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미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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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이 연기한 조선족 보모 한매는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콧물을 입으로 핥아줄 정도로 남의 아이를 제 딸처럼 아껴주다 아이를 납치·유괴한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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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걸음마를 떼지도 못한 딸을 조선족 ‘이모(즉 보모)’에게 완전히 맡겨두다시피 한 채 매일매일 일에 쫓기는, 더구나 이혼 직전의 워킹맘.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딸과 보모가 함께 사라진 뒤 연락이 끊긴다. 엄마는 철석같이 믿고 있던 보모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가짜였음을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딸의 양육권을 가져가려던 남편 측, 그리고 세상의 의심과 공세가 시작된다, 라는 이 영화의 기초 설정.
여기에다 주연인 엄지원, 공효진 두 배우의 무거운 표정이 포스터의 양쪽에 포진되어 있는 기본 구도에, 제목 하단에 첨부된 ‘사라진 여자’라는 부제, 그리고 ‘감성 미스터리’라는 주최측 장르명까지 종합되고 나면 <미씽>의 이후 전개는 일견 얼마든지 예측가능해 보인다. 하루아침에 상상조차 싫은 지옥을 맞닥뜨린 모성의 피눈물 나는 추격전, 그 과정에서 아이 잃은 싱글 워킹맘이 겪어야 하는 갖은 사회적 편견과 불공평한 질타들, 뭐, 이런 식의 전개 말이다.
‘싱글 워킹맘’이라는 약자
사실 이런 예측이 그다지 크게 빗나간 것만도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 ‘지선’(엄지원)은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사라진 보모 ‘한매’(공효진)가 남긴 희미한 실마리들을 필사적으로 더듬으며 그녀를 추적한다.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동정하거나 돕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곧장 발톱을 돋워 올린다. 그녀가 일하는 홍보대행사의 사장은 “이래서 내가 애엄마들하고 일하기가 싫어요. 돈 주고 지 새끼들 사정까지 봐줘야 돼”라는 일갈과 함께 전화를 끊고, 사건의 수사를 맡은 경찰은 ‘남의 손’에 ‘하루 종일’ 아이를 맡겨둔 채 일을 한 그녀를 향해 비난과 질타 담긴 실눈을 뜨고, 의사 아들을 둔 시어머니는 새끼 잃은 어미 옆에서 젊은 경찰을 붙들고 들으라는 듯 “결혼했어요? 집안에 여자를 잘못 들이면…” 같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그렇게 영화는 ‘여성’이라는 드넓은 범주 대신 ‘싱글 워킹맘’이라는 (비교적)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존재를 통해 이 사회가 불리한 입장에 처한 약자를 다루는 방식의 가혹한 단편들을 보여준다. 덕분에 지선은 실물감이 뚜렷한 우리 현실 속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던바, 이것이 높은 완성도로 이미 영화화 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시나리오, 그리고 엄지원의 뛰어난 연기와 이언희 감독의 선 굵으면서도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 연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지선이 한매와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의 연출을 보자. 이러한 결정적 대목에서 보통은 충격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텅 빈 방→두리번거리는 엄마→집 밖으로 뛰쳐나가 아이 이름을 외치며 울부짖는 엄마→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수군거리며 쳐다본다’는 식의 도식적인 연출에 대한 유혹을 느낄 법도 하지만, <미씽>은 지선이 보모와 딸이 집 안에 없는 것을 알고 놀이터를 향해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지극히 일상적이고도 현실적인 행동으로 이 실종 장면을 시작한다. 이런 식의 일상적 관찰력 덕분에, 한참이 지난 뒤에야 대답 없는 보모 이름이 뜬 핸드폰 연결화면을 망연히 바라보며 둘의 실종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지선의 충격과 절망, 그리고 암담함은 손실 없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딸과 함께 사라진 조선족 보모
이를 추적하는 싱글 워킹맘
모성 짓밟은 또다른 모성이
‘원죄'로 되돌아오는 스토리
재미와 ‘울림’ 갖춘 시나리오에
공효진·엄지원 등 연기력 더해
우리 사회의 추악함 드러내며
복수극 이상의 자기성찰 제공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떠올리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인 조선족 보모 한매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선의 추적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한매의 정체 역시 일견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콧물을 입으로 핥아줄 정도로 남의 아이를 제 딸처럼 아껴주던 구원의 천사(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이 진부한 표현만큼 이런 존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가 없다는 데 동의하시리라)가 알고 보니 계획적으로 집안에 침투하여 아이를 납치·유괴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던 악마였다’는 정도는, 이 영화의 카피 몇 줄만 읽어도 충분히 파악가능한 이야기다. 아이의 몸값을 노렸든, 아이 그 자체를 노렸든, 어쨌든 한매가 싱글 워킹맘 지선 앞에 놓여 있던 사악한 파리끈끈이였다는 정도의 설정이라면 영화는 <추격자> 이래로 식상해질 대로 식상해진 추적 스릴러의 관습의 중력권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미씽>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지선이 한매의 과거와 정체를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은 당연히도 사라진 딸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한 모성의 필사적인 추격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선이 스스로도 미처 알지도 못했던 자신의 과거와 정체를 스스로의 손으로 한 겹씩 벗겨내는 고통스런 개복수술의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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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성이라는 드넓은 범주 대신 ‘싱글 워킹맘’이라는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존재를 통해 이 사회가 불리한 입장에 처한 약자를 다루는 방식의 가혹한 단편들을 보여준다. 지선 역을 맡은 엄지원.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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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진부해 보였던 초반과는 달리, 점입가경을 이루며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꼬리에 꼬리를 묾으로써, 자칫 간단한 몇 가지 사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스포일러일 수 있어 차마 구체적 언급을 해 드릴 수 없는 그 ‘개복수술’ 과정의 끝에서 지선이 맞닥뜨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원죄다. 그 ‘원죄’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심지어 그것이 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조차 알지 못한 채 행하는 약간의 급행, 약간의 편의, 즉 약간의 특권이다. 지선은 그것을 모성의 이름으로 너무나도 당연하게 행했고, 또 다른 모성을 짓밟았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 원죄를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지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다(그 사람은 이른바 전문가이자 엘리트로 일컬어지는 남성이다). 그런데 지선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까. 그 원죄의 가능성을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까. 천만에. 그것은 아메바의 상식과 미토콘트리아의 상상력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순한 습관이었든, 험하고 불편한 것은 굳이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심약함이었든, 그녀의 눈을 가로막은 것은 ‘내 새끼만 귀한’ 이기적 모성이었다. 또는 모성은 얼마든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자기위안이었다.
그렇게 또 다른 모성을 짓밟은 모성은 모성의 역습을 당하게 되며, 지선이 처음 느꼈던 배신감과 분노는 결국 자기반성과 속죄로 귀결된다. 그런 그녀의 속죄가 다른 모성에 대한 손 내밀기로 이어짐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선’의 사소해 보이는 원죄만이 한매가 행한 모든 일들의 발단이자 원인이었다면, 이 영화는 일종의 치졸한 복수극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미씽>을 그 이상의 성찰로 이끄는 것은 지선이 한매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세계와 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추악함이다.
폭력적 남아 선호, 혼인을 빙자한 인신매매, 그리고 생명보다 돈을 앞세우는 탐욕 등의 눈에 익은 단어들이 빚어낸 그 추악함이, 청소 안 된 화장실 앞을 지나듯 숨을 멈추고 눈을 감는 우리의 무관심과 암묵적인 용인 아래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하기에, 딸을 되찾기 위해 그 추악함을 정면으로 마주보아야 하는 지선의 눈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피부 밑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그리고 우리는 지선과 한매, 이 두 모성이 휩쓸리게 된 실종사건의 범인이 ‘그들’이나 ‘저들’이 아닌 우리들 한 명 한 명일 수도 있음을 깨달을 기회를 얻는다. 2015년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스포트라이트>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온 마을의 책임이라면, 한 아이를 추행하는 것도 온 마을의 책임”인 것이다.
자기성찰은 희망의 출발점
이 자기성찰의 기회야말로 <미씽>이 그 녹록잖은 이야기에 기꺼이 시간을 내준 관객들에게 돌려주는 가장 귀중한 답례다. 그리고 이는 다시 말하지만, 재미와 무게와 울림을 동시에 거머쥔 탁월한 시나리오, 공효진, 엄지원을 위시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그리고 성급한 자기연민이나 섣부른 주의주장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뜨겁게 영화를 끌어가는 감독의 심지 굳은 연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마지막 5분가량에 대해서만큼은 역효과뿐인 과잉 연출이라는 느낌을 못내 지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워낙에 세상인지라, 유난히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인 영화들이 많았던 올해였다. 하지만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재난도 추잡하고 기상천외한 정치판 뒷얘기도 없는 이 영화 <미씽>만큼 우리 사회의 이면을 예리하고 깊숙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파고든 영화는 없었다. <미씽>에는 자신의 개복한 배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자기성찰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모든 희망의 출발점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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