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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세월의 침식을 그대로 보이며 사라 코너 카리스마의 본류를 드러내준 린다 해밀턴의 존재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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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3·4·5편 각종 부산물 지웠지만
1·2편과 익숙해 강한 기시감
짜임새 있는 액션은 볼만하지만
미스터리 해답은 짐작 그대로
주인공은 여성·난민정책 비판
할리우드 석권한 트렌드 표방
‘아일 비 백’ 등 장면 변주도
얼굴 주름이 드러낸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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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세월의 침식을 그대로 보이며 사라 코너 카리스마의 본류를 드러내준 린다 해밀턴의 존재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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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말은 씨가 되어,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1편이 등장한 1985년 이래로 40여년 동안 백(back)하고 백하고 또 백하여 벌써 어언 6편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1편과 2편이 남긴 족적이 워낙에 깊은 탓에, 3편 이후의 터미네이터 속편들은 그 족적에 갇힌 채 왕년의 추억 및 성공 포인트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에만 치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와중에 3, 4, 5편 중 가장 독특했던 4편 <미래전쟁의 시작>(2009)은 크리스천 베일의 존 코너를 앞세운 기계와의 전쟁담으로 새로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시도했으나, 오히려 다음과 같은 교훈만 남기고 만다. ①‘인간형’ 터미네이터 없인 안 된다 ②현재 시점(또는 가까운 과거) 중심이 아니면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③아널드 없인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데다, 시간여행 평행우주 등등 가용한 모든 설정을 투입했던 5편 <제니시스>(2015)는 마침내 역대 최악의 터미네이터라는 만장일치의 평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여 2011년, 경매를 통해 2000만달러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권리를 사들인 스카이댄스사는 깊은 시름을 금치 못할 입장에 놓이게 된다.
1, 2편 바꾸기와 재활용하기
대략 그런 우여곡절로 이번 여섯번째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는, 잘 아시다시피 두명의 거물 이름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현재 <아바타> 속편 촬영에 분주하기 짝이 없는 제임스 캐머런, 두번째는 그녀 아닌 사라 코너는 역시나 안 된다, 라는 교훈을 꽤 오랫동안 곱씹게 했던 린다 해밀턴.
일단 제작자로 참여한 제임스 캐머런은 첫 두편의 창시자다운 호방함으로 ‘2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속편’이라는 대전제를 세움으로써, 3, 4, 5편을 거치며 발생한 각종 부산물을 일거에 제거한다. 즉, 존 코너의 결혼 및 그의 아내라든지, 존 코너의 아버지 카일 리스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백혈병 3년 투병’ 끝에 맞이했다고 선언된 사라 코너의 죽음 등등은 물론, 심지어 ‘스카이넷’마저 깔끔하게 터미네이트된다(지워진다).
영화는 원조 창조자의 손길 거친 적통임을 못 박고 들어가려는 듯, 2편에서 사라 코너가 심판의 날을 경고하는 비디오 기록 화면으로 시작된다. 그런 다음 사라 코너와 존 코너 모자가 스카이넷 탄생을 저지한 뒤인 1998년으로 곧장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 최신 컴퓨터그래픽(CG)기술의 도움을 받아 2편에서의 모습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 린다 해밀턴과 에드워드 펄롱(존 코너 역)을 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분당 심박수는 급증한다. 하지만 이 비싼 시지 회춘 기술이 영화 내내 계속될 리는 없어,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또다시 곧바로 21년 뒤인 현재로 다시 타임워프 한다. 그런데 영화가 옮겨간 배경은 엘에이(LA)도, 뉴멕시코도 아닌, 아예 멕시코시티다. 맞다. 이야기가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는 곳은 멕시코다.
자, 사정이 이쯤 되면 지금까지의 터미네이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올 법도 한데, 놀랍게도 <다크 페이트>는 (최소한 1, 2편의 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하여 거의 스포일러가 불가능할 정도의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기시감의 원인은 린다 해밀턴의 컴백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멕시코시티 소재 자동차 공장 노동자인 ‘대니’(나탈리아 레예스)는 공장까지 따라온 터미네이터 ‘레브(Rev)-9’(가브리엘 루나)의 공격을 받는데, 갑자기 나타난 수호자 ‘그레이스’(매켄지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공장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갑자기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레브-9을 저지하지 못하게 되고, 그때 또다시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두번째 수호자가 이 두 사람을 위기에서 구하게 되니, 그녀가 바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다. 이 세 여성은 ‘존을 위해서(물론 존 코너 얘기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레브-9의 내습이 벌어질 시간과 장소를 사라 코너에게 알린 정체불명의 신호가 발신된 지점으로 향하는데, 그곳은 미국 내의 어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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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속편이라는 대전제를 세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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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미 눈치채셨듯, <다크 페이트>에는 현재 할리우드를 석권하고 있는 트렌드인 ‘정치적 올바름’ 관련 설정이 크게 두가지 있다. 즉, ①지금은 여성시대―핵심 인물들(특히 수호자 캐릭터)을 전부 여성으로 교체 ②도널드 트럼프의 난민정책 비판―미국 남쪽 국경에 세운 장벽에 대한 조롱과 분노, 이 두가지 말이다. 이는 이전 터미네이터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두드러져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다크 페이트>는 2편 이후로 계속되어온 1, 2편 기본 설정 살짝 바꾸기와 1, 2편의 자원 재활용하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여행의 방향이 남에서 북으로, 트럭 뒷문이 대형 수송기 뒷문으로, 제철공장이 거대 댐의 수력발전 시설로 바뀐 정도뿐.
사실 ①번 설정 역시 남녀 성비를 제외한다면 2편의 ‘(아무것도 모르는) 인류의 미래-(알 만큼 아는) 인간 보호자-(미래에서 온) 슈퍼 솔저 수호자’ 구도를 그대로 반복하는 설정이므로 그다지 새롭지 않다. 또한 ②의 난민수용소 습격 장면 역시 전체적으로 2편 전반부의 정신병원 습격 장면과 후반부의 ‘사이버다인’ 본사 습격 장면의 조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그 유명한 ‘아일 비 백’이나 ‘살고 싶으면 따라와요’나 ‘오토바이 멋진데’ 등등의 저명 대사와 불타는 트럭에서 걸어 나오는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 형님의 선글라스 장면 등등 및 그의 변주도, 이전 속편들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다크 페이트>의 터미네이터 레브-9은 티(T)-800스러운 금속로봇 뼈대 위에 티-1000이나 티-엑스(X)스러운 유동합금이 씌워져 수시로 분리·합체되는 원 플러스 원 터미네이터다.
물론 <다크 페이트>에선 스카이넷이 아닌 ‘리전’(Legion)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초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름만 바뀌었을 뿐 리전은 스카이넷과 거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제임스 캐머런이 제시한 것처럼 <다크 페이트>의 티-800(아널드 슈워제네거)은 주입된 프로그램(나쁘건 착하건)을 따르지 않고 20여년 동안 자체학습을 해서 스스로 ‘양심’이라는 개념까지 발전시킨 자율형 터미네이터로서, 콘셉트만으로는 가장 독특한 터미네이터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런 점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데다(그는 ‘착한’ 터미네이터와 거의 다르지 않은 행동방식을 보인다) 그나마 1시간 남짓이 흐른 영화 중반에야 등장한다.
더구나 영화는 관객 호기심 및 집중력 제고 차원에서 두가지 ‘미스터리’, 즉 ①사라 코너에게 정체불명의 신호를 날린 주인공은 누구인가? ②수호자 ‘그레이스’를 현재로 보낸 미래 인류의 구세주는 누구인가?라는 두가지 미스터리를 매우 소중하게 깔아두며 가는데, 그 정답은 처음부터 너무나 쉽게 짐작되는지라 오히려 그 ‘정답’이 첫 짐작 그대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특히나 ②번의 답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표방하고 들어가는 ‘정치적 올바름’을 생각하면 구구단 1단만큼이나 명명백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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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인트>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린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사진을 찍는 배우들과 팀 밀러 감독.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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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해밀턴의 주름이 말하는 것
해서, 남는 것은 결국 액션이다. <데드풀>로 놀랍고도 기발한 데뷔를 한 감독답게 팀 밀러는 1편과 2편의 액션의 배경을 바꾸고 규모를 키워서 상당히 기발하고도 짜임새 있는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나 카체이싱에서의 자동차 측면충돌을 항공기에 도입한 항공기 충돌 장면이나 댐에서의 추락·탈출 장면은, 팀 밀러가 액션 설계와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다룰 능력을 너끈히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화려하고 조명 어두운 액션 장면에서 너무나 많은 주인공급 등장인물들(무려 4명)이 뒤섞여 나오는지라,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은 고려하셔야 할 것 같다. 하긴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은 비단 액션장면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걸쳐 내내 나타나는 문제점이므로 딱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다크 페이트>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세월의 침식을 그대로 보이며 사라 코너 카리스마의 본류를 드러내준 린다 해밀턴의 존재다. 비록 그녀는 새로 투입된 젊은 피인 매켄지 데이비스, 그리고 역사와 전통과 전설의 아널드 형님과 수호자 역할을 삼분할 해야 하고, 유일한 ‘순수 인간’ 캐릭터로서 여러 액션상 한계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 가득한 주름은 이 시리즈가 그리도 오랫동안 주창해온 인간성과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생생한 풍경으로 가장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린다 해밀턴과 그녀의 사라 코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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