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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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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신데렐라 스토리 기본 뼈대에
아시아 초부자 세계 관람은 덤
시어머니 역할 연기한 양자경
겉만 동양인인 며느리 거부하는
‘족보있는 동양 부자’ 잘 그려내
시어머니가 자진투항하는 결말
미국적 가치의 최종승리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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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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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느낌이 없지 않다만 그래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미국 내 흥행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영화가 “음식 남기지 마. 지금 미국에는 밥 굶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대사까지 함유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사실 이 대사를 생각하면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의 전원 아시아계 배우 캐스팅 할리우드 영화라는 점이나, 아시아계 원작자+아시아계 감독의 영화라는 점 등도 시야에서 멀찌감치 밀려나는 느낌이다.
그 대사뿐이 아니다. 영화는 ‘크레이지 리치’한 중국계 가문의 맏며느리 겸 주인공의 남친 어머니인 ‘엘리너’(양자경)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백인 우월을 향한 동양 갑부의 포문을 개방한다.
1995년 어느 날, 엘리너는 영국 런던의 억수 같은 비를 뚫고 아이 둘, 유모 한명과 호텔 로비에 도착한다. 아이의 진흙투성이 구두로 아이스링크처럼 매끈한 로비 바닥을 오염시킨 죄가 있긴 하다만, 생글거리며 “전실 만실, 예약불가”만을 반복하는 호텔 직원들의 대응에서는 명백한 인종차별 혐의가 읽힌다. “좋아요, 그럼 전화 한통 정도는 써도 되겠죠”라는 최소한의 요청마저 싸늘히 무시한 호텔 직원들의 머리 위에 곧이어 떨어질 청천벽력을 굳이 이 자리에서 논함으로써, 여러분께서 득하게 될 통쾌미를 스포일하지는 않겠다만, 아무튼 영화는 이에 대한 엘리너의 대응을 통해 ‘크레이지 리치’의 뜻을 확실히 정의하고 들어감과 동시에, 영화가 만들어지고 처음 배급될 미국의 백인 관객들의 심기불편을 딱히 고려하지 않음을 못박고 들어간다.
하지만 짐작하시다시피 이 영화는 아시아판 <겟 아웃>이 아니다. 위에 적은 장면들 외에, 영화가 백인 향해 직격하는 인종적 한풀이 및 복수는 거의 없다(기껏해야 ‘바나나’(겉은 아시아인, 속은 미국인을 비유한 말)인 아들 여자친구를 ‘너희 미국인들이 뭘 알겠니’라며 사뿐히 즈려밟는 엘리너 여사의 대사 정도뿐).
25년 만에 전원 아시아인 캐스팅
1995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온 뒤 줄곧 이어지는 것은, 거의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불멸의 이야기 세트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①여주인공: 맨주먹 중국계 이민자였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게임이론 전문가(이 설정이 이후 어디에서 써먹어질지는 구구단 1단보다 명료하다)로서 뉴욕대 경제학과 최연소 교수가 된 여성 ‘레이철’(콘스턴스 우) ②남주인공: 여친의 넷플릭스 계정을 빌려 쓰고, 냄새나는 공용 농구장에서의 농구를 즐기는 등 소박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여친으로 하여금 자신이 싱가포르 그 자체를 건설한 크레이지 리치 가문의 상속 최우선순위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도록 한 남성 ‘닉 영’(헨리 골딩). 이 ①+②만 가지고도 기승전결의 거의 87% 이상은 유추된다.
그런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영리하게도 이 슈퍼 클리셰를 넘어선 크레이지 클리셰를 ‘순수한 사랑’을 위한 멸균처리에만 쓰고 끝내지 않는다. 영화는 ‘아무것도 몰라요’로 영점 조정 된 여주인공의 시선을, 아시아 초부자들의 세계(정신적·물질적 세계 모두)를 외피부터 속살까지 한겹씩 차례로 보여주기 위한 알리바이로 이용한다. 흡사 사파리 관람차량처럼.
하여 중요한 것은, 언제나처럼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①초부자 집단의 서식환경 및 행동양태에 대한 체험관광 ②주인공 주변 캐릭터들의 개성과 매력 ③주로 그들의 대사를 통해 추구되는 코믹함 ④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 관광무비적 기능성 등등의 사이드 메뉴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매우 성공적이다. 적어도 그 충실한 기능성에서.
무엇보다 ①을 위해 영화가 선별해 보여주는 각종 초부자 행각들은, 진부한 상상력의 따분함과 너무 나간 상상력의 난해함 사이의 어딘가 적절한 지점, 즉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놀라운’이라는 지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마트에서 냄비 사듯 ‘원가로만 12억’ 귀걸이를 쇼핑하는 완벽녀부터 갑부손님 100여명이 집결한 호화 파티인 ‘조촐한 가족모임’까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내놓는 초부자 행각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주어진 지면이 모자랄 것인데, 그중 양아치 정신으로 온몸 무장한 도련님이 주관한 총각파티(그 장소는 아닌 게 아니라 무척 기발하다)의 번잡함/천박함을 피해, 남주인공과 그의 절친이 둘만의 ‘소박하고 조용한’ 시간을 위해 살며시 헬기 몰고 간 장소야말로 정중동의 경지에 이른 크레이지 리치함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할 것이다.
또한 ②개그 및 주인공 보필의 임무를 명받고 투입된 여주인공 레이철의 대학동창 ‘펙린’(아콰피나) 캐릭터와 그녀의 가족들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못잖게 밀도 높다. 아콰피나는 보통 이런 ‘개그 전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흔히 보이기 쉬운 과장 없이 툭툭 던지는 코믹 연기들을 영화 곳곳에 흩어놓아 이야기에 무시 못할 추진력을 붙인다. 예컨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저택 경비원(이라기보다는 경비병)에게 차창을 여는 장면에서 아콰피나가 보여주는 짧지만 굵은 순간 개그는, 개그의 강력함이 동작의 크기나 난이도에 꼭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였다 할 것이다.
동시에 펙린의 가족은, 레이철로 하여금 ‘크레이지 리치’의 세계를 본격 접하기에 앞서 준비운동처럼 ‘그냥 리치’의 세계(‘베르사유궁 거울의 방+트럼프 화장실’을 모티브로 한 저택에서 사는 그런 카인드 오브 리치)를 접하게 함으로써, 남주인공 닉 집안의 부의 거대함과 에스에프(SF)함을 한껏 증폭시켜주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이 영화의 영리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목 중 하나다.
아시아의 시대 운운은 호들갑
하지만 이 영화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로맨틱 코미디 버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 요소는 바로 ‘엘리너’ 캐릭터와 그녀를 연기하는 양자경(미셸 여)의 존재다. 공들인 흔적 역력한 의상, 소품, 세트, 음악 등등보다 더 확실하게 ‘족보있는 동양 부자’의 품위와 권위를 설득해내는 양자경의 연기는 특히나, 집안의 최고 어른인 시어머니에 대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아들에 대한, 그리고 그를 두고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들의 여자친구에 대한 감정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만두 빚기 가족모임’ 장면에서 가장 돋보인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백인들은 자식들한테 전자레인지에 덥힌 음식이나 먹이니, 늙으면 애들이 요양원 같은 데나 보내는 거야’ 같은 독설에 웃느라 자칫 놓치기 쉽다만.
물론 이 영화에는 허점도 적지 않다. 특히나 굳이 없었어도 될 슈퍼 클리셰들(예컨대 여주인공의 연속 옷 갈아입기 시퀀스부터, 등장인물 전원이 한자리에 집결하여 주인공 커플의 미래를 축복해주고, 그들의 머리 위를 마리나베이 상공 가득 터지는 불꽃놀이가 수놓는 엔딩까지)이 그렇다. 하긴, 그런 스트리트푸드스러운 정취 또한 이런 카인드 오브 영화 특유의 재미이긴 하다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라 할 ‘레이철 대 엘리너’의 최후의 대결 장면이 남긴 바나나 맛은 양자경의 연기로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레이철은 자신의 게임이론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이기기 위해’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 싸우면 지게 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이 이론은 이 최후의 대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데, 레이철은 엘리너에게 ‘당신이 승리하긴 했지만, 당신이 거둔 승리가 당신 자신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아시나요’를 설파하고 돌아선다.
그렇다. 레이철은 이기는 싸움을 위해서, 싸움을 포기하는 연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전술은 (당연하겠지만)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둔다. 즉, 게임이론으로 무장된 ‘똑똑한’(펙린의 대사에 나오는 표현) 미국인 레이철의 ‘이기는 게임’을 위한 베팅에, 집안에 대한 책임감과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의 큰 부분을 의탁하고 있는 엘리너의 동양적 사고방식은 깨끗이 패하고 마는 것이다. 하여 엘리너의 자진투항의 외형을 취하고 있는 레이철의 승리는 결국 미국적 가치의 최종 승리이고, 이런 점에서 영화 자체 역시 레이철과 마찬가지로 ‘바나나’로서의 희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럼에도 대세에 지장은 없다. 2017년의 100대 흥행영화 중 아시아인이 주연을 한 영화는 오직 4편뿐이었다는 집계만 보더라도 전원 아시아인 캐스팅의 이 영화가 보여준 영리한 처신과 상업적 성공은 확실히 놀랍다. 이 한 편으로 동양인에 대한 인식 전환,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 운운하는 것은 물론 경박한 호들갑이겠다만,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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