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드라이버>의 주인공 ‘베이비’는 악당적인 무표정함과 소년적인 수줍음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베이비 드라이버>의 주인공 ‘베이비’는 악당적인 무표정함과 소년적인 수줍음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
화려한 자동차 액션물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배경음악’ OST가 스토리텔링으로
전환되는 창의적 연출과
제이미 폭스 등 명배우 열연 그리고 그 박스에는 곧 새로운 테이프가 추가된다. ‘데보라’가 그 제목이다. ‘데보라’(릴리 제임스)는 베이비의 단골 식당에 새로 온 웨이트리스. 베이비는 “베이-비-”라는 가사가 들어간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채집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 노래, 제목이 뭐예요?”(‘멤피스 소울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던 칼라 토머스의 ‘B-A-B-Y’가 그 곡의 제목이다) 그것이 그들의 만남이다. 그 뒤 베이비의 이름을 알게 된 데보라는, 그와는 달리 자신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노래는 도대체 없다고 푸념한다. 이에 베이비는 재빨리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알려준다. 이어 두 사람은 적-청-황의 3원색의 빨래들이 일제히 돌아가는 코인 세탁기 앞에서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낀 채 티렉스의 ‘데보라’를 들으며(음악은 물론 베이비의 아이팟에 저장돼 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그리고 한참 뒤 ‘데보라’라는 제목이 적힌 베이비의 테이프는 등장인물 모두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폭탄이 된다. 그런 식이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오에스티(OST)는 배경에 깔리는 벽지가 아니다. 이 영화의 오에스티는 이야기가 얹어지고 사건이 연결되고 액션이 춤을 추고 자동차들이 드리프트 하는 플로어다. 그렇게 <베이비 드라이버>는 <저수지의 개들> 이후 어떤 식으로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오에스티 사용법에서 확고한 일보 전진을 이루고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영화의 액션 또한 음악에 스텝을 맞춰 춤출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총성이나 경적 소리를 음악에 맞춰서 편집해 넣은 액션 장면은 역시나 기발하다. 사실 감독이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였던 이런 식의 기법적인 파격(예를 들면 <뜨거운 녀석들>에서 사용한 ‘타임워프’ 몽타주라든지,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서의 만화적 자막 시지(컴퓨터그래픽)라든지)은 참신함을 넘어 과도한 재기(才氣)에 가깝다는 위화감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 전체가 음악 위에 얹어져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에서의 ‘리드미컬 총격전’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더욱이 이 ‘리드미컬 총격전’은 자신의 참신함에 감독 스스로 감동한 나머지 같은 기법을 계속해서 남발한 끝에 지루함을 유발시키고 마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대신 적절한 선에서 자제되고 있어 더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이 같은 절제의 묘는 액션의 ‘종목’에도 적용된다. 영화는 초반부터 계속된 자동차 도주 액션이 슬슬 눈에 익어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 베이비가 차가 아닌 발로 뛰어 도주하는 파쿠르풍 액션 시퀀스를 배치하는 현명함을 발휘하고 있다. 제목에 ‘드라이버’까지 박아 넣은 영화에서 파쿠르 액션을? 하지만 그 액션의 밀도 및 완성도는 자동차 도주 시퀀스와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고난도 자동차 스턴트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팔뚝형 액션영화의 범주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도록 해주고 있다. 그런 의외성이 가장 빛을 발하는 대목은 역시나 이야기 전개에서다.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고비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예상을 엎는 전개를 이어가는 감독의 스타일은 다른 영화에서 익히 봐온 것들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상업영화에서 그 엉뚱함이 여전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음을 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당신은 어떤 캐릭터가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아마 대부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악당과 소년의 공존 그런 의외성은, 주인공부터 조연까지 하나하나 개성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그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캐스팅과 연기에서의 적절함 또한 이 개성적이고 기발한 ‘음악’ 액션영화에 탄탄한 설득력을 얹고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악당적인 무표정함과 소년적인 수줍음이 공존하는 베이비 역의 앤설 엘고트의 마스크와 연기는, 음악과 더불어 이 영화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다소 겉도는 행보를 보였던 제이미 폭스 역시 위험한 기운을 땀 냄새처럼 발산하는 다혈질인 ‘배츠’ 역을 만나 오랜만에 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케빈 스페이시 역시 오랜만에 제 역할을 만난 느낌이다. 전혀 웃기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웃기거나 전혀 겁주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겁주는 ‘박사’ 캐릭터의 미묘함은 그의 노련한 연기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면에는 차마 다 적을 수 없는 각종 크고 작은 재미들이 <베이비 드라이버>가 도는 코너와 코너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그것은 사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여 필자의 키보드는 이쯤에서 파킹. *9월14일 개봉작입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