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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3 19:28 수정 : 2016.09.23 20:16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 역을 맡은 톰 행크스. 그는 155명의 탑승객 전원을 상처 하나 없이 안전하게 생존하게 했음에도 끊임없이 고뇌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2009년 1월, 얼음장 같은 미국 뉴욕 허드슨강 수면에 비상착륙한 여객기의 155명 탑승객 전원이 부상자도 없이 무사 생환한 유명한 사건을 다룬 영화다. 물론 이 영화를 연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극심한 인플레를 겪는 중인 ‘거장’이라는 호칭에 진정 어울리는 양반이니만큼 남다른 기대를 품는 한편으로 감별사적 관점에서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우려 또한 품는다.

첫째는, 이 사건이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잘 알려졌던 ‘해피엔딩’이기 때문에 ① 자칫 뻔하고 식상한 영웅담에 머물지 않을 것인가, 둘째는 ‘이륙한 지 3분30초 만에 새떼 충돌 사고 발생 → 3분28초간의 불시착 과정 → 이어진 24분간의 구조과정’이라는 타임코드가 명확한 마당에, 모두 합쳐 기껏 30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사고 재현을 보고 나면 ② 더 이상 화려한 볼거리나 흥미로운 내용은 없고, 한 시간 남짓 동안(<설리>의 상영시간은 1시간 36분) 상대적으로 무겁거나 딱딱하게 느껴지는 뒷수습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추락 장면을 ‘구경’하는 재미

따라서 우리의 감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이에 대해 어떤 식의 답을 내놓았을 것인가? 에 집중된다.

일단 ②번 항목.

이를 감별함에 있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또 다른 항공사고 영화이자 안타깝게도 대중의 외면을 받았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수작 <플라이트>(2012)다. 물론 <플라이트>는 픽션, <설리>는 실화영화라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두 영화는 ① 돌발적인 여객기 사고와 이에 놀라운 대처를 해낸 파일럿, ② 그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 그리고 이어지는 미국운송안전위원회(NTSB)의 조사와 청문회, 그리고 ③ 그로 인한 파일럿의 내면의 갈등과 변화에 대한 조망 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무척 닮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두 영화는 상당히 다르다. 일단 <플라이트>의 주인공 휩 휘터커(덴절 워싱턴)는 알코올/약물 중독자이자 약물에 찌든 상태로 비행기를 조종한 문제성 인간이다. 반면 <설리>의 주인공인 체슬리 설런버거(이하 설리)는 40년 동안 큰 문제 없는 파일럿 생활을 영위해온 모범적 직업인이다. 이는 <플라이트>의 주인공이 ‘영웅’으로 칭송되며 겪는 갈등은 곧바로 이해되는 반면, <설리>의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번민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는 차이를 낳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얘기하도록 하고.

②번 항목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면, <설리>는 사고 장면을 배치하는 방법에서 <플라이트>와 결정적인 차이점을 보인다.

<플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철저히 시간의 흐름을 따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즉, 영화 초입 25분 정도에 걸쳐 사고 순간을 정밀묘사하고, 그 뒤 약 2시간 정도 파일럿이 겪는 일들과 그에 따른 심리 변화를 짚어간다. 그런데 이런 ‘정직한’ 구성에는 문제가 하나 따른다. 불시착/추락 등의 사고 장면은 태생적으로 시각적/심리적 하이라이트를 이룬다는 것이다. 즉, 서두의 추락 장면 이후 영화는 필연적으로 하강기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플라이트>처럼 극적이고도 리얼하게 연출된 추락 장면이라면 체감 낙차는 훨씬 크다. 거기에 주인공이 알코올-약물 중독에다 자신만의 지옥을 끌어안고 있는 인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다.

반면 <설리>는 추락 장면을 크게 네 번에 나눠 보여준다. ①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추락 순간 ② 중반부(40분 경과시점)에 본격 상세 묘사되는 이륙에서 불시착까지 일련의 과정 ③ 불시착 이후 이어진 구조과정의 정밀묘사 ④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208초간의 불시착 과정 정밀묘사.

이 대목에서 이런 개탄을 쏟아내실 분 상당수 계시리라 믿는다. 뭔가, 제아무리 극적인 사고라도 같은 장면을 서너 번 재탕하다니, 이것은 기초 상도의에 위배되는 행위 아닌가!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개탄은 매우 합당한 것이겠다만 <설리>엔 아니다. 이 장면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다른 장면들이다.

2009년 허드슨강 불시착 사고
주관적→객관적 시점 옮겨가며
추락장면 정밀묘사…긴장감 유지
등장인물 간 상투적 갈등 배제

‘내 판단이 틀리진 않았을까?’
끝없이 고민하는 조종사 통해
영화가 말하는 기적의 ‘조건’
“모두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차이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시점이다. ①은 주인공인 기장 설리(톰 행크스)의 상상 또는 악몽의 산물이다. ②와 ③은 설리를 비롯해 사고현장에 있던 모두의 기억을 합쳐 재구성된 과정이며, ④는 사고기록장치가 기록해 놓은 완전한 팩트 위에 얹어진 재현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완전한 주관(즉 주인공의 내면)에서 출발해 점차 객관적 사실을 향해 나아가는 구성을 취함으로서 ‘진실’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 및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물론, 그와 동시에 항공사고 영화의 기초적 기능성인 불구경적 기능성을 지속하여 충족시키고 있기도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영화는 과감한 사실 왜곡 하나를 감행한다. 실제로는 사고가 난 날로부터 1년 반 이후에 열렸던 사고조사 청문회를, 화끈하게도 사고 며칠 뒤에 열린 것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귀가/가족 재회/변호사 상담/언론 접촉/가족 및 지인들과의 마찰 등등의 상투적인(그러나 생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정들의 나열로 인한 이완 또는 처짐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대신 영화는 주인공 주위에 채 다섯 명이 넘지 않는 핵심인물들(집에서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의 아내, 부기장인 제프(에런 에커트), 조사위원회 위원들, 회사 간부 등)과 사고가 나고 청문회가 열릴 뉴욕이라는 공간만을 남겨둔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의 불안과 고뇌를 더욱 내밀하게 파고들 여유를 확보하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에서 진행되는 진실 규명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밀도를 확보하는, 즉 깊이와 흥미를 동시에 확보하는 쉽지 않은 성취를 해낸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의문을 품으실 분 많을 것이다. 엔진 두 개가 모두 멈춘 비행기를 강 위에 비상착륙시켜 155명 탑승자 전원을 상처 하나 없이 생존하게 한 기적을 이뤄낸 인물에게 대체 무슨 고뇌와 불안? 그리고 무슨 청문회?

사실 이 부분이 <설리>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 고뇌와 불안이란, “내가 잘못한 거라면? 내가 승객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던 거라면?”이라는 질문인바, 언론과 대중의 폭발적인 환호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런 그의 뒤에는 시뮬레이션 결과 불시착 대신 회항이 가능했다는 미국운송안전위원회의 문제제기가 있다.

주인공인 기장 설리는 착륙한 뒤에도 승객들을 일일이 챙기고, 비행기에서 가장 마지막에 내리는 등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전념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웅의 일 아닌 “자신의 일”

하지만 영화는 그 배후에 있었을지 모를 여객기 제조사와 보험회사의 압력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의 대사로 몇 차례나 반복되듯 “(모두들)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설리>의 세계에서는 조종사도, 승무원도, 승객도, 관제사도, 경찰 구조대원도, 사고현장 근처에 있던 페리선 선장도, 그리고 심지어 일종의 악역으로 설정된 운송안전위원회의 관료들도 모두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할 일”에 철저하려 하고, 그것에 자부심을 품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하여, 순간적 판단으로 기적적인 착륙을 해내고, 대피하는 승객들에게 체온 유지용 담요를 일일이 챙겨주고, 물이 차오르는 기내를 두 번 왕복하면서 혹시 모를 남겨진 사람을 확인하고, 가장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가장 나중에 구조된 뒤에도 생존자의 숫자가 확인되기 전까지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얘기하기를 거절하는 설리의 행동은, 영웅의 일이 아닌 “자신의 할 일”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자신의 할 일”들은 기적이 되고 그 기적은 “모두의 일”이 된다. 그것이 <설리>가 제시하는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스포일러가 될까 차마 말씀드리지는 못할) 마지막 ‘인간적 요소’ 한 방울로 인해 마침내 완결된다. 영화가 해낼 수 있는 가장 마땅한 “자신의 할 일”이 된다.

영화의 클로징에서 등장하는 이 사건의 실제 인물들은 이 일이 이 지상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한데 어찌된 일인가. 그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부터 몇 만 광년이나 떨어진 세계처럼 느껴졌던 것은.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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