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턴 2>
영화 <패딩턴 2>의 한 장면. 주인공 곰돌이 패딩턴은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가족영화에서 발견된 스릴러의 시작. 패딩턴은 과연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사진 누리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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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패딩턴, 영화로도 제작 인기몰이
2015년 영화 <패딩턴>의 성공 이어
2편에선 스릴러 코믹 등 탄탄한 구성 패딩턴은 고향 페루에 계신 루시 숙모의 생일선물로 준비하려 했던 ‘런던의 열두 개 랜드마크’라는 희귀 팝업북(물론 이 팝업북은 런던이라는 배경의 개성 및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관광영화적 포석)이 도둑맞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명을 쓴 패딩턴이 투옥되고 그의 누명을 벗기려는 가족들의 좌충우돌이 범죄 스릴러의 기본 내용을 이룬다. 맞다. 이 내용은 그로밋이 양(羊) 연쇄살해범으로 몰려 투옥되자 월레스의 도움으로 탈옥한 뒤 결국 누명을 벗게 되는 영화 <월레스 앤 그로밋>의 ‘양털도둑’ 에피소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그러고 보면 <패딩턴> 1편의 이야기 흐름은 ‘양털도둑’의 전편인 ‘전자바지소동’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서 <패딩턴 2>는 1편에서도 십분 활용됐던 또 하나의 참고서를 뽑아드는데, 다름 아닌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다. 특히 패딩턴이 감옥에 투옥되는 대목부터는 아예 대놓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옥 장면을 오마주했다. 인디고블루-흰색 줄무늬의 죄수복부터 면회실 창문을 액자처럼 활용하는 화면구성, 계단으로 이어진 중앙복도식 교도소 건물의 구조부터 감방 동료들과의 동화적이고도 만화적인 우정 쌓기, 그리고 교도소 내 케익하우스라는 설정까지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패딩턴 2>가 우리가 흔히 보는 ‘따라쟁이’형 짜깁기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패딩턴 2>는 자신이 참고하거나 오마주한 재료에 오렌지 마멀레이드(패딩턴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를 듬뿍 발라 자신만의 색채가 흥건히 밴 샌드위치로 만들어 낸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이런 쟁쟁한 재료들을 잘 씹어 삼킨 뒤 탈 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선 진공청소기라는 생활가전을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환기덕트 침투장면을 본 따 표현해낸 1편의 패러디 역량은 2편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월레스 앤 그로밋> 뿐 아니라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꽤 재밌는 작품인 <맨하탄 미스테리>의 한 대목까지도 패러디 했다. 여기에 아주 작은 실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대 재난으로 발전하는 ‘나비효과식 코메디’도 역시나 더욱 기발하고 정교해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패딩턴의 귓구멍 칫솔질이라는 사소한 실수가 실내 래프팅이라는 거대 재난으로까지 불어났던 1편의 ‘변기 홍수’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2편이 이의 후속타 격으로 내놓은 ‘살아 움직이는 바리깡 소동’ 장면에서는 약 230퍼센트 정도 증강된 코믹함을 예상하시면 되겠다. 그리고 그 코믹함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
인상적 장면을 오마주해 더 큰 재미
“안녕” 먼저 말 건네는 선의를 강조
‘가족영화’로서의 핵심 잘 지켜내 선의로 가득찬 동화 같은 세상 속으로 뭐니뭐니해도 <패딩턴 2>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펀치는 이 영화 특유의 선의로 가득한 따뜻함이다. 창문닦이 알바를 하던 패딩턴은 창문이 끔찍하게도 더러운 이웃에게 창문을 닦을 것을 권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신경 꺼. 돈 안 내.”라는 뚱한 한 마디뿐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패딩턴의 대사는 “그럼 말고”가 아니다. “뭐, 아무튼 닦아야겠어”이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패딩턴의 이러한 선의는 1편에서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 혼자 남아 있던 곰에게 말을 걸어준 엄마 ‘메리 브라운(샐리 호킨스)’의 첫 마디 “안녕?”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리고 집을 나와 폭우 쏟아지는 거리를 헤매던 패딩턴에게 비를 피할 자리를 내주고 모자에 넣어둔 음식을 말없이 계속 꺼내주던 버킹검 궁 근위병의 무표정한 따뜻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측은한 마음에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시간에 백화점 선반에 혼자 남아있던 곰 인형을 산 한 남자의 따뜻한 시선을 그대로 닮아 있다. 영화는 심지어 패딩턴과 가족을 위기에 빠뜨린 악당(휴 그랜트가 완전히 작정한 듯 화려하고도 다채롭게 변신변장하며 이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을 응징하는 대신 마지막엔 그에게도 걸맞은 보상과 위로를 보내준다. 그리하여 세상에 ‘태생부터 악당’ 같은 건 없었음을 관객들에게 일깨운다. 물론 안다. 현실은 그리 천진하지 않다. 이 영화가 매우 은근한 방법으로 비판하고 있는 영국의 브렉시트부터가 그렇거니와 지금도 유럽 곳곳에서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부르짖는 극우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 우리는 그런 현실 떠올리며 곰돌이의 선의를 냉소하는 어른을 잠깐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관객들 중 가장 솔직하고 사심 없는 관객, 즉 아동관객으로 돌아갈 수 있다. <패딩턴 2>는 그런 ‘내 안의 아동관객’의 웃음을 위한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한 알리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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