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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7 20:23 수정 : 2019.12.28 02:01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레이(데이지 리들리)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를 핵심으로 한다. 불멸의 명대사 “아임 유어 파더”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대사가 등장하지만 펀치력은 그에 못 미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스카이워커 3부작의 셋째 편
레이의 성씨에 얽힌 비밀이 핵심
“아임 유어 파더” 계승 대사 등장

캐리 피셔 등 오리지널 멤버의 귀환
이전 에피소드에 대한 오마주 넘쳐
시리즈 팬 아니면 인물·설정의 갑툭튀
규칙 깨는 편의적 전개 의아할 듯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레이(데이지 리들리)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를 핵심으로 한다. 불멸의 명대사 “아임 유어 파더”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대사가 등장하지만 펀치력은 그에 못 미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사실 스타워즈 팬을 자처하는 관객들에게도 각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번호와 부제를 즉각 매치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단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간편하다. 세 개의 3부작으로 이루어진 ‘스카이워커 사가(saga)’의 마지막 편이니, 삼삼은 구, 즉 아홉번째 에피소드다. 그리고 부제에는 ‘제다이’ ‘제국’ ‘포스’ ‘시스’ ‘역습’ 등의 스타워즈 은하계의 일반명사 대신, 독특하게도 ‘스카이워커’라는 한 집안의 성씨가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가만. 좀 이상하다. ‘스카이워커’가 왜 굳이 ‘라이즈’하여야만 하는가? 스타워즈 첫 3부작(에피소드 4, 5, 6)의 주인공은 루크 스카이워커다. 두번째 3부작(에피소드 1, 2, 3)의 주인공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 베이더의 전신)다. 그러니까 굳이 라이즈할 것도 없이, 스카이워커 가문은 어차피 처음부터 스타워즈의 중추를 이루는 가문이었다.

■ ‘마음껏 놀아보렴’ 하는 형국

바로 여기에 <라이즈 오브…>의 핵심이 담겨 있다. 스타워즈의 마지막 3부작(에피소드 7, 8, 9)은 주인공 ‘레이’(데이지 리들리)의 성씨를 적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표적 꼰대어인 ‘근본 없는’의 타깃이 되는 그런 존재란 말인가. 하지만 스타워즈 은하계가 은근 혈통과 출생을 중시하는 중세 봉건스러운 세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인공인 레이의 출생에 관한 모종의 비밀이 있을 것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라이즈 오브…>의 이야기는 레이의 성씨에 얽힌 사연을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덕분에 <라이즈 오브…>에는 스타워즈 사상, 아니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인 “내가 너의 아버지다(I am your father)…”의 영광을 계승하고자 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물론 대사의 펀치력은 원본에 훨씬 못 미치지만, 그것에 담긴 원본에 대한 존경지심만은 팬들의 그것을 대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라이즈 오브…>가 왕년의 스타워즈, 특히 첫 3부작인 에피소드 4, 5, 6에 보내는 존경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극히 일부분만 적어도 이렇다. ①전함(스타 디스트로이어)의 착륙장에서 벌이는 총격전이나 ②포스를 써서 제국군 병사의 생각을 조종하는 장면 등등은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③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스승님에게 수련을 받는 주인공이나 ④장엄한 음악을 대동한 포스에 힘입어 물속에서 염력 견인돼 올라온 전투기(엑스윙) 등등의 장면은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에서, ⑤좁고 위험한 지형에서 장애물을 피해가며 벌이는 초고속 추격전이나 ⑥개미지옥 같은 유사(流沙)에 빠져드는 주인공들 등등은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에서 등등.

셀프 오마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를 이러한 팬 서비스는, 비단 작은 장면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라이즈 오브…>는 ⑦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행성 파괴 병기와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것의 위협(이번에는 아예 ‘16시간 뒤’로 적시돼 있다), 그리고 ⑧그것을 저지하고 제국의 우주 지배 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최후의 대규모 공중전 및 지상전, 그리고 그와 동시에 ⑨주인공이 악의 최고 수뇌와 벌이는 최후의 결전 등등의 큼직한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도 에피소드 4, 5, 6의 전통을 충실하게 고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팬들에게 가장 큰 기쁨 및 뭉클함을 안기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에피소드 4, 5, 6의 오리지널 멤버들의 등장일 텐데, 이 영화 앞의 두 편 에피소드 7, 8에 등장했던 ‘한 솔로’(해리슨 포드), ‘레아’(캐리 피셔), ‘루크’(마크 해밀)에 더해 이번에는 예고편에서도 천명되었듯 ‘랜도 칼리지언’(빌리 디 윌리엄스)의 귀환이 합세했다. 더불어 레아 공주 역의 캐리 피셔가 2016년 유명을 달리했음에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고 피터 쿠싱을 ‘복원’했던 것처럼 죽은 배우를 살려내는 음습한 시지(CG)를 이 영화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주최 쪽의 정책이 기특하게도 이행되고 있어, 레아 공주=캐리 피셔의 등장은 더욱 뭉클하다.

특히나 영화는 막판 20분가량에서 왕년의 우주선/전투기들을 일제히 등장시키는 박물관스러운 장면부터, 사막 지평선 너머 두개의 태양이 지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고향 ‘타투인’ 행성의 풍광을 그대로 재현하기까지, 에피소드 4, 5, 6의 핵심을 총정리하고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수마냥 팬 서비스 쏟아져 내리는 이 대목에서 빨간 카네이션 몇송이 곁들인 ‘감사합니다’ 자막을 첨부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아무튼.

요컨대 <라이즈 오브…>는 스타워즈에 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매우 영리한 아이 앞에, 지난 스타워즈 시리즈 전부라는 장난감을 한꺼번에 펼쳐놓은 다음, ‘자, 마음껏 놀아보렴’이라고 한 결과물의 형국이다. 물론 이 아이는 워낙에 영특한 아이인지라 주어진 장난감을 그대로 쓰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시키고, 또 참신한 자신만의 장난감을 만들어 이 풍성한 잔치에 추가시킬 줄 안다.

단, 전제가 있다. 이 놀이는 어디까지나 엄마, 즉 루커스필름의 수장인 캐슬린 케네디 여사의 손길이 닿는 범위 안에서만 자유로운 놀이다. <한 솔로>에 이어 도중에 감독이 교체된(콜린 트러보로에서 제이 제이 에이브럼스로 교체) 또 하나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인 <라이즈 오브…>는, 감독 개인의 색채보다는 철저히 제작자의 비전이 관철되는 지극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스러운 전략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만들어졌다. 그 목표는 앞서 말했던 철두철미한 시리즈 정체성과 통일성의 유지, 그리고 충심어린 팬들의 만족과 안심이다.

하지만 그런 팬심으로 무장되지 않은 관객의 눈에는 <라이즈 오브…>가 품고 있는 구멍들이 그리 작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라이즈 오브…>의 이야기 전개는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일단 영화의 수많은 인물과 설정들은 주최 쪽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갑툭튀한다. 물론 이 정도 규모의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약과 생략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복선이나 힌트를 전제로 해야만 ‘경제적 이야기 전개’로 납득될 수 있다. <라이즈 오브…>는 이야기 전개상 중요한 설정을 아무런 사전 힌트 없이 일단 밀어 넣은 뒤, 그다음에 이에 대한 설명(또는 변명)을 붙여 넣는 ‘경기 먼저, 규칙 나중’ 식 스토리텔링을 수시로 감행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드로이드인 C3PO에게 부과된 ‘시스어 번역 불가’ 규칙과 ‘이를 위반하면 기억 리셋’ 규칙의 갑툭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C3PO라는 중차대한 캐릭터의 ‘정신적인 죽음’이라는 매우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 규칙인데, 그렇다면 관객들은 미리 이에 대한 가벼운 힌트라도 얻었어야 옳다.

더 안 좋은 것은, 이런 규칙들이 얼마 뒤 아주 손쉽게 뒤집히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C3PO의 기억 휘발뿐 아니라,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암흑 황제 ‘팰퍼타인’(이안 맥더미드)과 레이의 맞대면 및 대결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잠깐! 이 단락 끝까지 스포일러 있습니다) 팰퍼타인은 레이가 자신을 죽이면 자신이 레이에게 스며들어 둘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를 들은 관객은 당연히 ‘어쩌지. 저 인간을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고…’라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그로부터 얼마 뒤, 규칙과 항아리는 깨라고 있는 것임을 은하계 전체에 장엄히 천명한다.

하긴 팰퍼타인 자체가 오래전에 죽었던 캐릭터임을 생각하면, 그리고 <라이즈 오브…>에서는 사람이며 드로이드며 물건이며 할 것 없이 죽은 것들이 수시로 되살아남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문제 축에도 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소소한 것에 아등바등하지 않는 터프함이야말로 스타워즈의 전통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유머 함량 매우 낮은 뻣뻣함이나, 과하게 멍청하여 코믹하기까지 한 나쁜 놈들 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 제이 제이 에이브럼스의 신묘한 선 지키기

그렇게 <라이즈 오브…>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광속 이야기 전개, 디즈니 제국의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빚은 거한 비주얼, 그리고 40여년간 축적돼온 팬들의 애정과 향수라는 세 요소를 핵융합, 화려한 최후의 대폭발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묘했던 것은 단연, 그러는 2시간20분 내내 42년 전 탄생한 ‘머나먼 은하’의 경계선을 단 1밀리미터도 벗어나지 않는 제이 제이 에이브럼스의 묘기였다.

하긴 그렇다. 언제나 그랬듯 이 영화의 수많은 구멍들은 수많은 팬들의 힘으로 금세 메워질 것이다. <덩케르크>를 그대로 인용한 이 영화의 한 장면이 선언하고 있듯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야말로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닌 포스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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