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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0 19:27 수정 : 2019.05.11 15:39

영화 <배심원들>에서 첫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보통사람 배심원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 속에서 저마다 개성을 발휘하며 특별한 법정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배심원들’

결론 뻔해 보이는 살인사건 재판
피고인이 자백 번복하면서
법정은 치열한 유죄·무죄 다툼으로
저마다 다른 배심원들 캐릭터 빛나
짜임새와 재미 갖춘 순수 법정영화

영화 <배심원들>에서 첫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보통사람 배심원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 속에서 저마다 개성을 발휘하며 특별한 법정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까지 한국 법정영화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갑갑함이 없지 않았다. 분명 그 외관은 법원, 법정, 원고, 피고, 판사, 검사, 변호사, 서기, 경위 등등의 하드웨어가 빠짐없이 갖춰진 법정영화다. 그런데 법정영화를 비로소 법정영화이도록 하는 핵심들, 즉 재판 전략, 법리 다툼, 진실 공방 등등의 소프트웨어는 거의 흔적기관 수준으로만 남아 있다. 나머지 부분은 법률시스템을 장악하고 무력화시킨 다스베이더, 사우론, 타노스와 그에 맞선 누군가의 용감하고도 외로운 장외전쟁으로 대체되어 있다. 하여 결국 이 영화들은 법정영화보다는 정치 규탄 또는 부조리 폭로 무비에 가까워져버리는 숙명을 맞이한다.

물론 그것은 필연이었고 필요했다. 그 시절에는 특히. 하지만 그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론 자괴감이 스리슬쩍 고개를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음이다. 우린 언제가 되어야 허용 오차 범위 안에 들어오는 정상적인 법정영화를 볼 수 있게 될 것인가… 싶은.

‘정상적인’ 법정영화 반갑다

하여 최근 등장하는 법정영화들이 그랬듯, <배심원들>은 일단 반갑다. 정상적인 법정영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비정상적 상황이 차츰 정상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생물로서 말이다.

그런데도 <배심원들>의 소재를 보면 일순 움찔하게 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갑자기 너무나도 정상적이고도 ‘순수한’ 법정물적 소재. 이는 말하자면, 이제 겨우 정크푸드(영화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그 영화들이 묘사한 상황들이 그렇다는 얘기)에서 벗어나 정상적 식습관을 회복하려 하는데 갑자기 생식과 채식만으로 차린 밥상을 받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더구나 그 재판이 다루는 사건 또한 뭔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대단한 파급력이 있는 사건이 아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것으로 추정되는) 패륜 사건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진 ‘국지적’ 비극이다(2008년에 있었던 최초 국민참여재판에서 실제로 다룬 사건은 강도상해 사건이었으므로 이는 픽션). 하여 <배심원들>의 중심에는 제목 그대로 배심원,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배심원이라는 존재가 놓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다들 익히 알고 계실 법정영화의 고전이자 걸작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헨리 폰다 주연, 시드니 루멧 감독, 1957)이다. 큰 틀에서 보면 <배심원들>은 <12명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설정을 취하고 있다. 일단 배심원들이 최종 평결을 위해 갑론을박 평의를 벌이는 시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간 설정’, 그리고 다들 뻔하다 생각하는 사건에 과감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1명의 깐깐하고도 눈치코치 없는(또는 안 보는) 인물을 주인공 삼는 ‘인물 설정’, 또한 이 문제제기가 일으킨 일파만파의 연쇄반응으로 인하여 구구단 1단급으로 뻔해 보이던 사건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엎치락뒤치락 미스터리로 바뀌어가는, 그리하여 점점 주인공의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얻어가는 ‘사건 전개의 양상’에서도 두 영화는 다르지 않다.

거기에, 그것이 누가 되었든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이라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까다롭고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차갑고 메마른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의 시스템에서 정의를 실현해내는 방법이라는 ‘메시지’에서 또한 <배심원들>은 <12명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겠지만 <배심원들>은 <12명의…>의 21세기 한국판 리메이크가 아니다. 무엇보다 두 영화 사이에 놓인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은 바로 ‘최초의’라는 대목에 있다.

오랜 배심원 제도의 역사를 지닌 미국 법정영화에서 배심원은 주어진 조건이다. 하지만 한국 법정영화에서 배심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이 될 수 있다. ‘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재판같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나? 그래도 되나?’로 요약되는. 그리고 <배심원들>은 이 질문을 끝까지 자신의 중심에 놓는다.

도입부에서 법원장(권해효)은 ‘결론 다 나온’ 사건에 배심원들을 세워 ‘좋은 그림’을 뽑고 ‘그림 좋게’ 재판을 끝내려는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에게 배심원들은 거의 병풍에 가까운 존재다. 주인공인 청년 창업가 권남우(박형식)는 재판장 김준겸(문소리)으로부터 법이 무엇인지,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기본 원칙은 무엇인지 등등의 기초 지식을 교육받는다. 그 옆에 앉은 배석판사들은 대놓고 ‘이게 다 뭔’스러운 썩소를 날린다.

영화 <배심원들>.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뭉클함 던져주는 반전에 반전

하지만 피고인이 갑자기 자백을 번복하면서 재판은 유무죄를 다퉈야 하는 재판으로 급선회한다. 동시에 주인공 권남우는 재판 도중에 피고인과 우연히 독대를 하게 되면서 피고인이 유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힌트를 얻게 된다.

여기에 ‘30년 시신세정사’로 일해온 6번 배심원 장기백(김홍파)은 피고인의 어머니인 피해자의 주검에 난 상처를 본 뒤, ‘30년 전문가’의 확신과 자부심으로 법의학자의 의견을 반박하다가 법정에서 장렬히 퇴장당한다.

하여 주인공 권남우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유죄 확신을 흔들며 아마추어의 한계를 뛰어넘는(또는 부정하는) 고군분투에 착수하는데, 빨리 끝내고 싶은 사람들(회사 회장님 마중 나가야 해서, 일당이 적어서,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의 저항 및 압력, 그리고 “보면 뭘 알아?”로 대표되는 엘리트들의 무시 등등의 난관이 노도처럼 밀려들 것은 이미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겠다.

하여 영화의 관건은 결국 아마추어인 주인공(들)이 내·외부의 저항과 정보와 전문지식 부족이라는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으면서 전진해갈 것인가, 하는 디테일에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배심원들>은 모퉁이 많은 아기자기한 골목의 의외성, 다양한 배심원 캐릭터들을 통한 한국 사회에 대한 미니어처적 풍자, 그리고 점입가경적 코믹함과 인간적 터치까지 두루 갖춘 전개로 흡인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 권남우가 일사천리 논리를 전개하던 중 결정적인 대목에서 날아드는 반론, “그렇다는 증거가 어딨어?”라는 질문은 (알려드리면 스포일러가 될) 그만큼 짧고도 간단한 한마디로 가볍게 돌파된다. <12명의…>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빨리 끝내자’ 진영의 가장 강력한 보루인 팩트들을 줄줄 열거하며 “맞아요, 안 맞아요?”라고 몰아붙이는 상대방에게, 권남우가 날리는 예상치 못한 대갈일성은 폭소와 동시에 은근 뭉클한 잔향을 남긴다. 그러는 와중에 영화는 피고인의 사건을 통해서 무표정한 관료주의와 냉정한 복지정책의 허점을 꼬집기도 하고,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라는 다수결에 대한 질문도 슬쩍 던진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 없이 한겹씩 천천히 사건의 진상을 벗겨나가는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를 확보하고 있는데, 마지막 대목의 반전(이것이 있을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그것을 끌어내는 실마리는 충분히 의외다), 그리고 그에 수반된 후속 반전은 현실성 유무를 떠나 뭉클하게 납득된다.

또 거의 평의실에만 머물렀던 <12명의…>와는 달리 법정과 법원 내부는 물론, 나름의 스펙터클(이라기엔 매우 약소하긴 하다만)을 보여주는 로케이션까지 공간의 변화, 그리고 적소에 회상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좌식영화’인 법정영화에 나름 입체적인 리듬을 얹은 것 또한 <배심원들>의 강점이다.

물론 의도와 의욕이 다소 넘치는 대목도 있다. 피고인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피고인의 딸까지 개입시키는 ‘정서적 개입’으로 드러나는 눈물 나는 법정영화에 대한 의욕, 그리고 몇몇 캐릭터의 갑작스러운 ‘개과천선’ 같은 대목은 아닌 게 아니라 거칠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 모두 제 나름의 승리를 거두면서도, 억지 해피엔딩의 인공적 단맛을 남기지 않는 지혜가 있다. 각자 다른 위치와 입장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벌하고 계도하지 않는 따뜻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의 의미를 새삼 되짚게 하는 울림이 있다. 시드니 루멧의 또 다른 걸작 법정영화 <심판>(The Verdict)의 대사를 빌리면 이렇게 표현되는.

“하지만 오늘은 여러분이 법입니다. 여러분이. 법. 입니다. 법은 어떤 책이나, 변호사나, 대리석 동상이나, 법정의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저 정의롭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에 대한 상징일 뿐입니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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