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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13 20:10 수정 : 2017.01.13 20:47

<모아나>는 CG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아이템인 물(바다)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그것을 파도부터 심해까지 영화 내내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기술적 기개마저 보여주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모아나>

<모아나>는 CG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아이템인 물(바다)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그것을 파도부터 심해까지 영화 내내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기술적 기개마저 보여주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애니메이션에선 관람 연령이라는 요소가 결정적이다. 이는 종종 ‘아이들과 같이 보기 좋나요?’ ‘저희 애가 보기엔 어떨까요?’ 등의 질문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동심으로부터 대략 2만광년 정도 멀어진 필자가 그나마 남아 있는 동심 아무리 박박 긁어모은다 해도 그것이 요즘 동심과 일맥상통할 가능성부터가 대단히 희박하므로, 언제나처럼 디즈니의 새 뮤지컬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대한 세파에 절은 아저씨적 감별.

<모아나>는 ①뮤지컬(!) ②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그리고 ③청소년급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겨울왕국>을 연상시키고 있다. 더구나 <모아나>는 ④미국 외 특정 지역의 문화/풍속/풍광/전설/비주얼/분위기 등등을 채집해 와 디즈니화(또는 미국화)시키는 전통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겨울왕국>과 닮아 있다. 다만 <모아나>의 경우엔 눈가루 한 알 구경할 수 없는 폴리네시아 문화권을 배경으로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겨울왕국>과는 정반대인, 오히려 이러한 ‘완전 역발상’이야말로 이 영화가 <겨울왕국>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순수하게 시청각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모아나>는 ‘<겨울왕국>의 폴리네시안 버전’이라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다. 리버브(반향음) 효과 듬뿍 함유한 ‘폴리네시아풍’ 합창곡 오프닝으로 가차 없는 뮤지컬임을 선언하는 <모아나>는, 거의 주입식으로 교육되는 주제곡으로 ‘렛 잇 고’의 신화를 재현해낼 ①위력적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에 대한 의지를 볼륨 드높게 천명하고 있다. 물론 성층권을 돌파할 기세로 고음역 자유자재 노니는 고주파 보컬의 가창 기술력 자랑도 어김없고.

겨울왕국보다 원령공주

또한 ②<겨울왕국>과 <주토피아> 등에서 익히 봐왔던 업계 최고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하와이-뉴질랜드스러운 풍광들, 화려하고도 정교한 움직임 및 카메라워크, 그리고 현지 취재 근면성실히 해낸 티가 역력한 폴리네시아풍 미술 및 의상 등의 볼거리 또한 넘친다. 특히나 <모아나>는 시지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아이템인 물(=바다)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그것을 파도부터 심해까지 영화 내내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기술적 기개마저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다 ③‘디즈니’ 하면 스프링 튀어 오르듯 연상되는 연기패턴/대사/감수성을 온몸으로 구현하고 있는 캐릭터들이, 이제는 함부로 갖다 쓰면 디즈니에 로열티라도 물어야 할 것 같은 ④‘진정한 나를 찾아서’ 테마에 입각한 각종 우여곡절 어드벤처를 펼치고 있음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겠다. <겨울왕국>의 ‘올라프’처럼 캐릭터상품 매출 제고에 십분 기여할 개그 전담 감초 캐릭터의 존재는 물론이고.(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엔 한국의 시류와 대단히 부합하는 ‘닭 오브 더 닭’ 캐릭터다!)

폴리네시아풍 뮤지컬 애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 설정
‘매드맥스’ 등서도 엑기스 추출
현지 의상·풍광 CG로 완벽 구현

디즈니다운 캐릭터들의 의인화
‘바다의 인격화’로 과한 설정 남발
‘겨울왕국’ 같은 참신함은 없어
“물 하나만큼은 원없이 보여줘”

그런데 그게 전부인가? <겨울왕국>의 폴리네시아 버전?

물론 애니메이션의 본가이자 명가인 디즈니에서 그러한 초등학적 결정을 했을 리는 없어, <모아나>는 <겨울왕국>과의 차별화를 위해 ⑤다른 영화들로부터 추출해낸 각종 엑기스들을 플러그인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소스는 역시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 특히 <원령공주>다. 쇠락 또는 절멸의 위기에 처한 변방의 부족, 그 부족을 이끌 후계자로 지목되던 주인공이 떠난 탐험, 그 탐험에서 만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이성, 그(또는 그녀)와의 갈등과 화해, 그 끝에 만나는 ‘신’, 그리고 그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나름 생명철학적 생태우주적 정의에 이르기까지, <모아나>는 사실상 <겨울왕국>의 폴리네시아 버전보다는 <원령공주>의 디즈니 버전에 더 가까운 구조 및 흐름을 취하고 있다. 특히 영화가 막판, 비장의 반전처럼 내놓는 용암신 ‘테 카’와 창조의 신 ‘테 피티’는 <원령공주>의 사슴신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듯한 설정인데, 사실 이는 용암섬에서 용암과 창조의 관계를 1초가량만 생각하면 처음부터 충분히 유추 가능한 것인바, 이 대목에서 이 칼럼 향해 스포일러 일삼는다 돌을 던지시려 한다면 스스로의 지성에 대한 지나친 겸손이 아닐까 사료되고, 아무튼.

<모아나>가 ‘엑기스 추출’한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들은 이뿐이 아니어서, 바다가 주인공이자 테마인 <벼랑 위의 포뇨>는 물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특히나 용암신 ‘테 카’와 <나우시카> 원작만화의 ‘거신병’), <미래소년 코난>(조각배 한 척에 몸을 실은 채 홀로 먼바다로 항해를 나서는 주인공부터 결말에서의 주인공의 역할 등등까지) 또한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이러한 ‘아웃소싱’은 미야자키 유니버스에만 머물지 않아, 영화 전반부에서 파도 넘어 먼바다로 나가려는 주인공 ‘모아나’의 모습은 <캐스트 어웨이>,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해적단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망망대해를 떠도는 조각배에서의 일상, 그리고 특히 형형한 달빛 아래 형광색으로 빛나며 정령의 분위기를 띠는 밤의 바다 등의 묘사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그것 그대로이다.

<겨울왕국>의 ‘올라프’처럼 <모아나>에도 개그 전담 감초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 캐릭터는 놀랍게도 한국의 시류와 대단히 부합하는 ‘닭 오브 더 닭’ 캐릭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하지만! 그렇다 해서 <모아나>가 이런 유관 영화들을 주섬주섬 짜깁기한 모둠꼬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모아나>가 ‘아웃소싱’해온 요소들은 위에서 언급한 디즈니스러움에 의해 거의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수분해 되어 있는데, 이 영화를 공동연출한 두 감독(론 클레먼츠, 존 머스커)이 디즈니 애니의 중흥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인 <인어공주>와 <알라딘>을 만든 당사자라는 점을 고려하신다면 그 결과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시리라 믿는다(나는 그런 영화들 다 안 본 21세기 소년소녀라고? 그러니까 아저씨 리뷰라고 했잖아).

<모아나>의 이러한 디즈니스러움 중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⑥의인화라는 대목이겠다. 작지만 유일한 영화의 악의 축인 홍게형 심해괴물 ‘타마토아’부터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창조의 신 ‘테 피티’까지, 디즈니의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들처럼 <모아나>의 인간 아닌 핵심 캐릭터들 대부분은 인간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그중 딱 한 가지, 그리 일반적이지 않으면서 영화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바, 그것은 다름 아닌 바다 그 자체(!)에 대한 의인화다.

갑자기 고향섬을 덮친 죽음의 저주를 풀기 위해 ‘모아나’는 바다 저 멀리 있는 창조의 신에게 심장을 돌려주려는 미션에 나선다. 하여 그 미션은 미지의 망망대해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고독/좌절들을 극복해 나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 바다는 영화 도입부부터 ‘모아나’를 섬을 구할 구원자로 지명하고, 그녀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등 수호천사의 역할을 대단히 적극적/구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이 ‘인격화된 바다’는 배에 있던 캐릭터들이 바다에 빠질 때마다 그들을 고이 모셔 원위치 시키는 과잉개입 및 과잉보호까지 하는바, 이 바다를 맞닥뜨린 우리 관객들은 어디에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긴장 및 재미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모아나>의 ‘인격화 바다’ 역시 영화 후반 ‘모아나’를 어디론가 고속으로 모셔다드리는 익스프레스 서비스까지 제공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저럴 것이지!’라는 허탈성 신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맞다. 이는 우리가 <호빗>의 ‘독수리 익스프레스’를 통해 이미 겪은 바 있던 바로 그 허탈감이다).

그뿐인가. 주인공 ‘모아나’가 가장 큰 위기에 빠졌을 때, 그녀의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강력한 지지자인 그녀의 할머니 역시 어디선가 갑자기 유체이탈로 출현하여 그녀에게 조언의 말씀 날려줌으로써, ‘모아나’에게 위기탈출을 위한 원기를 급속충전 시켜주고 있다. 이건 워낙에 고대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신화적인 이야기니까 고대설화스러운 전개는 당연하다, 라든가, 그런 것을 두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신의 기계적 출현)라고 하는 것이다, 같은 얘기는 제발이지 참아줬으면 한다. 내친김에 덧붙이면, 별 이유도 없고 재미도 없는 군더더기에 ‘맥거핀’(속임수, 미끼라는 뜻) 같은 용어를 오남발 하는 언사 또한.

아무튼.

모아나에서 찾을 수 있는 건?

필자는 <겨울왕국>이 흔히 평가받는 것만큼 훌륭하진 않다고 믿는 소수 의견자 중 한 명이다만, 그래도 <겨울왕국>에는 눈사람 ‘올라프’의 열대지방 열망 개그나, 천부적 재능이 저주이기도 한 현실과 그에 대한 극복 등의 참신한 면이라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아나>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뭐가 있을까. 등장인물들 중 백인들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폴리네시아 사람들이다? 하여 이 엄혹한 트럼프의 시대 한가운데에 던져진 한 줌 해독제다? 글쎄.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분명 머리부터 발끝까지 폴리네시아였다만, <모아나>의 지극히 진부한 프레임 위에는 얼마든지 다른 배경, 다른 문화, 다른 풍속이 장착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말 그대로 표피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뭐가 남았을까. 뮤지컬적 기능성? 아서. 우리 어른 관객들은 얼마 전 이미 <라라랜드>를 접했다.

아참, 그게 있다. 시지로 만든 물. 그것 하나만큼은 원 없이 보여줬다. 그나마 이 정도가 <모아나>만의 특장점이겠다는 최종 소견으로 금번 감별에 갈음한다.

▶ 한동원 <적정관람료> 편집장.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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