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1.06 09:48 수정 : 2016.11.06 09:57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로스트 인 더스트>

형제가 터는 은행은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이자 집안의 마지막 재산인 농장을 저당 잡고 있다. 요컨대 형제는 미래를 은행에 강탈당하기 직전이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외화 제목 번역은 크게 2000년대 이전의 주류였던 창작형 제목(대표작으로는 ‘Ghost’가 원제인 <사랑과 영혼>)과, 2000년대 이후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된 이두향찰형 제목(<유주얼 서스펙트>, <데블스 에드버킷> 등이 그 선구자들)으로 분류될 것인데, 여기에 최근에는 주최 측에서 임의조제한 영문 제목으로 원제목을 대체한 원제형 창작 제목도 새로 가세하고 있다. ‘Hell or High Water’가 원제인 <로스트 인 더스트>도 그런 부류 중 하나이겠는데, 나름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할 수도 있을 이 번역엔 사실 문제가 좀 있다. 왜냐면 이 영화에선 누구도 ‘로스트’, 즉 길을 잃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이를 명확하게 하고 들어간다. 유령 마을처럼 휑뎅그렁한 서부 텍사스 소도시의 작은 은행지점을 터는 2인조 강도. 출근하자마자 졸지에 바닥에 엎드리게 된 은행직원은 그중 한명에게 용감무쌍하게도 ‘멍청하다’는 표현을 쓴다(재밌는 대사지만 상세 내용은 생략). 그런데 그때까지 제법 냉정함을 유지하던 강도 중 한명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분기탱천하여 자신이 멍청하지 않음을 강조 또 강조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강도들은 추적당할 위험이 있는 묶음돈은 모두 놔두고 부스러기 현금만 챙긴다. 출근하는 경비원을 간결하게 제압하고, 출동한 경찰차에도 당황하지 않은 채 여유 있게 마을을 빠져나간다. 강도 현장에 타고 갔던 차를 아예 땅속에 묻어버림으로써 추적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리고 훔친 돈은 카지노에서 한 번 더 세탁한다 등등 이 2인조는 <파고>류의 덜떨어진 양아치들이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류의 아마추어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일의 방법이나 목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들, 즉 ‘로스트’하지 않은 자들이다.

알고 보니 형제인 이 2인조 중 형인 ‘태너’(벤 포스터)는 갓 출소한 경력다수 전과자답게 계획에 없던 돌출행동으로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를 기겁하게 한다만, 영화가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그런 그 역시도 나름의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의 목표는 강도행각의 입안자이자, 내내 침착하고 이성적인 행동 및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동생 ‘토비’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은행이라는 빚의 도돌이표

그들을 쫓는 두명의 텍사스 레인저도 마찬가지다. 서로 지속적인 갈굼과 놀림을 날림으로써 다분히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모건 프리먼을 연상시키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와 ‘알베르토’(길 버밍엄)는, 은퇴 직전의 노련한 고참 ‘마커스’의 경험과 판단력 덕분에 처음부터 범인들의 윤곽과 동선을 정확하게 잡고 들어간다. 이후에도 ‘마커스’의 무뚝뚝하고 심드렁해 보이는 표정 아래 숨은 조준경은 단 한 차례도 허용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자체 또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못박고 들어간다. 이 영화의 테마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별다른 강조 없이 배경처럼 슬쩍 비춰주고 넘어가는 도로변 대형 입간판을 통해서다. 시간 간격을 두고 등장하는 이 두 입간판 중 첫번째에는 ‘IN DEBT?’(빚이 있으십니까?)라는 문구가, 두번째에는 ‘FAST CASH’(빠른 현금대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물론 이 입간판을 세운 장본인들은 은행이다. 그리고 형제는 입간판이 세워진 서부 텍사스의 황량한 벌판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있다. 그들은 얼마 전 은행을 턴 뒤 또 다른 소도시의 은행지점을 향해 가는 중이다. 그들이 터는 은행은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이자 집안의 마지막 재산인 농장을 저당 잡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얼마 전 그들의 농장에서는 유전이 발견됐다. 형제에게는 은행 빚을 갚을 돈이 없고, 그리하여 유전의 가치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한 대출금 때문에 농장을 빼앗기게 될 참이다. 요컨대, 형제는 미래를 은행에 강탈당하기 직전인 것이다.

하여 형제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두 개의 입간판이 말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은행이라는 강도가 만들어낸 빚의 무한 도돌이표. 그 덫이 만들어낸 가난. 가난이라는 이름의 개미지옥.

유산을 은행에 저당 잡힌 형제
‘정당방위’로 나선 강도행각
이들을 쫓는 텍사스 레인저
‘법은 법, 범죄는 범죄일 뿐’

서로 다른 ‘세계관'의 대결에
맛깔난 조크 첨가된 시나리오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도 매력
‘시스템이 만드는 가난'에 공감

또한 형제가 벌이는 연쇄 은행강도의 메시지 역시 명확해진다. 그것은 은행(즉 시스템)이 형제의 돈을 털어가려 쳐놓은 덫을, 은행을 털어 모은 돈을 써서 빠져나가는 것은 일종의 정당방위로 간주될 수까지 있다는 가능성이다. 구석에 몰린 쥐가 살길을 찾기 위해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 즉 그 무엇이 가로막더라도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드는 이치를 세상의 법이나 도덕률로 섣불리 단죄할 수 없다, 라는 입장이 영화의 한쪽 세계를 지배하는 원칙이다.

은퇴 직전의 노련한 고참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의 무뚝뚝하고 심드렁해 보이는 표정 아래 숨은 조준경은 단 한 차례도 허용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두명의 연쇄 은행강도를 쫓는 두명의 텍사스 레인저는 법은 법이고, 범죄는 범죄이며, 범죄는 법에 의해 단죄되어야 한다는, 진부한 도덕률에 의해 지탱되는 진부한 세계에 속한다. 더구나 고참 레인저 ‘마커스’는 첫번째 강도 현장에서 곧바로 범인들의 윤곽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증언을 거부하는 웨이트리스를 보고 범인 중 한명이 미남임을 유추해내고, 범인들의 범행장소를 거의 슈퍼컴 수준으로 예측해내는 유능함을 보인다. 은퇴를 불과 몇 주 남긴 그는 성실함과 사명감까지 갖췄다.

뭔가. 이래 가지고는 영 재미가 없다. 젊고 섹시하고 거칠고 똑똑한 은행강도들. 더구나 그들은 은행을 위시한 갖가지 시스템이 꽂아놓은 빨대다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이 충분히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범행동기를 가졌다. 거기에 끈끈한 형제애까지 보여주고 있어 관객의 호감을 점유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반면 그 반대쪽에서 이들을 추적해나가는 노련하고 유능한 레인저들은 노구에도 몸 사리지 않는 성실함 외에는 딱히 끌리는 점이 없어 보인다. 이건 어딘지 처음부터 너무 기우는 싸움 같다.

바로 이 대목이 시나리오 작가 테일러 셰리던의 솜씨가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다(배우이기도 한 그는, 다들 아시다시피 작년 최고의 깜짝 화제작이었던 <시카리오>의 시나리오 작가다). 두 레인저들은 텍사스 지방도시들의 따분함과 황량함에 질식하지 않으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조크를 주고받는데, 이 조크의 구수함과 인간미만으로도 두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은 어렵지 않다. 모르긴 해도 이 오랜 노부부 만담콤비 같은 레인저들이, 모텔 방에서 주고받는 인디언-멕시칸 조크(고참 ‘마커스’는 손아래 파트너인 ‘알베르토’의 체로키-멕시칸 혈통을 소재 삼아 끝없이 조크를 날린다)에 웃지 않을 관객은, 그리고 그 말미에 클로즈업되는 ‘알베르토’의 은밀한 미소에 뭉클하지 않을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스템으로 대물림되는 가난

더구나, 이 두 레인저가 들어간 시골 식당의 웨이트리스 할머니의 대사(이 역시 구체적 묘사는 생략)는 거의 올해의 최우수 조크상 감인데, 이렇게 테일러 셰리던의 필력이 끌어올린 캐릭터들의 생생함 덕분에 은행강도 형제와 노땅 레인저들의 정서적 체급은 얼추 비슷해진다.

여기에 제프 브리지스의 세상 단맛 쓴맛 다 봤다는 듯 느른한 목소리와 무표정한 연기가 합세하면서, 자칫 일방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이 영화의 대결의 틀은 상당히 단단하게 조여진다. 덕분에 영화 말미에 동생 강도 ‘토비’와 고참 레인저 ‘마커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주고받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이불 속 면도날 조각처럼 날카롭고 위험하게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셰리던의 생생한 필력과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의 연출력으로 구현해낸 팽팽한 에너지와 리얼리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끌어안고 있었던 한계다.

형제가 벌인 강도행각이라는 소재에서뿐만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이 영화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를 연출한 명장 시드니 루멧 감독은 ‘이 영화는 무엇에 대한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한 문장짜리 답을 내려놓은 뒤에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로스트 인 더스트>에 대해 그 질문을 던진다면 답은 명확하다.

이 영화는 가난에 대한 영화다. 가난 중에서도 시스템에 의해서 대물림되고 심화되는 가난. 그리고 지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세계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는, 강도 같은 시스템에 강도로 맞서는 이 형제의 절박함에 공명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 절박함이 뻔한 플롯이라는 영화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할지라도.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