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인페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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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권위의 기호학자 겸 하버드대 교수인 랭던은 퍼즐 풀기의 핵심 단서를 지나가던 박물관 가이드에게 물어 알아낸다. 유피아이(UPI)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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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예술사학적 관광 미스터리 인류구원 서스펜스를 지향하는 ‘로버트 랭던’ 시리즈의 세 번째인 <인페르노>의 관람에 있어서 사전 기초지식 유무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을 읽었는지, 그를 바탕으로 지옥도를 그린 화가의 이름이 보티첼리인지, 그가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 유명한 그림을 그린 화가인지, 심지어 원작자 댄 브라운의 소설 중 한 권이라도 읽었는지 등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관람에 필요한 기초지식들은 언제나처럼 영화 안에서 전부 브리핑되고 있다.
관광무비적 기능은 충실한데
더구나 <인페르노>에서 등장하는 ①예술사학적 지식 및 고찰은, 박물관 단체가이드 정도의 수위(예컨대 ‘다빈치’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빈치에서 온’이라는 뜻이므로 그를 부를 땐 ‘다빈치’가 아니라 ‘레오나르도’로 불러야 한다, 정도의 수위)를 크게 넘기지 않는다. 그러니 맥락에 상관없이 역사지식들을 열거하는 대사가 등장하더라도 크게 당황치 마시고, 그 뜬금없는 타이밍에 내용을 좀 놓치더라도 개의치 마시기 바란다. ‘그런 게 있나 보다’로 퉁 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러한 기초정보 브리핑은, 물론 이 영화가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부분의 하나인 ②관광무비적 기능성을 충족시키기 위함인데, <인페르노>에서는 아예 거두절미, 주인공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 교수의 직장인 하버드대학도 건너뛴 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그 스타트를 끊는다.
이어 베네치아(베니스)를 거쳐 이스탄불까지에 이르는 2시간여의 여정 동안 영화는 웬만해선 관광무비적인 공간을 이탈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도입부에 등장하는 병원과 여주인공의 방 정도만이 비관광적 공간이다. 하여 관객들은 베키오 다리, 보볼리 정원, 두오모 광장, 피티 궁전, 산조반니 세례당, 바사리 프레스코, 산마르코 광장, 두칼레 궁전, 소피아 성당, 성당의 지하 저수지 등등 이탈리아와 터키의 핵심 관광명소들을, 전원을 질주하는 고속철과 아드리아 해상의 선박과 전용제트기 등의 양념까지 곁들인 상태로 듬뿍 섭취할 수 있다. 심지어 영화는 최근의 기술동향을 십분 반영, 보볼리 정원에선 드론까지 띄우며 다이내믹한 관광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까지 좋다. 굳이 팝콘, 콜라 들고 찾은 극장에서까지 심각한 예술사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는 관객들의 심정을 헤아린 할리우드의 배려지심을 문제 삼는 건 반칙이겠다.
‘인류생존의 최대 적은 인류’
종교 대신 현실적 위협 다뤄
피렌체-베네치아-이스탄불 배경
빠짐없는 관광 명소 볼거리
노련한 편집과 음향효과에도
‘소박한’ 미스터리 해결 과정
‘안쓰러운’ 주인공들의 혈투
후반 반전카드엔 인내심 바닥
그러나 영화는 여행전문채널의 유럽 특집이 아니다. 따라서 그 관광 코스가 얹어진 플랫폼인 미스터리-인류구원-서스펜스, 즉 이야기가 탄탄하지 못할 경우 이야기와 함께 관광무비적 기능성 역시 동반 붕괴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의 감별은 ③미스터리 부문에서의 설득력과 치밀함(나아가 그 의외성)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안 그래도 가뜩이나 심각한 인디아나 존스스럽던 랭던 교수는 <인페르노>에선 인디아나 존스에 한층 더 가까워진 ‘미술품 및 역사유적 통한 퍼즐 풀기’라는 임무를 하달받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퍼즐을 ①누가 만들었는가 ②어떻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③왜 만들었는가, 이 세 가지일 것이다.
주최 측은 <인페르노>가 ①‘누가’라는 부분에서 이전 ‘로버트 랭던’ 시리즈와 가장 큰 차별성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페르노>의 악의 축 겸 퍼즐 출제자는 미치광이 백만장자 생명공학자 ‘조브리스트’(벤 포스터)다. 그는 과잉 인구로 인한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해 며칠 만에 세계 인구의 반을 죽이는 바이러스를 개발하고, 그것을 어딘가에 숨겨놓은 뒤 죽는다. 그렇게 <인페르노>는 이전 시리즈가 다뤘던 종교라는 테마에서 벗어나 인류 멸종이라는 더욱 거하고 심각하고 현재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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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 두오모 광장, 산조반니 세례당, 바사리 프레스코, 산마르코 광장, 두칼레 궁전, 소피아 성당 등 영화 속엔 이탈리아와 터키의 핵심 관광명소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유피아이(UPI)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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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류야말로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는 이러한 테마는 로버트 랭던 시리즈에서는 새로운 것일지 모르겠다만, 영화판 전체를 놓고 본다면 전혀 새롭지 않다. 다소 멀게는 <아이로봇>부터 최근의 <트랜센던스>까지, 지난 10년간을 대충 훑기만 해도 수많은 영화들이 줄줄 걸려나온다. 심지어 조브리스트가 인류의 인구 증가 속도와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비교한 뒤 내리는 ‘현재 인류는 멸망 1분 전’이라는 인류종말시계스러운 표현마저도 이미 7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다.
뭐, 테마야 어찌되었든 그로부터 나온 퍼즐이 기발하거나 짜임새 있다면, 즉 ②‘어떻게’ 부분이 설득력이 있다면 딱히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테가 상상하고 보티첼리가 그린 지옥도로부터 거하게 시작된 <인페르노>의 퍼즐은 퍼즐로서는 상당히 진부하다 할 수 있는 알파벳 조합퍼즐인데다, 딱히 대단한 기호학적-미술사학적-예술철학적 지식 없이 최소한의 시력과 이탈리아어 능력으로도 풀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것을 푸는 사람은 랭던이 아닌, 이번 편의 ‘랭던 걸’인 (왜 아니겠는가마는) 미모의 젊은 의사 ‘시에나’(펄리시티 존스)다.
하긴 모든 퍼즐을 반드시 주인공이 풀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더구나 랭던은 영화 시작부터 영화계 3대 질환(뇌종양, 백혈병, 기억상실증) 중 하나인 기억상실증에, 그것도 실로 정확하고 편리하게도 지난 48시간 동안만 생각나지 않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초반의 저조한 퍼즐 풀기 성적에 대한 양해의 여지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퍼즐 풀기의 핵심단서를 지나가던 박물관 가이드에게 물어 알아내는 것은 세계적 권위의 기호학자 겸 하버드 교수 겸 주인공으로서는 꽤 없어 보이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할 것인데, 뭐, 랭던은 기호학자이지 역사학자는 아니니까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이 영화에는 그렇다 치고 넘어갈 것들이 꽤 많다), 어쨌든 가장 중요하지만 영화 관람의 와중에 잊기 십상인 것은 ③‘왜’라는 질문, 즉 악의 축 ‘조브리스트’가 왜 하필이면 로마와 이스탄불의 관광명소에만 단서들이 집중되어 있는 이 퍼즐을 굳이 출제해서 풀게 했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그냥’이다. 또는 ‘워낙에 제대로 미친 자이니까’이다. 또는 ‘안 그러면 영화가 안 되니까’ 정도다. 물론 이해지심을 풀가동하여 조브리스트는 워낙에 억만장자이기도 하거니와 단테의 데드마스크를 사서 박물관에 영구 임대해줄 만큼 조예 깊은 단테 마니아이니만큼, 뭔가 그런 퍼즐을 만들고 싶기도 했겠다고 이해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가 준비해 둔 ‘미스터리’들이 하나씩 풀려가고, 나름 회심의 일타로 숨겨둔 반전카드를 꺼내 드는 후반부에 당도하면 그런 이해지심도 그만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동시에 영화 관람 내내 의식의 밑바닥에서 어른거리던 생각 하나가 소피아 성당의 중앙돔만큼이나 거대하고도 우뚝하게 솟구친다. ‘저럴 거면 애초부터 좀 더 평범한 방법으로 알려주지 그랬어!’
왜?…‘그냥’
론 하워드 감독은 영화의 초입부터 영문 모를 부상 및 기억상실증을 안고 깨어난 랭던의 1인칭 시점, 특히 그가 보는 환영과 환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과연 테크닉과 연륜의 노장답게, 랭던의 환영 속 지옥의 이미지는 웬만한 2류 공포영화보다는 훨씬 묵직하고 섬뜩하다. 그 환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편집이나 음향효과 역시 관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적절히 디자인되어 있다. 앞서 말한 관광무비적 기능성을 십분 충족시키는 촬영은 물론이고 말이다.
하지만 노련한 연출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계속 똑같은 차림새와 얼굴을 하고 나타남으로써 타깃들이 얼굴만 보고도 도망치게 만드는 암살자, 암살자가 추격해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결코 하이힐을 벗지 않은 채 고공 외나무다리 건너기를 감행하는 여주인공 등등은 서주에 불과하다. 등장할 때부터 어차피 유출되지 않을 것임이 구구단 1단보다도 명확한(설마 이를 두고 스포일러라 비난하시진 않으리라 믿는다) 그 치명적 바이러스를 두고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한눈에도 고생스런 최후의 혈투가 안기는 안쓰러움 역시도 그 절정은 아니다. 스포일러 우려로 차마 구체적 묘사는 못하겠으나, <인페르노>에서 인류 절반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은, 다름도 아닌 휴대폰 통화품질이다. 이 정보통신적 비극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무시무시하다. 단테의 지옥까지 갈 것도 없이.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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