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30 19:50
수정 : 2016.12.3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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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주인공 ‘진 어소’의 어린 시절로부터 스타트를 끊는 일대기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저게 누구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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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로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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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주인공 ‘진 어소’의 어린 시절로부터 스타트를 끊는 일대기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저게 누구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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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영화팬은 스타워즈 팬과 아닌 팬으로 나뉜다, 라고 하면 좀 너무 나갔나. 아무튼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이라, 스타워즈 시리즈의 곁가지(이른바 ‘스핀오프’) 무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 대한 본격 감별에 앞서, 독자 여러분 스스로에 대한 비공인 야매형 간이감별 테스트를 즉석 제공해 드리니, 운동 삼아 산책 삼아 한번 해보시길.
[각 문항 ‘매우 그렇다’ 3점, ‘그렇다’ 2점, ‘아니다’ 1점, ‘이게 다 뭔 소리냐’를 0점으로 해서] ①스타워즈 전 시리즈 중 3회 이상 반복 관람한 에피소드가 한 편이라도 있다. ②스타워즈 관련 레고를 (동거 아동의 강권/강요/위협 등에 의해서가 아닌) 본인의 의지에 의해 구매한 경험이 있다. ③“포스가 함께하시길”, “아이 앰 유어 파더”, “사랑해요. 알아요” 등의 관련 대사를 실생활에서 써먹어본 경험이 있다. ④추바카, R2D2, 자바 더 헛 등의 캐릭터가 사용하는 외계어를 자막 없이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⑤에피소드 1부터 7까지의 부제(예: 에피소드 4는 ‘새로운 희망’)를 암송할 수 있다.
합산점수 12점 이상은 대단히 팬, 9점 이상은 꽤 팬, 5점 이상은 비판적 팬, 3점 이하는 그닥 팬 아님으로 대략 분류할 수 있을 것인바,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개봉된 ‘새로운’(즉 조지 루커스가 완전히 손을 뗀) 스타워즈의 출발점
는 단연 9점 이상 팬들에게 초점을 맞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팬 무비’였더랬다. 그중에서도 ‘진성’ 스타워즈로 추앙받는 70, 80년대산 에피소드 4, 5, 6의 팬들 말이다.
‘우리 편’의 다크 사이드를 묘사
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날로 작용하여, <깨어난 포스>는 에피소드 1, 2, 3에 적잖이 실망했던 기존 팬층의 압도적인 환호를 끌어냈음과 동시에, 아예 팬층에 속하지 않는 관객들에게 ‘저게 다 뭔 소리’라는 위화감 및 ‘나 빼고 다들 신났네’라는 소외감을 안기는 문제 또한 안고 있었다. 뭐, 스타워즈의 정신적 영향력이 거의 건국신화급인 원산지 미국에서야 그래도 큰 지장은 없겠다만, 흠, 한국에서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로그 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이러한 약점에 대한 대응이다. <로그 원>은 기본적으로 이야기 구성에 있어 ‘그닥 팬 아님’ 그룹의 관객층도 별다른 소외감, 위화감, 그리고 별도의 예습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①영업적 상냥함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영화는 여주인공 ‘진 어소’(펄리시티 존스)의 어린 시절로부터 스타트를 끊는 일대기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저게 누구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즉, 영화의 도입부인 ‘진’의 어린 시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두명, 즉 ‘진’의 아버지인 은둔고수 과학자 ‘겔런’(마스 미켈센)과 그의 과거 동료인 ‘크레닉’(벤 멘덜슨)인데, 제국군의 궁극의 대량학살무기 ‘데스 스타’의 개발 책임자인 ‘크레닉’은 초야에 은둔하고 있던 ‘겔런’을 찾아와 합류를 강요하고, 덕분에 둘 사이에는 모종의 사달이 나는 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진’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는, 전형적인 무협지적 기본 설정이 <로그 원>의 핵심골격을 이룬다.여주인공 일대기적 구성으로
‘선행학습’ 필요없이 관람가능
복합적 선악구도…‘성인용’ 면모
20세기형 팬들에게도 호소
공중전·우주전뿐만 아니라
지상전 현장감도 강조한 비주얼
전 시리즈와는 다른 캐릭터까지
새로운 스타워즈의 ‘포스’ 갖춰
뭐, 이후에 기타 등등의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한다만 <로그 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별도의 선행학습이나 고액과외는 필요치 않다. 예컨대 <깨어난 포스>에서 정체불명의 화물선에 포획된 ‘밀레니엄 팰컨’에 한 솔로와 추바카가 갑자기 들이닥치며 “추이, 우리 집에 온 거야”라는 결정적 대사를 날리는 장면을 보자. 이 결정타를 두고 에피소드 4, 5, 6의 팬들이야 환호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나,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옛 스타워즈를 관람치 않은 젊은 관객들, 말하자면 ‘오비완’을 앨릭 기니스가 아닌 이완 맥그리거로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그 장면은 ‘저게 뭐임’ 정도로 느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아니었다면 다행.) ‘레아 공주’ 역의 캐리 피셔,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마크 해밀이 등장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고.
<로그 원>에는 그런 ‘아는 사람에게만 결정타’스러운 장면이 거의 없다. 스타워즈의 우주 안에는 머물되, ‘이 정도는 다 알지?’라고 퉁치지 않고 거의 모든 주요 인물과 배경을 영화 안에서 제시하고 설명한다. 이러한 선택에는 물론 일장일단이 있겠으나, 20세기에 발을 걸치지 않은 21세기의 관객들을 위해서는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사료된다.
그렇다면 <로그 원>이 20세기에 허리춤까지 푹 몸을 담그고 있는 필자 같은 관객들은 버리고 가는가, 하면 그는 또 아닌지라, 주최 측은 이러한 관객들을 위해 ②성인용스러운 터치라는 대안을 준비해두고 있다. 아니, 아니, 그런 카인드 오브 성인용 말고.
<로그 원>의 성인용스러운 측면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 인물은, 위 세명의 인물에 더해 또 한명의 핵심인물이자 주인공 ‘진’의 상대역 남주인공인 ‘카시안’(디에고 루나)이다. 이 인물은 데스 스타 개발 핵심인물이자 ‘진’의 아버지인 ‘겔런’을 찾아내 제거하는 특수임무를 띤 반란군 측 정보요원인데, 첫 등장부터 임무를 위해 자라나는 새싹들이 차마 배워서는 아니 될 행동을 서슴지 않고 수행하는, 나름 냉혈한이다. 그런데 잠깐. 이 인물은 반란군, 즉 스타워즈 세계의 절대 착한 편 소속의 인물이 아닌가. 그런 인물이 등장부터 뭔가 나쁜 짓을? 그렇다. 바로 이러한 ‘착한 편’ 측의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야말로 이제까지의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없던 <로그 원>만의 새로운 ‘성인용’스런 면모인바, 이는 ‘카시안’의 “난 반란의 이름으로 갖은 몹쓸 짓을 다 해왔다”라는 대사로 요약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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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최 측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핸드헬드 카메라를 처음으로 적극 사용하여 지상전의 현장감을 강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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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진’ 역시 ①아버지를 납치해 간 제국군, ②제국군의 무기개발자로 충실히 부역하는 아버지, ③그런 아버지를 치기 위해 딸인 자신을 미끼 및 인질로 쓰려는 반란군 모두에 대한 복합 3단 증오/분노를 품은, 이제까지의 스타워즈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른 고독한 승냥이 풍의 주인공인 것이다. 더구나 그녀의 상대역인 ‘카시안’은 ③에 속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 중 가장 최전선에 투입되어 ‘진’의 아버지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하달받은 스파이인 것이다.
하여 (1977년의 첫번째 스타워즈)의 도입부 자막 한 줄에서 태동한 <로그 원>은, 부터 까지에 이르는 네 편의 스타워즈가 기초하고 있는 ‘사악한 제국군과 정의의 반란군’이라는 칼 같은 흑백구도 대신, 좀 더 흐릿하고 복합적인 선악구도를 깔고 들어감으로써 나름 ‘성인물’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목이나 갈등이 묘사되지 않았던 반란군 측 내부에 다양한 분파들(‘이상주의적 과격파’부터 ‘현실주의적 타협파’까지)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약소하나마 묘사함으로써, 반란군 측 역시 이슬만 먹는 고고한 꽃사슴 집단만은 아니었음을 드러내준다.
물론 이곳은 어디까지나 스타워즈의 세계이니만큼 그 현실감과 입체감의 수위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이나 갈등이 너무 쉽고 간편하게 해소된다는 느낌 또한 없지 않다만, 제국군 대 반란군의 구도가 확립된 이후의 스타워즈에는 없던 ‘우리 편’의 다크 사이드를 묘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로그 원>은 ‘다 큰 어른’인 20세기 스타워즈 팬들에게 호소하는 바 많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현실적 터치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로그 원>의 ③비주얼일 것이다. 대기원근법을 적절하게 사용한 스타 디스트로이어 분사노즐이나 데스 스타 슈퍼레이저의 클로즈업 등의 스펙터클이나, 화려무쌍하면서도 전쟁의 험악한 면모 또한 놓치지 않고 가미해주고 있는 공중전/우주전도 그렇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이 영화의 주최 측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핸드헬드 카메라를 처음으로 적극 사용하여 현장감을 강조한 지상전 장면들일 것이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진’이 ‘카시안’을 만나 처음으로 벌이는 지상전은, 중동(아마도 이라크)의 어느 도시 번화가 골목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더구나 그 시가전에서의 제국군 병사 ‘스톰트루퍼’는 언뜻 <허트 로커>나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에서 보던 미군처럼, 그리고 주인공 측은 그들을 습격하는 현지 저항세력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 와중에 ‘포스’ 관련 주문을 읊조리며 장대 하나로 십여명의 스톰트루퍼를 제압하는 방탄승도 어김없이 등장하긴 한다만서도.
실질적인 첫번째 ‘21세기형 스타워즈’
더구나 스포일러가 될까 차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다만, <로그 원>의 주인공들은 영화 막판, 이제까지의 스타워즈 주인공들이 보여주지 않던(못하던) 화끈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로그 원>을 실질적인 첫번째 ‘21세기형 스타워즈’로 완성하고 있다.
물론 <로그 원>이 어떤 해외 비평가의 말처럼 ‘21세기의 <제국의 역습>’으로 자리매김될 걸작까지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로그 원>이 시도하고 또 실현해낸 ‘새로운’ 스타워즈로서의 면모들은 충분한 설득포스를 가진다. 적어도 ‘워낙 다스 베이더 광팬이라서’ 외에는 별다른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던 ‘카일로 렌’(작년 개봉된 <깨어난 포스>의 나쁜 놈 측 행동대장)의 공허한 마스크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설득포스를 말이다.
모쪼록 내년 영화판에도 새로운 시도의 포스가 함께하길.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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