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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3 20:08 수정 : 2017.02.03 21:04

영화 말미에 이르러 주인공은 외계문자를 모니터 스크린에 적어서 외계인과 대화를 주고받기에 이른다. 이 외계문자의 구조와 해독 과정에서 보여주는 <컨택트>의 상상력은 그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유피아이(UPI) 코리아 제공

[토요판]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컨택트>

영화 말미에 이르러 주인공은 외계문자를 모니터 스크린에 적어서 외계인과 대화를 주고받기에 이른다. 이 외계문자의 구조와 해독 과정에서 보여주는 <컨택트>의 상상력은 그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유피아이(UPI) 코리아 제공

예전에 외화 제목 번역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었는데, 기억하시는지. 그중 영문 원제목을 또 다른 영문 제목으로 교체해 넣는 ‘원제목 빙자형 창작제목’도 있었다. 원제 ‘Arrival’(어라이벌)을 ‘컨택트’로 교체한 이 영화 역시 이에 해당될 것인데, 특기할 점은 20년 전인 1997년 이미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됐다는 것. 더욱이 이 영화의 원제야말로 ‘Contact’(콘택트)였다는 점이다(단, 당시의 한글 표기는 ‘컨’택트가 아닌 ‘콘’택트였음).

이렇게 서두부터 제목 얘기를 하는 이유는 2017년의(실제론 2016년 작) <컨택트>가 1997년의 <콘택트>와 실제로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한글 제목을 붙인 주최 측의 조처가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외계인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적어보면 일단 ①기본 플랫폼 외계문명과 인류의 첫 접촉, 그리고 그로 인해 발칵 뒤집힌 전세계와 강대국들의 긴박한 움직임을 미국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2017 <컨택트>는 1997 <콘택트>의 플랫폼을 그대로 공유한다. 또한 ②주인공의 설정 주인공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고, 강인하며, 남성들이 득실거리는 세계 안에서 흔들리지 않은 채 신념을 품고 전진해나가는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③상대남의 설정 그녀의 곁에서 함께 편견과 압박에 맞서는 조력자인 남성이 여주인공과 정반대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라는 점 또한 같다.

이러한 기본 외에도 ④가족과 상실감 주인공이 지극히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으며, 그 상실감이 그녀가 외계문명과의 교류 및 소통을 해나가는 데 있어 결정적 원동력(또는 단서)이 된다는 점, ⑤외계어 해독 외계문명의 메시지(또는 문자)를 해독해나가는 과정이 영화의 미스터리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 그리고 ⑥매파 대 비둘기파 외계문명에 대해 언제나 등장하는 질문인 ‘적인가 친구인가’에 대한 답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는 인물들(주인공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⑦소설 원작 1997 <콘택트>는 그 유명한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Contact)를 원작으로 삼고 있고, 2017 <컨택트>는 에스에프(SF) 작가인 테드 장의 단편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Story of your life)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등등, 1997 <콘택트>와 2017 <컨택트> 사이의 공통점은 20년의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높은 밀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1997 <콘택트>의 원작자 칼 세이건이 천체과학의 대중화 및 외계문명 탐사에 보였던 열정 및 영향력을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핵심은 <컨택트>가 <콘택트>와 어떠한 차이점을 보여주는가 하는 데 있을 것인데, 여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과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얘기하도록 하고, 일단 이야기 쪽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자.

외계문명과 인류의 첫 접촉
1997년 작 ‘콘택트’와 닮은꼴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즈의
외계문자 해독 과정이 ‘분수령’

‘4차원적’으로 소통하는 과정
설득력 없이 어물쩍 넘어가
‘인류화합’ 주제만 덩그러니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는 볼만

일단 앞서도 말했듯 두 영화 사이의 가장 결정적 차이점은 ①외계문명의 접촉 방식이다. <콘택트>에서는 나치 시대였던 1936년, 외계를 향해 쏘아진 인류의 첫 전파인 베를린올림픽의 히틀러 개막연설 영상을, 외계문명이 되돌려 보내는 것으로 ‘첫 접촉’이 시작된다. <컨택트>의 외계인은 그냥 온다. 우주선 타고.

하여 ②이들의 메시지 및 그에 대한 해독 역시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데, <콘택트>의 외계문명은 히틀러 개막사 영상에 ‘우주 공통어인 과학과 논리의 언어’로 쓰인 자신들만의 신호를 겹쳐 넣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와는 달리 <컨택트>의 외계생물은 그냥 외계문자로 메시지를 전한다. 자신의 우주선에 왕림하신 인간들에게 직접.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등등 각종 언어에 능통한 언어학자인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 역을 맡은 에이미 애덤스는 따뜻함과 차가움, 정치와 정서, 부드러움과 강함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서서 미끄러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유피아이(UPI) 코리아 제공

뭐, 이 방식 역시 20년 전 <콘택트>에 비해 간편하고 직관적이라서 좋긴 하다만, 어쨌든 이 문자란 것이 워낙에 외계어인지라 해독의 가능성이 요원하다. 하여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등등 뭔가 있어 보이는 각종 언어에 능통한 언어학자인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에이미 애덤스)가 이 해독에 투입된다. 그녀는 이 외계문자를 ‘또라이성 짙은’ 일부 매파 국가들(중국, 러시아, 이란, 수단 등등)이 우주전쟁을 벌이기 전에 해독해내야 할, 즉 인류 전체의 운명이 좌우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컨택트>의 이야기로서의(!) 설득력이 판가름 날 가장 결정적인 분수령이라 할 것이다. 일단, 아무리 각종 언어에 능통하다 해도 인간의 언어란 어디까지나 인간문명의 산물인 마당에, 그에 대한 전문지식이 외계어 해독에까지 적용될 것이라는 전제부터 상당히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만, 뭐, 그래도 지구 최고의 야구선수나 광산 채굴기사 등등보다는 좀 근접한 직업이겠으므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 외계문자의 구조와 해독 과정에서 보여주는 <컨택트>의 상상력은 그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1997 <콘택트>와의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콘택트>의 주인공인 천체물리학자 엘리(조디 포스터)는 1만 페이지가 넘는 외계신호를 해독할 마지막 열쇠를 찾지 못해 벽에 부딪친다. 그때 그녀의 숨은 후원자로부터 외계문명의 ‘지구문명보다 진보된=효율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게 되는바, 그것은 다름 아닌 ‘3차원’(즉 입체)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등장한 2017 <컨택트>는 ‘3차원’에서 한 차원 더 나가는 것, 즉 ‘4차원’(즉 시간)을 도입하는 것을 통해 차별성을 긋는다.

스포일러 우려로 더 이상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련다만, 이 외계문자의 ‘4차원’적 특성이 어떻게 ‘4차원’이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독되었는지 등의 과정은 거의 어물쩍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설명되지 않고 있다. 결국 영화 말미에 이르러 주인공은 외계문자를 모니터 스크린(2차원!)에 적어서 외계인과 대화를 주고받기에 이르는데, 이 대목에서 유리격벽에 적힌 외계인들의 ‘4차원’ 문자들은 그냥 인간의 언어인 영어로 통역되어 자막으로 박히고 있다. 그것도 더듬더듬 어눌어눌 초보영어풍의 영어로. 뭔가, 이건. 그렇다면 ‘4차원’이라던 외계어는 결국 인간어하고 다를 바가 없지 않았는가!

물론 주인공 루이즈는 (*주의: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포함*) 이 외계어를 통해 ‘4차원’(즉 시간)적 사고방식도 함께 전수받는다. 주인공의 이런 ‘4차원적 변화’는 영화 대사로도 등장하듯 “언어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규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기반한 것인데, 이 가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사고방식이 외계어처럼 변하려면 외계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구사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주인공 ‘루이즈’는 컴퓨터에 분류/저장된 몇몇 단어를 조립해서 모니터에 띄우는 방식으로 겨우 외계인과 대화하는 수준에서 이미 이 ‘4차원적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이 외계어 해독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루이즈’가 이 해독 과정 덕분에 ‘마음을 연 소통을 통한 인류화합’이라는 그랜드해 마지않은 이 영화의 주제를 구현해내는 인물로 거듭남은 물론, 그녀 개인 앞에 펼쳐질 운명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해야만 하는 존재론적 질문 앞에까지 놓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외계어는 이 영화가 쫓고 있는 세 마리 토끼인 ①지적 미스터리와 ②정치적 메시지와 ③정서적 울림을 모두 잡기 위한 사냥도구로 채택되고 있는데, ①에서의 허술함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고(사실 그 외에도 허점은 이 자리에 모두 적기엔 너무 많을 만큼 즐비하다), ②는 주인공을 ‘여성 언어학자’로 설정했을 때부터 이미 충분히 예견되어 있었고 영화는 그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관계로, ③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건질 만한 가장 큰 요소가 된다.

일단, 이 ③을 위해 굳이 외계인씩이나 등장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는(즉 ‘시간여행’ 정도의 기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것과, 그 존재론적 질문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럽고도 때늦었다(이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반전쇼크’를 노렸기 때문이다)는 점을 논외로 한다면, 바로 이 부분이 드니 빌뇌브의 연출력과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가 가장 큰 힘을 발하는 부분이다.

알고 보면 트릭이었다

주로 함께 언급되곤 하는 크리스토퍼 놀런 이상으로 테런스 맬릭 감독의 문법을 도입/구사하고 있는 드니 빌뇌브의 연출(특히나 간헐적으로 삽입되는 ‘루이즈’의 ‘기억’ 장면들은 맬릭의 지문으로 가득 덮여 있다)은, 에스에프 장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리얼리티와 시각적 절제를 실현해냄으로써 이 허점투성이 이야기를 상당히 깊이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억은 시간의 순서에 너무 얽매여 있어”라는 도입부의 내레이션에서 천명된 것처럼 영화의 결정적 승부수인 편집 순서가 결국 값싼 트릭에 지나지 않았음은 가려지지 않는다. 아주 짧고 간단한 가족관계 증명적 대사 한마디면 깨지는 트릭 말이다.

결국 남는 것은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뿐이다. 따뜻함과 차가움, 정치와 정서, 부드러움과 강함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서서 미끄러지지 않는 그녀의 연기와 존재감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저지르고 수습 못하는 뻥축구적 트릭과 공허한 위아더월드적 외침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기화하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번 감별에 갈음한다.

아, 물론 트럼프와 그 친구들만큼은 이 영화를 꼭 좀 봐야겠다.

▶ 한동원 <적정관람료> 편집장.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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