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색 제복을 입은 주인공 송강호가 모는 택시는 연두색 브리사(기아차에서 만든 차의 모델명) 택시다. 연노랑과 연두색. 이 두 색깔의 조합만으로도 영화는 <인터스텔라>를 압도하고도 남는 타임머신 효과를 득한다. 쇼박스 제공
광주항쟁 한복판으로 들어간
독일인 기자와 택시기사 소재
‘옳음’과 ‘마땅함’ 먼저 생각했던
역사적 사건 속 소시민들 그려
‘짧은 영어’로 풀어간 코미디
때론 맥락 벗어나 과한 느낌도
주인공 송강호와 추억 아이템들
메시지와 분위기 모두 살려내
병아리색 제복을 입은 주인공 송강호가 모는 택시는 연두색 브리사(기아차에서 만든 차의 모델명) 택시다. 연노랑과 연두색. 이 두 색깔의 조합만으로도 영화는 <인터스텔라>를 압도하고도 남는 타임머신 효과를 득한다. 쇼박스 제공
[토요판]한동원의 영화감별사<택시운전사>
이 영화의 주연배우 송강호가 ‘(1980년) 당시 광주에서 폭도가 진압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는 광주항쟁 당시의 경험을 얘기했다. 그 당시 어린이나 청소년이었던 세대들은 다들 아마 그런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광주사태’와 ‘폭도’라는 단어에 실려 있던 무게와 슬픔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뒤, 많은 사람들이 제법 단단하다고 믿고 있던 자신의 발밑이 순식간에 갈라져 버리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갈라진 지각판은 여전히 이어지지 않은 채 우리의 발밑에서 부유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라고, 그 기울기를 끝없이 확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광주를 떠올릴 때나, 아닐 때나.
그 지각변동을 일으킨 결정적인 충격파들 중에는 몇 장의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들은 모두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을 정면에서 클로즈업해서 찍은 것들이었는데, 그 사진 아래에는 ‘절대로 조작이나 유언비어 아님’을 알리려는 듯 거의 예외 없이 ‘독일 기자 누구누구 씨가 광주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
그 독일 기자 누구누구 씨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와 그를 광주로 데리고 갔던 택시기사(송강호)의 이야기가 마침내 영화로 나왔다. 소재는 영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소재만으로도 <택시운전사>는 반갑고 뭉클하고 궁금한 영화다.
일단 제목에서도 천명되고 있듯 영화는 거의 예외 없이 택시기사 ‘김만섭’의 시점을 따라 진행된다. 사실 항쟁의 현장을 더 생생하게 목격하고, 사진과 영상을 촬영해 세계에 알린 당사자는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다. 항쟁 자체를 담기에는 기자 쪽의 시점을 취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왜 택시기사 쪽의 시점을?
말할 것도 없이 이는 ①감정이입에서의 유리함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김만섭은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게다가 그는 택시기사다. 김만섭은 아내를 여읜 채 딸 하나만을 키우고 있는 아빠다. 그는 아내의 병원비로 재산을 날리고 단칸 사글세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 시위대 때문에 막힌 길에서 “그 비싼 등록금 내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이나 하러 다니나. 쯧쯧”이라는, 예전 대학생들이 근 20년 가까이 들어온 그 유명한 대사를, 차 안에 흘러드는 최루가스에 맞서 능숙하게 코 밑에 치약을 바르며 읊는다.
요컨대 영화가 택한 것은 당사자도, 가해자도, ‘운동권’도 아닌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사람’의 시점이다. 이는 감정이입뿐 아니라 그 ②사건 자체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관객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와 더불어 ③‘부분을 통해 전체를 드러내기’의 묘미를 추구할 찬스를 얻을 수 있기도 한 설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택시운전사>는 ③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런 묘미를 십분 살린 영화의 대표적인 예로 <28일 후> 같은 영화를 들 수 있겠는데, <택시운전사>도 크게 본다면 <28일 후>가 취하고 있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들어간 택시기사를 가로막은 것은 난데없게도 시골 마을 샛길까지 모두 막아선 군대의 바리케이드다. 아슬아슬하게 광주로 진입한 기사와 기자는, 길거리에 나뒹구는 유인물들, 플래카드들, 기자들을 욕하면서 태우지 않으려는 광주 택시기사들, 보닛이 구겨진 채 부상당한 젊은이를 싣고 차고로 돌아온 택시 등등을 통해 광주를 촉각적으로 목격한다. 이렇게 영화가 차례로 하나씩 내놓는 그림 조각들을 통해 관객들은 광주항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렇게 손수 끓여 먹는 식의 샤브샤브식 전개는, 구구절절 일일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야기 전개에서나 예산에서나 모두)이고도 체감적인 이야기 방식임을 <택시운전사> 또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픽션인 <28일 후>와는 달리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택시운전사>의 경우엔 이는 양날의 칼날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러한 전개를 취하는 순간 이야기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행경로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우연히 압도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 평범한 소시민’이 도달할 목적지란 결국 ‘체험적 각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큰 이변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점을 의식해서인 듯 영화는 상당 양의 장르적 양념을 가미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코미디다. <의형제>를 만들어냈던 송강호의 연기와 장훈의 연출이라는 조합에서 예상된 바와 같이 김만섭 캐릭터에는 <의형제>의 전직 국정원 직원 ‘이한규’ 캐릭터와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 배어 있다. 그리고 이 느낌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동행’(<의형제>의 경우 강동원이 연기한 북한 첩보원, 이 영화의 경우 잠입취재를 감행하는 독일 기자)과의 티격태격과 그를 통한 코믹함의 추구라는 구도로 인해 더욱 강해지고 있다.
특히나 이번에는 주인공을 위시한 전 국민의 ‘짧은 영어’ 코미디가 그 척추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위태로운 상황을 어물쩍 넘겨주는 윤활유로 활용되기도 하고, ‘언어 없는 의사소통’이라는 다소 흔하지만 그래도 뭉클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동장치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코미디는 후반부에 전개될 비극을 떠받치는 ‘눈물 부스터’로서의 느낌이 가장 강하다. 그것은 광주항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후반부의 비극적 전개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코미디들이 종종 전체적인 맥락에서 벗어난 과다양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행이 광주의 택시기사 ‘태술’(유해진)의 집에서 묵는 장면을 보자. 여기에서 일행은 갑작스럽게 대학생 ‘재식’(류준열)의 개인기가 어우러진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이어서 태술 부부의 짤막한 집안 이야기 및 폭소가 이어진다. 이 화기애애한 가족적인 장면의 돌출적인 등장은 ‘이제 조금 뒤에 뭔가 급박한 위기나 비극이 닥칠 것인가 보다’ 싶은 생각을 거의 자동적으로 하게 만든다.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굳이 이런 점을 거론하는 것은, 가족형 눈물압출영화의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주인공의 가족사 설정부터 할리우드 첩보액션급의 화려하고 실감나는 카 체이싱을 보여주는 후반의 추격 장면까지, <택시운전사>가 취하고 있는 장르적 색채의 농도가 원재료의 맛을 덮을 정도까지 간 것이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에서다. 이 안타까움은, 초반에 특히 두드러지는 김만섭의 택시운전사로서의 일상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그로 인한 극 진행 속도의 저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부분을 과감하게 다이어트하고, 그 대신 이 영화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는 힌츠페터 기자의 취재과정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더라면 훨씬 균형 잡힌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광주항쟁+그를 세계에 알린 잠입취재 기자+그를 광주에 데리고 간 택시기사’라는 조합만으로도 관객들의 감정이입의 가능성과 그 깊이는 충분히 확보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어떠한 인위적 부스터의 도움 없이도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전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부족함 없이 전달한다. <고지전>에서도 볼 수 있었던 감독의 ‘이야기 있는 액션’에 대한 솜씨를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자,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금남로 발포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관객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팔뚝에 신호등 배지 아로새겨진 추억의 병아리색 제복을 입고 있는 배우는 다름도 아닌 송강호다. 그가 모는 택시는 (아마도 이 영화의 주축 관객층이 될) 40, 50대 관객들의 결정적 추억 아이템 중 하나인 연두색 브리사(기아차에서 만든 차의 모델명) 택시다.
♣H4s우리가 잃어가는 것
연노랑과 연두색. 이 두 색깔의 조합만으로도 영화는 <인터스텔라>를 압도하고도 남는 타임머신 효과를 득한다. 더구나 영화는 그 자체로 80년대인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택시 안에서 따라 부르는 송강호로 스타트를 끊는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도 못 지운(또는 안 지운?) 2017년의 서울 시내 고층아파트 덩어리들마저도 이 강력한 추억 타임머신의 드라이브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추억의 운전사는, 광주항쟁을 끝내 아름답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옳음’과 ‘마땅함’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작지만 확고한 감각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아빠가 손님을 (광주에) 두고 왔어”라는 결정적 대사 한 줄에 모두 담겨 있는 그것을, 영화는 뭔가 장려하고 비장한 수식어로 치장하지도 않고 거대한 담론에 집어넣어 확대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도리’라는 말로 요약되는 그것은 지금의 우리가 점점 잃어가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택시운전사>는 추억과 회고의 영화가 아닌 현재의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광주를 2017년 현재에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했다.
<택시운전사>엔 주인공을 위시한 전 국민의 ‘짧은 영어’ 코미디가 그 척추를 이루고 있다. 때로는 위태로운 상황을 어물쩍 넘겨주는 윤활유로, ‘언어 없는 의사소통’이라는 뭉클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동장치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종종 전체적인 맥락에서 벗어난 과다양념으로 느껴지도 한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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