나 됐니?”
“산타에서 차를 얻어 타고 방금 왔어. 우린 무지개 가족을 찾아가는 길이야.”
“무지개 가족? 그게 뭐야?”
“설명하자면 좀 길어. 말해도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거야. 페이스북에서 ‘Arcoiris Familia’나 ‘Rainbow Family’를 검색해 봐. 무지개 모임은 초승달이 뜰 때부터 그믐달이 질 때까지 한 달 동안 숲에서 열려. 보름달이 뜨면 달의 노래와 해의 춤을 추지. 텐트가 있다면 너도 숲으로 와. 찾아오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일단 여기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카를로스 농장으로 가. 농장 옆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어. 길 따라 두세 시간 정도 오르면 무지개 캠프에 닿는대. 우리도 초행이라 이 정도밖에 아는 게 없어. 중간중간 무지개 표시가 있을 테니 보고 따라와. 참, 내 이름은 가브리엘라, 다들 가비라고 불러.”
무지개 표시를 발견한 지 반 시간쯤 지나자 또 다른 이정표가 나타났다. 나무판자에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쓴 환영문과 함께 무지개 모임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수칙이 적혀 있었다. <노 카르네. 노 알코올. 노 디네로> 고기, 술, 돈 금지. 대부분의 히피들은 채식주의자이고, 무지개 모임에선 모든 걸 함께 나눈다던 가비의 말이 떠올랐다. 사마이파타에서 지내는 동안 샤샤도 술, 고기를 권하면 매번 사양했었지. 특정 버섯, 선인장, 꽃씨 같은 환각제나 대마는 약으로 여기지만, 대중이 즐기는 술은 마약으로 여긴다던가. “술 마시고 아내와 자식을 패는 인간은 있어도, 대마 피우고 아내와 자식을 패는 인간은 없어.” 가비는 비소, 카드뮴 등 독극물이 들었다며 담배를 거절하고, 담뱃잎이나 대마를 직접 손으로 말아서 피웠더랬다. 우루과이에선 대마가 합법이니 그럴 법도.
뒤따라오던 샤샤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녀석의 짐이 너무 많긴 했어. 텐트, 매트, 침낭은 그렇다 치고 차랑고(안데스 지방의 기타풍 현악기)니 타르카(안데스 지방의 나무피리)니 악기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니 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프랑스 친구들이 앞서가는 동안 샤샤의 플래시 불빛이 나타날 때까지 비탈길에 서서 기다렸다. 카를로스 농장까지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샤샤가 치던 차랑고 연주는 정말 기막혔지. 러시아 음대 졸업 후 입대영장이 나오자 도망 왔다던가. 러시아 군대에도 고문관이란 게 있겠지. 샤샤는 정말 견디기 힘들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언덕 위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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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눈동자’라고 불리는 행운의 부적. 무지개 모임엔 아메리카 원주민과 힌두교 문화가 혼재한다.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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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샤샤! 다 왔어. 얼른 와!”
뒤를 돌아보자 어둠을 머금은 수풀 사이로 샤샤가 비추는 불빛이 반딧불처럼 반짝거렸다. 안심하고 발길을 돌렸다. 밑에선 보이지 않았는데 고갯마루로 올라서자 평지가 나왔다.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그림자들. “올라!”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림자들이 다가와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형제여, 집에 온 걸 축하해!” 불가에 앉아 있던 이들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웅성거림을 들어서일까. 수풀, 나무, 연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옇고 어둔 장막을 걷고 담요를 덮어쓴 사람들이 하나둘 연이어 나타나 차례차례 나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형제여, 집에 온 걸 축하해!” 중남미 여행을 완전히 뒤바꿔버릴 무지개 가족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이야긴, 다음 시간에.
노동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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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령 안데스산맥 사마이파타는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은 ‘라 이게라’로 가는 거점 마을이다.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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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이파타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는 노동효 작가.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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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 사마이파타.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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