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8 13:14
수정 : 2017.11.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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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스티스 리그>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그동안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등의 인물들이 은연중에 전파해온 부자만능주의를 의도치 않게 효과적으로 비판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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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저스티스 리그
약 3억달러 고예산, 화려한 캐스팅
그럼에도 ‘잃어버린 119분’ 혹평 나와
슈퍼파워 가졌지만 ‘힘’ 못쓰는 배트맨
비장한 죽음 뒤 손쉽게 부활한 슈퍼맨
스토리텔링 부실로 매력 잃은 주인공
‘돈이 곧 힘’이라는 ‘정설’ 깨져
그러나 다이앤 레인, 제이 케이 시먼스 등
원로배우 대거 출연, 특별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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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스티스 리그>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그동안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등의 인물들이 은연중에 전파해온 부자만능주의를 의도치 않게 효과적으로 비판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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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날까지 엠바고(보도제한)를 걸고 언론에 공개됐던 영화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 엠바고가 충분히 이유 있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절대로 사전 누설되어서는 안 될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정도 화려한 캐스팅과 거대한 예산(약 3억달러), 그리고 이 정도 사전홍보를 앞세운 영화가 개봉한다면 ‘나 같아도 그러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엠바고 해제 이틀 전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블로그 등 일부 인터넷상에서는 ‘엠바고 해제’라며 리뷰를 자처하는 내용의 글들이 유통되고 있는 것 같다만, 다들 ‘엠바고를 지키겠다’는 서명까지 했으면서도 종국에는 그 엠바고의 ‘해제’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문제의 글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된다. 또한 현재 <저스티스 리그>의 예매율 등을 놓고 볼 때 이 칼럼이 실릴 때쯤이면 이 영화의 완성도 및 재미를 놓고 상당히 무성한 이야기가 이미 나와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 이야기들이 주로 ‘논란’이라는 타이틀로 유통되면서 ‘도대체 어떻기에?’라는 노이즈 마케팅 식의 수요가 새로이 발생되는 등의 흐름도 다소간 예상된다. 어차피 많은 관객이 관람료와 시간을 들여서 본 영화라면, 그것을 ‘잃어버린 119분’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건질 수 있는 영양가를 최대한 추출해내 ‘그래도 이건 건졌던 119분’으로 전화위복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볼거리가 풍부하다’라는, 모든 고예산 ‘망작’들이 앞세우는 해명을 제외한 <저스티스 리그>의 장점을 꼽아보고자 한다.
배트맨이 쏘아올린 물질주의에 대한 ‘경종’
무엇보다도 <저스티스 리그>는 현재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만 있는 부자만능주의에 대해 본의 아니게 경종을 울리고 있어 돋보인다. 이는 원더우먼, 슈퍼맨과 더불어 이 영화의 핵심인물 3인방을 이루고 있는 배트맨을 통해 실현된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부자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다음과 같다. “배트맨 형님의 슈퍼파워는 무엇이지요?” “나 부자야.” 그렇다. 마블 코믹스 소속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이 그러하듯, 배트맨의 슈퍼파워는 돈,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실현해낸 최첨단 무기들이다. 미국의 만화출판사 디시 코믹스가 디시 유니버스 프랜차이즈를 만들기로 작정해 보유 인물들을 그에 걸맞게 재탄생시킨 뒤, 마침내 <저스티스 리그>라는 종합운동장에 일괄 수용하는 과정 내내 배트맨의 슈퍼파워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의 관할구역, 그리고 그와 함께 뛰는 동료들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전편 격이라 할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자신의 구역인 고담시를 벗어나 타 도시로 구역을 확장할 경우 카리스마, 매력, 그리고 액션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던 배트맨은, 이번에는 체르노빌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것 같은 가상의 공간인 폐원전이 있는 무명의 러시아 마을까지 활동영역을 넓힘으로써 극도로 저조해진 카리스마의 한계를 노출하게 된다. 워낙에 두서없이 전개되는지라 상세한 상황 전달은 쉽지 않지만 아무튼 절대반지 대신 절대상자(‘마더박스’가 그 공식명칭) 3개를 모아 지구에 지옥을 실현시키려는 악당 ‘스테픈울프’ 및 그의 휘하에 있는 크롬도금 파리맨들과의 최후 대결에서 배트맨은 대형 수송선과 배트모빌에 탑승한 채 미사일을 흩뿌리며 분발하는 듯 보이나, 이내 집중공격을 받고는 간신히 탈출해 거의 사망 직전까지 몰리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나 나름 포스터의 중앙부를 점유하고 있는 핵심 인물인 배트맨이 허망하게 사망치 아니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그는 곧바로 또 다른 슈퍼히어로에 의해 응급구조 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그의 생존 여부가 아니라 무기력한 액션과 무너진 카리스마일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배트맨의 초라한 액션은 최후의 대결 이전에도 계속 노출되고 있는바, 또 다른 주요 인물들에게 종종 구타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나름 회심의 일타로서 내놓은 ‘나이트 크롤러’라는 이름의 거미형 전차는 악당의 내습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방어하지도 못한 채 등장인물들의 단체 탈출용 구명선 정도의 역할에 머물고 만다. 그나마 이 장비를 운전하는 것은 배트맨이 아닌 ‘사이보그’라는 후배급 인물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배트맨이 처한 이러한 난관은 마치 ‘사우론’(영화 <반지의 제왕>의 악당)의 낮은 단계의 버전인 것 같다. 거의 악마의 아들에 가까운 ‘스테픈울프’는 물론, 아마존의 공주, 바다의 왕자, 온몸이 외계물질로 만들어진 자유자재 변신기계 소년 등 다들 워낙에 신에 가까운 슈퍼파워를 보여주는 악당이나 동료와 함께 있음으로 인해 그 무력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처럼. 그리하여 우리는 영화 내내 목격하고 체감하게 된다. 배트맨의 슈퍼파워인 돈은, 전용 제트기에서 원더우먼에게 값비싼 스카치 한 잔을 따라주는 것 정도 말고는 거의 힘도 되지 못함을. 그렇게 <저스티스 리그>는 토니 스타크 등의 인물들이 이제껏 은연중에 전파해온 ‘슈퍼리치가 곧 슈퍼파워’라는 부자만능주의를 의도치 않게 매우 효과적으로 불식하고 있다. 이런 장점 하나 발굴해내는 것만도 상당히 힘에 부친다만, 남아 있는 우리의 지혜를 모아 <저스티스 리그>의 포인트를 한 가지만 더 찾아보자.
우리는 이 영화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무한경쟁 무한양극화 세계에 만연한 절망에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수 있겠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이것이 대체 스포일러나 될 것인지는 다분히 의심스럽다만) 그렇다. 이는 물론 전편 격인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장렬하고도 거한 사망을 했던 슈퍼맨에 대한 얘기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런던 브리지 한가운데에 걸린 슈퍼맨 추모용 대형 조기(弔旗)나 뉴욕 한가운데에 마련된 슈퍼맨 추모공원에 헌화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와 맞물려 장엄한 슬로모션을 통해 제시되는 강도, 깡패, 노숙자 등 도탄에 빠진 뉴욕 시민의 모습을 통해 슈퍼맨의 부활을 예고한다. 비록 <저스티스 리그>의 포스터에서는 스포일러 회피를 위함인지 슈퍼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는 이미 <배트맨 대 슈퍼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부활이 예고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이미 기정사실에 가깝던 슈퍼맨의 부활은 악의 축을 ‘우리들끼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음을, 말 그대로 온몸 통해 깨달은 배트맨의 발 빠르고도 강력한 주장에 의해 실행된다. 이때 슈퍼맨의 부활 공정은 거의 컵라면 조리법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르고도 간편하다. 이제껏 그리도 장엄하게 조의를 표했던 인물이 그리도 빠르고 간편하게 부활하는 것이 내심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영화는 되살아난 슈퍼맨이 예전의 그 슈퍼맨이 아닌 ‘좀비 슈퍼맨’(그렇다. 실제로 영화에서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일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다른 인물도 아닌 슈퍼맨이 좀비가 되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는 상황이 계속되리라 생각할 관객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현명한 판단에 의해, 그 상황 또한 금세 정리정돈 된다. 부활의 과정만큼이나 빠르고 간편한 방법으로 슈퍼맨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이글거리는 석양에 망토 자락 휘날리게 되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에 등장한 원로배우들의 활약
그리하여 우리는 얻게 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그리고 심지어는 죽더라도 되살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희망찬 교훈을. 아, 그러고 보니 <저스티스 리그>의 장점은 또 있다. 이 영화가 배우 제러미 아이언스, 다이앤 레인, 제이 케이 시먼스, 빌리 크루덥 같은 원로급 유명배우들을 다수 캐스팅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대목이라 하겠다. 물론 이 배우들의 등장 비중은 전혀 크지 않다. 특히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하는 ‘알프레드’는 브루스 웨인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거의 스스로 움직이는 법이 없는 복지부동 무사안일 자기계발적인 인물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런 배우들을 이런 고예산 배정된 영화에 캐스팅함으로써 작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줬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캐스팅은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저스티스’ 중 하나였다 하겠다. 한국영화에도 한시바삐 이런 시스템이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스티스 리그>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그 바람조차 주저하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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