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7 10:01
수정 : 2018.01.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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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 더 머니>의 한 장면. 억만장자 장 폴 게티의 손자인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 게일. 그는 납치된 손자를 위해 한푼도 내어 줄 수 없다고 선언한 전 시아버지(장 폴 케티)와 갈등한다. 판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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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 감별사 <올 더 머니>
주연배우, 성폭력 건으로 중도하차
긴급 재촬영서 출연료 성차별 논란도
‘돈’으로 시끄럽던 영화가 그린 돈의 세계
1975년 석유재벌 게티 가의 실화 담아
납치된 억만장자의 손자 몸값 200억원
손자의 목숨보다는 돈이 중요한 조부
이에 맞서는 친모의 소리 없는 비명
인간 군상 낱낱이 드러낸 납치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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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 더 머니>의 한 장면. 억만장자 장 폴 게티의 손자인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 게일. 그는 납치된 손자를 위해 한푼도 내어 줄 수 없다고 선언한 전 시아버지(장 폴 케티)와 갈등한다. 판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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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 더 머니>, 뚜껑을 열기 전부터 말이 참 많았다. 개봉예정일을 두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스물 두 신에 달하는 배우 케빈 스페이시 출연 장면을 전부 들어낸 다음 또 다른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긴급 캐스팅해 재촬영을 단행하는 결단도 그러했지만 (그 무렵 케빈 스페이시의 30여년 전 성추행 사건이 폭로되면서 작품에서 중도 하차해야만 했기 때문) 그 재촬영으로 지급된 배우들의 개런티에서의 차별 또한 상당한 화제 및 뉴스였다는 것은 이미 세간에 알려진 사실이다.
주연인 미셸 윌리엄스는 일당 80달러로 출연료는 대략 100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조연급 주연이었던 마크 월버그는 15만 달러, 출연료는 17억이었다. 심지어 이 둘은 같은 에이전시인 ‘윌리엄 모리스 인데버’ 소속이다. 어찌 되었건 ‘도덕적 판단이 아닌 비즈니스적인 판단’에서 케빈 스페이시 출연분의 재촬영을 결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두 개의 목표를 이뤘다. 차질 없이 2017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작품을 개봉하는 데 성공했으며 동일사건 소재의 드라마(다름도 아닌 영화계 거장 대니 보일이 연출하고 있는 <트러스트>)의 방영 전 개봉을 달성했다. 이에 더해 배우 마크 월버그는 재촬영 개런티 전액을 성폭력 박멸운동 단체 ‘타임즈 업’에 기부함으로써 출연료 성차별 논란을 미담으로 마무리 했으니 사실상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200억 원 몸값 유괴사건, 그 실화의 힘
그러나 2018년 골든글로브의 성폭력·성착취 타파 흐름에 놓였던 <올 더 머니>를 둘러싼 해프닝마저도 이 영화의 소재인 억만장자 장 폴 게티의 손자 유괴 사건이라는 실화 자체의 흥미로움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1975년 당시에는 훨씬 큰돈이었을 1700만 달러(대략 200억 원)라는 몸값 요구, 그리고 다들 금세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5개월이나 이어지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폴 게티의 인간적 면모 등 <올 더 머니>가 담고 있는 실화는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의 ‘서프라이즈’였다.
영화는 히피풍 소년이 한밤중의 로마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납치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복면괴한들이 모는 마이크로버스에 갇힌 소년의 나레이션이 깔린다. “나는 게티 가의 사람이다. 당신들과 겉보기엔 같아 보여도 우린 다르다.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이 휘어져버리는 그런 행성의 사람들처럼.” 일순 거부감 울컥 치미는 대사이지만 사실이 그렇긴 하다. 이해는커녕 어렴풋이 짐작이나 해볼 수 있을까? 돈이 많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던 석유재벌의 세계. “내가 얼마 버는지 안다면 진짜 억만장자라고 할 수 없지”라는 말을 느긋하게 뱉을 수 있었던 그 재벌의 혈육이 된다는 것은 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유괴사건이라는 지진이 석유재벌 장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라는 외계행성의 지표면을 흔든다. 그리고 세인들의 호기심이라는 지진계가 그 지진파를 낱낱이 기록한다. <올 더 머니>는 이 5개월간의 유괴사건이 남긴 지진파 기록을 외계행성의 지표 아래 지각구조를 규명해내기 위한 탐침으로 사용한다.
상당히 편의적인 구분이지만 이 영화는 납치된 게티 3세(찰리 플러머)가 겪게 되는 일련의 고난을 장르적인 톤으로 풀어가는 액션스릴러 부분과, 몸값을 놓고 장 폴 게티와 그의 전(前) 며느리 겸 게티 3세의 엄마인 게일 해리스(미셸 윌리엄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밀당’을 통해 돈과 인간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들여다보는 저널리즘적 드라마 부분, 이렇게 두 축으로 크게 나눠질 수 있겠다. 이 중 납치 스릴러에 해당되는 부분은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inspired by)’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어느 정도의 픽션이 가미돼 있는데, 이는 관객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아드레날린 주사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리들리 스콧의 표현에 따르면 ‘모닝콜(wake-up call)’).
예를 들어 실화에서 게티 3세는 감금기간 내내 범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질의 생사가 달린 이 긴박한 장면에서 영화는 결정적인 타이밍에서 끊어 넘기는 편집으로 관객의 긴장감과 호기심을 끌어가는 장르의 전형적인 수법을 쓰고 있다. 다소 허망하게도 게티 3세는 자신이 처한 상황 상 범인들의 얼굴을 거의 제 2의 가족이라도 된 것인양 자주 보게 되는데, 영화는 외려 이를 역이용한다. 이른바 ‘역(逆) 스톡홀름 신드롬’인 듯 게티 3세에게 각별한 연민과 애정을 품는 납치범 ‘칭콴타(로맹 뒤리스)’라는 재미있는 캐릭터(실존 인물)가 등장한다. 원작 격인 논픽션(존 피어슨의 <고통스럽게 부유한>)의 저널리즘적인 접근에 스릴러의 색채를 입힌 셈이다. 이는 액션스릴러에 다큐멘터리의 색채를 가미하는 데 능한 리들리 스콧 특유의 연출(한 예로 이탈리아 총기병대 ‘카라비니에리’의 범인 아지트 급습장면이나 밤거리 추격 장면)과 맞물리면서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리들리 스콧이라는 이름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 이런 류의 유괴납치 스릴러는 국내외의 픽션과 논픽션을 막론하고 무수히 있어 오지 않았나. 바로 이 대목에서 앞서 언급했던 저널리즘의 진가가 드러난다. 많은 유괴영화들처럼 <올 더 머니>의 이야기가 돌아가는 회전축 역시 돈이다. 다만 ‘세상의 모든 돈(All the Money in the World)’이라는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듯 <올 더 머니>의 돈은 단순 가치교환수단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의 돈은 인간 존재의 어떤 특수한 조건이다. 영화 초반 어린 손자와 함께 로마 유적을 거닐던 게티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잠깐 담배 사러 나갔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지”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처럼 어쩌면 그는 황제일지도 모른다. 궁성에서 가장 먼 변경까지의 거리 대신 보유자산의 자릿수로 그 건재함을 측량하고 강력한 군대 대신 냉혹한 변호사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정도만 다를 뿐.
돈이 무색한 윌리엄스의 빛나는 연기
하여 영화가 그를 그리는 방식 또한 리들리 스콧이 자신의 과거작 <글래디에이터>에서 로마 황제를 다루던 방식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화면에 채 담기지도 않을 만큼 높은 천장. 그곳에서 게티는 선언한다. “내 손주가 14명인데, 지금 몸값을 낸다면 유괴된 손주가 14명이 되겠죠.” 몸값을 한 푼도 내줄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대사를 필두로 그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좀스러움을 차례로 선보인다. 드넓은 정원 한가운데의 저택에 손님전용 공중전화를 설치해두고(실제로는 저택의 재건축 공사가 끝난 뒤 철거했다는 후문), 석유파동으로 매일 자신의 손자의 몸값 이상의 돈을 벌어들일 때에도 돈이 없다고 버틴다. 우여곡절 끝에 몸값 지불을 결정한 뒤에도 손자의 엄마 겸 전(前) 며느리를 데려다놓고 몸값 지불에 따른 세금공제한도를 논하는 게티의 모습은 화면비 2.38 대 1의 드넓은 프레임 속에서 더욱 작아 보인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게티 3세의 엄마 게일이 있다. 그는 아이들의 양육권과 양육비를 빼고는 게티의 재산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 것으로 게티의 아들과의 이혼을 마무리했다. 그 덕분에 그에게 1700만 달러 같은 돈은 머나먼 우주 밖 백색왜성 같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와 전 시아버지 사이에 놓인 거대한 진공의 바다를 건너서 그 백색왜성에 당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란! “모든 것에는 제값이 있고, 그걸 알아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지”라는 게티의 대사와는 달리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에 매겨진 ‘동료배우 마크 월버그의 1퍼센트 이하’라는 가격이야말로 지난 2017년 헐리우드에서 벌어진 가장 황당무계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기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렇듯 돈을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것은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말이었다. ‘돈은 말을 한다. 왜냐하면 돈은 은유이며 번역가이며 다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은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은유하고 번역해준다. 그리고 그 설득력은 그 어떤 언어와 매체가 가진 설득력보다 강해 보인다. 다소 조악한 예이겠다만 이제 ‘박스오피스 집계’를 먼저 꺼내들지 않고는 영화를 논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돈의 세계, 그 한가운데에서 <올 더 머니>는 거꾸로 돈을 은유하고 번역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게티가 던지는 이 대사 한 마디에 응축돼 있다. “(어떤 사람이 부유해져서) 원하는 모든 선택이 가능하게 되면, 그 순간 심연이 펼쳐지지.” 이 흥미진진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심연 안팎의 풍경이다. 우리가 언제나 동경하는 그 심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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