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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닉 모턴은 영화의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도망치고, 욕먹고, 구르고, 얻어맞고, 차이고, 집어던져진다. 하늘을 날지도, 방탄을 하지도, 광선을 뿜지도 않는다. 초인간적 존재가 됐을 때에도 인간적인 선 안에 머문다. 납득되지 않을 수 없다. 유피아이(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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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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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닉 모턴은 영화의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도망치고, 욕먹고, 구르고, 얻어맞고, 차이고, 집어던져진다. 하늘을 날지도, 방탄을 하지도, 광선을 뿜지도 않는다. 초인간적 존재가 됐을 때에도 인간적인 선 안에 머문다. 납득되지 않을 수 없다. 유피아이(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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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각종 고전 몬스터 및 호러 캐릭터들(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늑대인간 등등등)이 상호작용 합종연횡하며 노닐도록 야심차게 론칭한 통합 프랜차이즈 브랜드(이른바 ‘시네마틱 유니버스’)인 ‘다크 유니버스’의 첫 포문을 여는 영화이니만큼, 유니버설로서는 대단히 중차대한 영화일 것이겠다만, 어차피 우리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 그 자체가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가 관심의 최우선순위에 놓일 것이므로, 언제나처럼 그러한 관점에 입각한 감별.
일단 <미이라>를 라면포장지 뒷면 조리법 해설풍으로 개괄하자면 ①히치콕 영화(<현기증>이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정도가 적당하겠다)에서 데리고 나온 남녀 주인공 캐릭터들을 ②<인디아나 존스> 1편과 3편을 우려 만든 국물 속에 떨어뜨려 놓은 뒤 ③<엑소시스트>의 악령과 신부를 각각 고대 이집트 여류 미라와 지킬 박사로 변환시켜 추가하고, 거기에 ④우사인 볼트급의 기동성을 점지받기 이전(그러니까 <28일 후>와 <새벽의 저주> 이전)의 느리고 관절 빠진 고전 좀비들을 적당량 뿌려 충분히 흔들어 준 다음, 그 위에 ⑤제이슨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풍의 액션을 토핑으로 얹고 ⑥그것을 톰 크루즈의 이름 아로새겨진 호러 색채 짙은 그릇에 담아낸 듯한 형국 정도가 된다 할 것이다. 아참, 완성된 요리를 ‘다크 유니버스’ 소속의 또 다른 주전선수 헨리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프린트된 식탁보 깔린 테이블 위에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1999년판 <미이라>? 흠, 거기에서 마초남-연약녀라는 캐릭터 구도와 브렌던 프레이저와 낙타가 빠졌다.
“무엇보다도 호러영화”
요약하자면 <미이라>는 고대유적 사막 탐험 어드벤처, 미스터리 스릴러, 에스에프(SF) 판타지 호러, 좀비, 액션, 그리고 소정의 로맨스까지, 하절기 대박지향적 영화들이 지향하는 장르적 요소들을 거의 다 함유하고 있는바, 이러한 경우 가장 먼저 우려되는 것은 모두 해주려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마는 광폭 오지랖의 오류일 것인데, <미이라>는 용케도 그러한 함정을 피하고 있다. 그를 뒷받침하는 핵심은 장르적 줏대일 것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호러영화”라는 감독(앨릭스 커츠먼)의 말처럼 <미이라>는 줄곧 호러의 디엔에이(DNA)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백미이자 실질적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주인공 일행이 미라가 담긴 관을 실은 수송기를 타고 이동하는 초반 장면을 보자. 스포일러 우려로 상세 묘사는 어렵겠다만, 저주 덩어리 미라의 관을 실은 수송기가 맞이할 운명을 밝히는 것이 스포일러라고 하면 그것은 독자 여러분의 지성에 대한 모독일 것이므로 그냥 얘기하자면, 이 추락 장면은 항공기 추락 장면 역사에 소규모 획을 그은 <더 그레이>의 추락 장면에 롤러코스터적 쾌감을 가미한 꽤 짜릿한 추락 액션이었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추락 장면 자체에 정신을 빼앗겨 놓치기 쉬운 것은,
그 장면에 도달할 때까지 영화가 한 단계씩 불길한 징조나 암시들을 겹쳐 올리면서 긴장을 쌓아가는 리듬감이다. 감독은 어린 시절 ‘영화가 천천히 약을 올리면서 뭔가 엄청난 것이 나올 것 같은 긴장감을 만들면, 그게 어떤 것일지를 상상해보는’ 호러 특유의 게임에 매료됐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장면이 바로 그런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이 장면 이후에 영화는 본격적으로 호러의 디엔에이를 드러낸다. 즉, 엑소시즘 영화 및 좀비영화의 모드로 전환된 영화는 이 모드를 종반까지 이어가는데,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결정적인 분수령일 것이다. 만일 1999년의 <미이라>처럼 장대한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액션 어드벤처(그리고 코미디까지)를 기대한다면 2017년판 <미이라>는 상당히 답답한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은 벨기에제 복엽기 날아다니는 낭만과 향수의 사막언덕이 아니라, 현대의 영국 및 런던, 그것도 주로 지하묘지, 옛 수도원, 지하철, 하수도 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재삼 강조한다만, 이 영화의 좀비들은 이미 현대 좀비의 표준이 된 달리는 좀비들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조지 로메로 감독, 1968)에서 그대로 모셔온 듯한 느릿느릿 비척비척 걷는 고전적 좀비들이다. 물론 21세기의 <미이라>에 출연한 좀비들이니만큼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한 철저한 닭뼈형 분장을 완비하고는 있고, 심지어 나중에는 발군의 수영 실력까지도 선보이고 있다만, 속도감이라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미이라>는 호러의 광맥에서 발굴해낸 자원들을 자신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다. <엑소시스트>의 악령 씐 소녀 ‘리건’은 미라(‘아마네트’, 소피아 부텔라 분)로 모습을 바꿔 등장하고, 좀비는 주술이나 방사능 노출 같은 고전적인 원인 대신 ‘미라의 생명 빨아들이기’ 또는 ‘미라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식으로 말이다.
몬스터·호러캐릭터 합종연횡한
‘다크 유니버스'의 첫 작품
블록버스터적 요소 담으면서도
든든한 호러 DNA 뼈대로 유지
상상력 넘치는 ‘예의바른' CG
항공기 추락 등 액션 장면 살려
조연들 캐릭터·설득력 떨어지지만
주인공 톰 크루즈 존재감 돋보여
그와 동시에 영화는 자신에게 자원을 제공한 영화 및 장르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새벽안개 깔린 숲속을 달리는 밴을 습격하는 좀비들의 모습은 물론이려니와, 미라가 주인공 닉 모턴(톰 크루즈)을 앞에 두고 갑자기 내지르는 “뜨거워-어-!”라는 비명은 <엑소시스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런 식으로 <미이라>는 호러팬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만한 요소들을 곳곳에 깔아두고 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는 1932년과 1999년의 <미이라>의 ‘리부트’다. 따라서 호러라는 뼈대는 어디까지나 액션 어드벤처와 에스에프 판타지의 외형에 덮인 상태로 드러날 뿐이다.
사실 2017년 <미이라>의 가장 결정적인 차별점은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다. 그것은 이집트도, 이라크(메소포타미아)도 아닌, 영국 런던이다. 더구나 영화는 런던 지하에서의 대규모 십자군 묘지의 발견으로 스타트를 끊고 있다. 런던으로도 모자라 십자군이라니? 왜? 그렇다. 이는 분명 대부분 관객의 예상으로부터 벗어난 출발점인바, <미이라>를 제목으로 단 영화의 이러한 오프닝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미스터리가 된다.
그렇게 이야기의 나사를 조인 뒤, 영화는 미이라 본연의 모드로 본격 진입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러셀 크로(‘헨리 지킬’ 역)의 내레이션으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고대 이집트’를 통해 미라가 미라이게 된 사연을 브리핑 받음과 동시에, 이 영화의 시각적 때깔에 대한 기본정보를 얻는다. 그것은 ①이 영화의 세트/의상/분장/소품 등이 고대 이집트를 묘사한 대개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지나친 화려함이나 갓 개장한 테마파크풍의 이질적 매끈함 없이, 꽤 자연스런 설득력을 보인다는 점, 그리고 ②시지의 손길을 최대한 감추거나, 시지 대신 촬영/편집/광학효과 등 전통적인 기법들을 재현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주목되는 것은 ②인데, 이 영화는 최근 개봉된 할리우드 대박지향적 영화들에 볼 수 없었던, 비교적 ‘예의바른 시지’(이 표현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모노노케 히메>에서 처음 시지를 도입하면서 천명했던 원칙이다)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영화가
시지에 잡아먹히는 우를 범하는 대신, 시지를 어디까지나 도구로 통제하면서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은 단연 지상전투, 항공기 추락, 자동차 전복 등의 액션 장면에서다. 이 역시 관람의 즐거움을 위해 상세한 묘사는 생략하겠으나, 참신한 시각적 상상력과 그를 실현해내는 적절한 연출만 있다면 그저 언덕을 구르는 밴이나 길에 넘어져 미끄러지는 2층 버스만으로도 얼마든지 강한 임팩트와 쾌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미이라>는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는 땅덩어리를 통째로 뜯어내서 들었다 놓고, 바다를 반쪽으로 가르고, 슈퍼태풍급 천둥번개 수반된 요란한 장풍 대결을 벌이며 도시 하나를 가루 내는 등등, 상상력도 완급 조절도 없이 잔뜩 규모만을 추구하는 액션 장면들이 안긴 먹먹한 마비감과 피로감 덕분에 꽤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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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는 초반 조이기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 엑소시즘 영화 및 좀비영화의 모드로 전환, 자신의 호러 디엔에이(DNA)를 종반까지 이어간다. 이를 위해 영화는 각 장르의 요소를 자신의 이야기 및 테마에 맞게 변형시키고 있다. 유피아이(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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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블록버스터
물론 이 영화의 약점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원더우먼 노니는 21세기 한복판에 등장한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안타까움 다분하다. 소피아 부텔라가 연기하는 아마네트(즉 미이라)의 카리스마는 영화를 장악하기엔 못내 역부족이며, 여성 고고학자 제니 할시(애너벨 월리스) 캐릭터는 1999년 <미이라>의 귀엽지만 퇴행적인 여성 캐릭터에서 제법 많이 벗어나 있지만 주인공 닉 모턴과의 로맨스에서의 설득력이라는 면에서는 대단히 취약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이다.(이는 제니 할시 캐릭터의 취약점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 자체의 취약점이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이 영화에는 톰 크루즈가 있다. 그가 연기하는 닉 모턴은 영화의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도망치고, 욕먹고, 구르고, 얻어맞고, 차이고, 집어던져진다. 하늘을 날지도, 방탄을 하지도, 광선을 뿜지도 않는다. 초인간적 존재가 됐을 때에도 인간적인 선 안에 머문다. 그 인간적 설득력 덕분에 <다크맨>(그러고 보니 이 작품도 유니버설의 영화다)적 비애를 뿌리며 읊조리는 닉 모턴의 마지막 대사는 본의 아닌 코믹함 대신 소정의 카리스마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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