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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9 19:38 수정 : 2018.02.09 20:08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패딩턴 2>

영화 <패딩턴 2>의 한 장면. 주인공 곰돌이 패딩턴은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가족영화에서 발견된 스릴러의 시작. 패딩턴은 과연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사진 누리픽처스

때는 1956년. 영국 비비시(BBC)의 카메라맨으로 일하는 한 남자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늦은 시간에 아내의 양말에 넣어줄 선물을 찾아 런던의 옥스퍼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 팔리지 않은 채 홀로 백화점 선반에 남아있던 곰돌이 장갑인형을 산다.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작가 마이클 본드가 자신의 동화 ‘패딩턴’의 아이디어를 얻게 된 이 에피소드야말로 이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서를 가장 잘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을 돌봐줄 가족을 기다리며 기차역을 떠돌던 전쟁고아든 ‘이 곰을 돌봐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목걸이를 건 채 기차역에 홀로 남겨진 페루 출신 곰이든 간에, 작가가 깔고 있는 것은 가장 외로운 시간에 홀로 남겨진 누군가에 말을 걸어주는 따뜻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패딩턴이 디즈니사 캐릭터 ‘위니 더 푸우(Winnie-the-Pooh)’ 만큼 유명해지고 오랫동안 인기의 생명력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가족액션코미디

그렇지만 이건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다. 3년 전 영화 <패딩턴> 1편이 개봉되기 전까지 패딩턴은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진 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사실 영화 개봉 뒤에도 그다지 크게 알려진 것 같지는 않지만). 더구나 “친절하게 예절을 지키면, 세상도 네게 잘 대해줄 거야”라며 극중 인물인 ‘루시 숙모’가 패딩턴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솔직히 머나먼 은하계의 에스에프(SF)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2014년 영화 <패딩턴> 1편을 관람한 관객들은 그 ‘의외의 발견’에 적잖은 기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번에 영화 <패딩턴2>가 나왔다. 40년 전 삼촌과 숙모를 초청한 탐험가를 찾아 페루의 가장 깊숙한 숲속에서 런던으로 와, 새 가족을 찾아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1편은 장면마다 예측을 불허하는 의외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정해진 틀에 갇힌 느낌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예컨대 패딩턴 역에 홀로 남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곰돌이에게 처음으로 다정하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넨 ‘브라운 가족’이 수많은 우여곡절과 오해와 위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패딩턴의 새 가족이 될 것이라는 건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2편은 그러한 틀에서 자유롭다. 아시다시피 이런 ‘자유’란 때로는 양날의 칼날이어서 새로움의 기회가 될 수도 두서없음의 함정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에서 <패딩턴 2>는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영국 ‘특산품’인, 영화 <월레스 앤 그로밋>의 두 에피소드 <전자바지소동>과 <양털도둑>을 하나의 모델로 하여 자신의 틀을 짜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①대단히 소소하지만 당사자들에게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범죄스릴러를 이야기의 기본 틀로 삼고, 거기에 ②가족애와 우정이라는 반죽을 넣은 다음 ③웬만한 ‘진짜’ 액션영화를 훌쩍 능가하는 짜임새와 상상력으로 치밀하게 설계된 코믹액션을 이스트로 첨가하고 ④예상과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개그와 코미디 장식을 곳곳에 화려하게 달아 놓은 뒤 ⑤악의나 냉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화적 천진함이 지닌 온기로 영화 한 편을 구워내는 <월레스 앤 그로밋>의 요리기법을 <패딩턴>의 1, 2편 역시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 ‘위니 더 푸우’만큼 유명
곰돌이 패딩턴, 영화로도 제작 인기몰이
2015년 영화 <패딩턴>의 성공 이어
2편에선 스릴러 코믹 등 탄탄한 구성

패딩턴은 고향 페루에 계신 루시 숙모의 생일선물로 준비하려 했던 ‘런던의 열두 개 랜드마크’라는 희귀 팝업북(물론 이 팝업북은 런던이라는 배경의 개성 및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관광영화적 포석)이 도둑맞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명을 쓴 패딩턴이 투옥되고 그의 누명을 벗기려는 가족들의 좌충우돌이 범죄 스릴러의 기본 내용을 이룬다. 맞다. 이 내용은 그로밋이 양(羊) 연쇄살해범으로 몰려 투옥되자 월레스의 도움으로 탈옥한 뒤 결국 누명을 벗게 되는 영화 <월레스 앤 그로밋>의 ‘양털도둑’ 에피소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그러고 보면 <패딩턴> 1편의 이야기 흐름은 ‘양털도둑’의 전편인 ‘전자바지소동’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서 <패딩턴 2>는 1편에서도 십분 활용됐던 또 하나의 참고서를 뽑아드는데, 다름 아닌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다. 특히 패딩턴이 감옥에 투옥되는 대목부터는 아예 대놓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옥 장면을 오마주했다. 인디고블루-흰색 줄무늬의 죄수복부터 면회실 창문을 액자처럼 활용하는 화면구성, 계단으로 이어진 중앙복도식 교도소 건물의 구조부터 감방 동료들과의 동화적이고도 만화적인 우정 쌓기, 그리고 교도소 내 케익하우스라는 설정까지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패딩턴 2>가 우리가 흔히 보는 ‘따라쟁이’형 짜깁기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패딩턴 2>는 자신이 참고하거나 오마주한 재료에 오렌지 마멀레이드(패딩턴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를 듬뿍 발라 자신만의 색채가 흥건히 밴 샌드위치로 만들어 낸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이런 쟁쟁한 재료들을 잘 씹어 삼킨 뒤 탈 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선 진공청소기라는 생활가전을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환기덕트 침투장면을 본 따 표현해낸 1편의 패러디 역량은 2편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월레스 앤 그로밋> 뿐 아니라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꽤 재밌는 작품인 <맨하탄 미스테리>의 한 대목까지도 패러디 했다. 여기에 아주 작은 실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대 재난으로 발전하는 ‘나비효과식 코메디’도 역시나 더욱 기발하고 정교해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패딩턴의 귓구멍 칫솔질이라는 사소한 실수가 실내 래프팅이라는 거대 재난으로까지 불어났던 1편의 ‘변기 홍수’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2편이 이의 후속타 격으로 내놓은 ‘살아 움직이는 바리깡 소동’ 장면에서는 약 230퍼센트 정도 증강된 코믹함을 예상하시면 되겠다. 그리고 그 코믹함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
인상적 장면을 오마주해 더 큰 재미
“안녕” 먼저 말 건네는 선의를 강조
‘가족영화’로서의 핵심 잘 지켜내

선의로 가득찬 동화 같은 세상 속으로

뭐니뭐니해도 <패딩턴 2>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펀치는 이 영화 특유의 선의로 가득한 따뜻함이다. 창문닦이 알바를 하던 패딩턴은 창문이 끔찍하게도 더러운 이웃에게 창문을 닦을 것을 권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신경 꺼. 돈 안 내.”라는 뚱한 한 마디뿐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패딩턴의 대사는 “그럼 말고”가 아니다. “뭐, 아무튼 닦아야겠어”이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패딩턴의 이러한 선의는 1편에서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 혼자 남아 있던 곰에게 말을 걸어준 엄마 ‘메리 브라운(샐리 호킨스)’의 첫 마디 “안녕?”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리고 집을 나와 폭우 쏟아지는 거리를 헤매던 패딩턴에게 비를 피할 자리를 내주고 모자에 넣어둔 음식을 말없이 계속 꺼내주던 버킹검 궁 근위병의 무표정한 따뜻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측은한 마음에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시간에 백화점 선반에 혼자 남아있던 곰 인형을 산 한 남자의 따뜻한 시선을 그대로 닮아 있다. 영화는 심지어 패딩턴과 가족을 위기에 빠뜨린 악당(휴 그랜트가 완전히 작정한 듯 화려하고도 다채롭게 변신변장하며 이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을 응징하는 대신 마지막엔 그에게도 걸맞은 보상과 위로를 보내준다. 그리하여 세상에 ‘태생부터 악당’ 같은 건 없었음을 관객들에게 일깨운다.

물론 안다. 현실은 그리 천진하지 않다. 이 영화가 매우 은근한 방법으로 비판하고 있는 영국의 브렉시트부터가 그렇거니와 지금도 유럽 곳곳에서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부르짖는 극우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 우리는 그런 현실 떠올리며 곰돌이의 선의를 냉소하는 어른을 잠깐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관객들 중 가장 솔직하고 사심 없는 관객, 즉 아동관객으로 돌아갈 수 있다. <패딩턴 2>는 그런 ‘내 안의 아동관객’의 웃음을 위한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한 알리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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