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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1 13:33 수정 : 2020.01.12 10:05

<해치지 않아>의 기초 설정, 즉 ‘호랑이, 사자, 기린 등 흥행 동물들이 모두 팔려나간 망한 동물원에, 다시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관계자 일동이 동물 가죽옷을 입은 채 동물 연기를 한다’는 설정은 일면 시대역행스럽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해치지 않아>

로펌 수습변호사 태수의
망한 동물원 재활 작전

가짜 동물 연기 코믹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얽매여
중반부 늘어지고 활기 잃어

‘흥행공식’ 검증된 콘텐츠만
살아남는 영화판과 빼닮아

<해치지 않아>의 기초 설정, 즉 ‘호랑이, 사자, 기린 등 흥행 동물들이 모두 팔려나간 망한 동물원에, 다시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관계자 일동이 동물 가죽옷을 입은 채 동물 연기를 한다’는 설정은 일면 시대역행스럽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8년 전 <라이프 오브 파이>에 출연한 시지(CG)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안긴 놀라움도 어느덧 추억이 되어, 이제는 각종 시지 동물들이 할리우드 영화(<쥬만지> <닥터 두리틀> 등)는 물론 한국 영화(이 영화와 <미스터 주> 등)와 드라마까지 일상다반사로 등장하고 있다. 훌쩍 정교해진 기술과 그에 반비례해 낮아진 단가 덕분이다. 그런 면에서 <해치지 않아>의 기초 설정, 즉 ‘호랑이, 사자, 기린 등 흥행 동물들이 모두 팔려나간 망한 동물원에, 다시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관계자 일동이 동물 가죽옷을 입은 채 동물 연기를 한다’는 설정은 일면 시대역행스럽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디로’가 아닌 ‘어떻게’의 영화

물론 이 영화는 동물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 만큼 시지 북극곰이 등장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시지 북극곰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역에 머문다. 주역은 단연 ‘가죽옷을 입은 인간들=가짜 동물들’이다. 덕분에 <해치지 않아>의 주위에는 시지 동물이 도래하기 이전의 구수함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예를 들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그 유명한 세계적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마저도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던 인형 옷 동물의 어색함은 어느덧, 이 시지 범람의 시대에는 아날로그적 향수를 부르는 추억 아이템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이 독특한 설정은 동시에, 체스 애호가였던 스탠리 큐브릭의 경고, 즉 ‘체스에서처럼 영화에서도 퍼뜩 떠오른 첫번째 아이디어에 휘둘리지 마라’는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해치지 않아>는 튀는 첫번째 아이디어를 넘어서는 코믹함 및 참신함을 보여주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동명의 원작 웹툰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이 영화의 인물 설정을 브리핑하면, ①주인공 태수(안재홍)는 초거대 재벌그룹의 치다꺼리를 도맡는 로펌의 수습 변호사다. 집안이며 학벌이며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태수는 로펌 대표 황 대표(박혁권)의 눈에 띄는 것을 당면과제로 삼고 있다. 그런 태수에게 ②사모펀드로부터 ‘1원에 인수된’ 망한 동물원을 100억원 정도에 되팔 수 있도록 굴려보라는 황 대표의 특명이 하달된다. 그렇게 태수는 동물원 ‘동산 파크’의 낙하산 신임 원장이 되는데, 위에 적었듯 이 동물원의 핵심 동물은 전부 팔려나간 상태다. 하여 남은 것이라곤 ③한눈에도 선량하고 순진해 보이는 동물원장 서 원장(박영규)과 그와 동물들과 마지막 의리를 함께하는 수의사 소원(강소라), 사육사 건욱(김성오)과 해경(전여빈), 그리고 ④백곰 한마리(영화의 유일한 시지 동물)를 비롯한 몇몇 동물 정도다. 그 와중에 국제협약 덕분에 새로 동물을 사들이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하여 “잡초처럼 자란 놈이라 파이팅 있는” 태수는 ‘가짜 동물 연기’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동물원 재활을 시도한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자, 러닝타임 30분 경과 시점쯤에서 소개 완료되는 이 설정으로 이후의 전개를 예상하는 데는 딱히 비범한 예지력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좌충우돌을 통한 주인공과 동물원 멤버들의 인간적 유대, 그리고 동물원의 극적인 부활, 그에 따른 투기자본의 앞잡이로서 주인공이 우정과 출세 사이에서 느끼는 딜레마 등등.

그러니까 <해치지 않아>는 결국 ‘어디로’가 아닌 ‘어떻게’의 영화라 하겠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연출한 손재곤 감독의 이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손재곤 감독의 기발하고도 오묘했던 두 편의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에서 목도했던 독보적인 개성, 즉 ①경로를 감히 예측/탐색할 수 없는 전개와 ②선도 악도 아닌 미묘하고도 아슬아슬한 캐릭터가 발하는 매력을, 이 독특한 설정 안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길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치지 않아>에서는 안타깝게도 감독의 전작들이 보인 특유의 개성과 매력을 제대로 맛보기 어렵다. 물론 동물원 직원들이 동물 가죽옷을 입은 채 서로 인간말로 대화하는 장면부터 방사장에서 동물 연기를 하면서 겪게 되는 각종 고충 등의 장면은 코믹하다. 길 한가운데에서 ‘어쩌다 마주친 나무늘보’ 장면이나 ‘난입 고릴라 폐회로텔레비전(CCTV)’ 장면 등은(스포일러 우려로 상세히 설명해드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 말 그대로 허를 찌른다. 하지만 <해치지 않아>의 핵심 동력원이라 할 대부분의 코믹 장면들은 ‘인형 옷 가짜 동물 연기’라는 아이디어를 듣는 순간 곧장 떠올리게 되는 코믹함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동물 연기를 하는 등장인물들이 각종 고충 및 고초를 겪는 대목은 관객들에게 동물들과의 역지사지의 기회를 제공하며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임은 틀림없지만, 아쉽게도 그 중반부의 템포가 종종 적정 속도에 미달하는 덕분에 가짜 동물들이 “시멘트 감옥”에서 느끼는 지루함과 갑갑함이 관객들에게까지 전달되고 만다. 요컨대 영화 중반쯤에나 등장하는 “우리 이거(가짜 동물 연기) 계속해야 돼요?”라는 수의사 ‘소원’의 대사는 더 일찍 등장했어야 했다. 그 대사 뒤에 이어지는 본격적 사건(=동물원이 되살아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 스포일러 우려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이 더 일찍 시작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차피 그 사건 이전에 깔리는 각종 기초 설정은 그리 상세하게 나열되지 않아도 충분히 파악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므로.

어쩌면 이런 중반부 늘어짐의 원인은 그 ‘결정적 계기’ 이후의 사건의 풍부함과 밀도가 그리 높지 못하다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이 영화가 야생 동물적 활기를 띠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자신을 얽매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크게 ①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재벌 3세와 그들의 뒤를 봐주는 썩은 거대 로펌이라는 한 축,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②비록 돈에 쪼들리지만 순수한 애정과 인간적 도리로 약자(동물들)를 지키는 또 다른 한 축이라는 양분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서로 섞일 일 거의 없는 이 양 진영 중 영화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너무나 명명백백하다. 환경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모두 말이다. 하여, 양측의 중간에 걸쳐 있는 주인공 ‘태수’의 갈등 역시 미지근한 온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해치지 않아요>를 연출한 손재곤 감독(왼쪽).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라진 의뭉스럽고 기발한 개성

그렇게 <해치지 않아>의 인물들은 영화가 그어놓은 금 안에서 각자에게 할당된 기능을 수행한다. 인물들은 금을 넘지도, 심지어 밟지도 않는다. 그 영화적 시계태엽 장치 안에서 희생된 것은 앞서도 말했듯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한 손재곤 감독의 의뭉스럽고도 기발한 개성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이 시대에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가 수많은 다른 뉴미디어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 매체들에 매일 올라오는 수십 수백 편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 경쟁에서 ‘검증된’ 극히 일부 콘텐츠들만이 영화화의 낙점을 부여받고, 그 낙점을 찍어주는 소수의 대자본은 제작부터 배급까지 영화업계를 독식하고 있고, 하여 낙점을 받지 못한 이야기들은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 지금, 요컨대 예측되지 않고 계량되지 않는 것들은 영화판에서 멸종되어가고 있는 지금, 수많은 영화적 개성들은 ‘흥행 공식’의 가죽옷을 입어야만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물 가죽옷을 입어서라도 동물원을 살려나가려는 <해치지 않아>의 인물들처럼. 그리고 넓든 좁든 동물원이라는 인간의 공간을 벗어나면 이제는 생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구의 수많은 동물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주의. 이하 스포일러 있음) 재벌 3세가 본의는 아니지만 어쨌든 보여주게 된 너른 아량 덕분에 동물원 및 북극곰이 살아남게 된 <해치지 않아>의 해피엔딩에 섞여드는 은근한 서글픔은, 이 영화 자체에도 그대로 겹쳐지는 것이었다. 극히 일부의 창작자를 제외한 99%의 창작자들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존중도 받지 못한 채 한가한 백수쯤으로 취급받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한창 울려 퍼지고 있는, ‘한국 영화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 ‘세계 몇관왕’, ‘한국 문화의 힘’ 같은 환호가 마냥 뿌듯하고 감격스럽지만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맞다. 동물원의 동물들의 문제든 건강한 문화적 생태계의 문제든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염치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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