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01 11:36
수정 : 2017.04.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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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나기’의 헤어스타일로 분장한 스칼릿 조핸슨의 얼굴은 애니메이션과의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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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 감별사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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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나기’의 헤어스타일로 분장한 스칼릿 조핸슨의 얼굴은 애니메이션과의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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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고스트 인 더 쉘>)은 기본적으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전설적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두 편, 즉 <공각기동대>(1995)와 <이노센스>(2004), 그리고 <공각기동대 SAC> 시리즈 등등의 쟁쟁한 작품들을 원재료로 삼고 있다. 이 원재료들을 장면별 인물별로 분해한 다음, 대략 <공각기동대>:<이노센스>:
=65:30:5 정도의 비율로 배합한다. 그리고 그중 결정적이다 싶은 장면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그 장면과 장면 사이를 이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로 접합한다. 이것이 <고스트 인 더 쉘>이 취하고 있는 개략한 모습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고스트 인 더 쉘>은 원작의 골수팬들이 아닌 일반인 관객들도 쉽사리 넘을 수 있도록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있다.
할리우드 리메이크라는 점
스포일러 우려로 인해 상세하게 얘기하진 못하겠으나, 이 영화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일단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기억이 삭제 또는 조작된 주인공의 과거 되찾기’쯤으로 정리할 수 있는바, 이는 <로보캅>의 성공 이래 수많은 영화들이 채택해온 플롯이다. 이는 ‘기계로 대체된 인체의 모호한 정체성과 진화에 대한 나름의 고찰’이라는 <공각기동대>의 자못 심각한 사이버 펑크적 테마보다는 훨씬 일반 관객에게 친숙하고 친절한 플롯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원작의 캐릭터와 설정들도 이에 맞춰 수정·변형되어 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물론 공각기동대의 핵심인 ‘쿠사나기 소령’ 캐릭터의 변화일 것이다. ‘쿠사나기 소령’은 <고스트 인 더 쉘>에서는 ‘메이저’(스칼릿 조핸슨)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그녀는 ‘거대 로봇 기업의 탐욕으로 탄생한 신상품 사이보그’라는, 관객들에게 비교적 익숙하고 감정이입을 끌어내기 쉬운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즉 ‘메이저’는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파고드는 투사이던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와는 달리, 악덕 자본과 결탁한 과학기술이 탄생시킨 가엾은 희생양의 느낌이 더 강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 애니 바탕으로
기억 잃은 주인공의 과거 찾기
원작보다 친절한 플롯 택하며
골수팬용 결정적 장면도 완비
스칼릿 조핸슨의 ‘싱크로율’↑
감정 과잉으로 위화감 들수도
‘잘해야 본전’인 프로젝트 한계
화려하고 거대한 예고편 본듯
그 감정이입을 보조하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인 ‘닥터 오우레’(쥘리에트 비노슈) 역시 이런 유형의 캐릭터에 으레 따라다니기 마련인 ‘로봇 엄마’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좀 단순화시켜 얘기해보자면 <아이 로봇>의 로봇회사 쪽 연구원 ‘캘빈 박사’(브리짓 모이나한) 캐릭터를 떠올리신 뒤, 거기에 회사 쪽과 공모했다는 죄책감을 추가하면 ‘닥터 오우레’에 얼추 근접하겠다.)
쿠사나기에 거의 버금가는 중요 캐릭터인 ‘바토’(필루 아스베크)에 대해서도 그의 상징이라 할 기계의안(일명 ‘잠들지 않는 눈’)을 하게 된 사연부터 친절하게 소개해 올리고 있는 한편으로, 인물 구성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것을 의식한 듯 ‘토구사’라든가 ‘이시카와’ 같은 캐릭터는 거의 등장시키지 않고 있다.
더하여, 과학기술과 인간정체성에 대한 성찰 같은 테마나, 근 미래의 가상 국가들 사이 치열한 외교전이나 정치적 음모나 암투 같은 골치 아픈 소재들 역시, 살짝 흔적만을 남겨둔 채 “너의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 너를 규정하는 거야” 같은 주제요약 대사로 간단하게 퉁치고 넘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 관객들에게 친절하기 위한 설정의 반대쪽에는, 골수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설정들 또한 갖춰져 있다.
앞서 말했듯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에서 추출해낸 결정적인 장면들을 약간씩 변조시켜 재현하고 있는 것을 위시하여, 홍콩의 번화가와 주거밀집지역을 골고루 담은 로케이션, 그 상공을 날아가는 스태빌라이저 장착된 헬기의 거대한 실루엣,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개인적 서명처럼 등장시키는 견종인 바셋하운드의 오마주풍 출연, 그리고 빌딩 꼭대기에서 광학위장술을 쓰며 강하하는 쿠사나기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그 결정적 장면까지, 영화는 팬들을 상대로 꼭 살려야 할 장면과 설정들에 대한 설문조사라도 한 듯 영화 곳곳에 골고루 원작의 지문을 뿌려놓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뿐인가. 영화는 온통 홀로그램으로 도배가 된 미래 도시의 이미지(맞다. <블레이드 러너>의 엘에이(LA)를 지배하던 네온사인은 홀로그램으로 대체된다)부터, <매트릭스>의 시각적 계승자를 자임하는 듯한 초고속촬영 슬로모션, 그리고 앞서 말한 ‘쿠사나기’의 과거와 그를 둘러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까지(<공각기동대 어라이즈>의 그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과거다),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의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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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차갑고 차분한 어투와 표정을 하고 무시무시한 몸액션을 보여주던 원작의 ‘쿠사나기’와는 달리 <고스트 인 더 쉘>의 ‘메이저’(스칼릿 조핸슨)는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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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원작에 맞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무래도 ‘메이저’ 역의 스칼릿 조핸슨일 것인데, <어벤져스> 시리즈나 <루시> 등의 영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에스에프 액션에 자신을 노출시켜온 그녀이므로 ‘쿠사나기 소령’ 역을 맡은 것 자체에 큰 위화감은 없다. 더구나 ‘쿠사나기’의 헤어스타일로 분장한 그녀의 얼굴은 애니메이션과의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그녀의 얼굴은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디자인한 극장판 쪽 ‘쿠사나기’보다는 시모무라 마코토가 디자인한 쪽의 ‘쿠사나기’에 가깝다)을 보여주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물론 좀 작고 다부진 느낌의 그녀의 체형은 ‘쿠사나기’의 평소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긴 하고, 특히 그런 부분은 살색 밀가루를 발라놓은 듯한 ‘광학위장복’을 입은 장면들에서 특히나 두드러진다만, 뭐, 그림이 아닌 실제 사람인 마당에 그 정도야.
그렇지만 외모만큼이나, 또는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캐릭터의 성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필시 많은 기존 공각기동대 팬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웬만한 일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쿠사나기’ 특유의 스테인리스 같은 카리스마,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철두철미하고도 과감한 정면돌파형 직무수행이야말로 그녀 최고의 매력이자 공각기동대의 중추라 할 텐데, <고스트 인 더 쉘>의 ‘메이저’는 언뜻 <로보캅>의 ‘머피’, 아니면 의 인조인간 ‘데이비드’, 아니면 <아이 로봇>의 로봇 ‘소니’를 떠올리게 하는 감성적인(심지어는 연약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나의 과거를 찾아서’라는, 다분히 개인적이고도 내향적인 테마를 설정함으로써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풍이 미국풍(또는 할리우드풍)으로 번안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톤 변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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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차갑고 차분한 어투와 표정을 하고 무시무시한 몸액션을 보여주던 원작의 ‘쿠사나기’와는 달리 <고스트 인 더 쉘>의 ‘메이저’(스칼릿 조핸슨)는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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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슬로모션 양념을 듬뿍 쳤을 뿐 원작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놓은, 예의 그 결정적 장면인 ‘광학위장(즉, 투명화) 상태로 물 위에서 서브머신건 맨을 제압하는 쿠사나기’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메이저’의 감정표현이다. 시종 차갑고 차분한 어투와 표정을 하고 무시무시한 몸액션을 보여주던 원작의 ‘쿠사나기’와는 달리 <고스트 인 더 쉘>의 ‘메이저’는 서브머신건 맨을 향해 거의 화풀이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붓고 있다. 원작의 팬들로선 이런 식으로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인간적’ 쿠사나기를 선뜻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영화는 원작을 접한 적 없는 미국 관객과 그 밖의 나라들의 ‘안 덕후’ 민간인 관객들에게도 접근 가능해야만 한다는 임무를 띤 할리우드 리메이크라는 점이다. 이 영화의 캐스팅이 공개되었을 때 이른바 ‘화이트 워시’(캐스팅을 백인 배우 일색으로 채우는 것)라는 비난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필자는 사실 이 영화의 두 명의 주요 동양인 캐스팅 중 ‘아라마키 부장’ 역의 기타노 다케시가 시종 일본어로만 대사를 하는 점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미국 관객들의 자막 혐오증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는 마당에 말이다.(마지막 장면을 빼곤 그가 영어를 하는 다른 배우들과 같은 프레임에 등장하는 숏은 거의 없다.)
그 정도도 감지덕지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대목이야말로 <고스트 인 더 쉘>이 위치하고 있는 좌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차린 것은 화려한, 그러나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만드는 입장에서 정말이지 잘해야 본전인 프로젝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골수팬 쪽이든 민간인 관객 쪽이든, 어느 쪽의 욕을 먹더라도 자신만의 노선을 설정하고 이를 견지하는 배포가 절실했다. 그러한 배포 있는 제작자와 연출자가 절실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갖춰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던 <고스트 인 더 쉘>에는 결정적으로 그것이 없다. 그 결과로 <고스트 인 더 쉘>은 안타깝기 그지없게도 뭔가 차린 것은 화려하게 많은 듯하나 정작 먹을 것은 별로 없는, 주인공 없는 뷔페 테이블이 되고 말았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는 배포 이전에 자신만의 노선, 즉 이 영화만의 ‘고스트’라 할 것부터 보이지 않는다. 하여 흡사 수미상관인 듯 ‘쿠사나기’의 강하 장면으로 돌아가는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 내가 두 시간짜리 거대 예고편을 본 것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야말로, 기계로 대체된 인체보다 훨씬 심각한 고스트의 부재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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