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고스트버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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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발표된 원작의 리부팅 작품인 <고스트버스터즈>는 오리지널 캐릭터의 성별을 여성으로 전환하는 등 변화를 꾀했으나, 원작에서 검증된 성공 요소를 그대로 재생하는 데 머물렀다. UPI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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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연 ‘사춘기에 들은 음악’일 것이다. 이는 물론 시, 소설, 연극, 영화 등등 모든 장르의 예술에 적용 가능한 얘기일 것인데,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영화감별을 시행함에 있어 개인적 사안은 거론치 않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을 잘 알면서도 이번 회엔 약간만.
<고스트버스터즈>는 필자가 처음으로 보호자 동반 없이 단독으로 정식 티켓을 구입하여 극장 관람을 했던 영화다. 때는 겨울철 방학시즌. 극장은 현 낙원상가에 있는 헐리우드 극장(이하, 미량의 탈법적 요소가 수반된 그 구체적 관람 과정에 대한 얘기는 생략). 책장에 꽂힌 책들을 공중에 띄우는 사서 할머니 유령이 나오고, 녹색투명 유령(그 이름도 구수한 ‘먹깨비’)이 뉴욕 호텔을 헤집고 다니더니 어느샌가 뉴욕 상공 전체가 불길한 소용돌이 구름으로 온통 뒤덮이고 등등등, 지금처럼 화끈한 시지(CG·컴퓨터그래픽)는커녕 <스타워즈>에서 컴퓨터로 제어되는 모션컨트롤 카메라를 썼다는 것이 경이로운 일로 계속 거론되던 시절이던 당시 <고스트버스터즈>가 보여준 이런 화려하기 그지없는 ‘시각적 특수효과’(VFX)는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코미디도 비쌀 수 있다’는 명제
하지만 그 브이에프엑스 자체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그것이 다름 아닌 코미디, 그것도 아무런 예술적 야심을 드러내지 않는 휘발성 코미디라는 플랫폼에 얹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제작 과정에 관한 한 일자무식인 아동의 눈에도 틀림없이 상당한 돈과 고급인력들이 대거 투입되었을 화려한 특수효과 장면들이 저런 ‘안 진지하고 안 심각한 안 미남’ 아저씨 배우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제껏 보아왔던 그 어떤 에스에프(SF)보다도 더 에스에프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마시멜로맨’(역시나 구수한 당시 자막 번역으로는 ‘찐빵귀신’)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농담을 모아 빚은 반죽에 세상의 모든 기술력이라는 이스트를 쏟아부어 구워낸 듯한 (당시로선) 최첨단 특수 조크의 결정체를 목도하면서 필자는 거의 의식 저변의 지각판이 1미터가량 이동하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그 충격은 그로부터 얼마 뒤 (역시나 다소의 탈법적 과정을 거쳐) 관람하게 된 <터미네이터> 1편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지만, ‘코미디도 비쌀 수 있다’는 명제가 남긴 여진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맞다. 아무리 소싯적 얘기라지만 <고스트버스터즈>에 충격을 받았다는 얘길 굳이 거론한 이유는, 필자가 이 영화에 대해 ‘사춘기에 들은 음악’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두기 위함이다. 부디 이를 염두에 두시라는 말씀과 함께 감별 소견을 시작하자면,
일단 ‘오리지널’ <고스트버스터즈>(이하 ‘오리지널’)가 출시된 1984년 당시와 현재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나 시지다. 지금은 시지 인플레의 시대. 오리지널의 핵심 승부처 중 하나였던 브이에프엑스 장면들을 아무리 잘 만든다 하더라도 아무런 화제가 되지 못한다. 하여, 유령 등장과 사냥 장면 등등의 비주얼은 ‘리부팅’ <고스트버스터즈>(이하 ‘리부팅’)의 승부처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리부팅의 핵심 승부처는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이었던 코미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리부팅은 한 가지 결정적 승부수를 띄우는데 그것은 바로 오리지널의 핵심 캐릭터들 성별을 교체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설정 변화 이상의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고스트버스터즈>같이 단발성 대사·상황과 배우들의 개성·개인기에 주로 의존하는 슬랩스틱 계열의 코미디인 경우에는 캐스팅이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오리지널의 주연인) 빌 머리 특유의 시니컬하고도 천연덕스러운 분위기를 다른 배우를 통해 모사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 아예 캐릭터의 성별을 바꿔 오리지널로부터 최대한의 거리를 둔 것은 일단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사료되는데, 네 명의 고스트버스터즈 멤버 모두 에스엔엘(SNL) 출신으로서 코미디 연기로 잔뼈 굵은 여배우들로 구성된 것은 이 영화의 코미디 향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리부팅이 준비해둔 가장 핵심적인 회심의 카드는 ‘경리직’ 남성 직원인 ‘케빈’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왕년(말하자면 1984년이라든가)의 영화들에 종종 등장하곤 했던 눈요기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병풍형 여직원 캐릭터를 그대로 남성으로 성 변환한 뒤 ‘아무짝에도 쓸모없음’ 부분을 집중 증폭해놓은 캐릭터로서, 그 역할을 다름도 아닌 크리스 헴스워스(<토르>의 ‘토르’)가 맡음으로 해서 육체파 병풍형 남직원으로서의 비주얼을 확고하게 굳히고 있다.
이 영화의 안타성 개그들의 대부분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케빈’ 캐릭터의 무뇌아급 푼수 행각, 또는 주인공들이 그를 재료 삼아 주고받는 조크로 이뤄져 있는바, 이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받아온 비릿한 남성중심적 시선 및 편견을 고스란히 남성들에게 되돌려준다는 역지사지적 차원에서 꽤나 재미있고 나름 통쾌하기까지 한 대목이었던 것은 틀림없으나, 어엿한 남성 된 몸으로서 그런 조크를 보며 ‘남성 육체의 상품화’나 ‘남성에 대한 성차별적 편견’ 등의 단어 떠올리며 분개하는 대신 그 어이없음과 천진난만함에 웃음을 흘리던 나는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에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이게 다인가?
그에 대한 답이자 리부팅에 대한 감별 결과는 ‘그렇다’이다.
32년의 장구하다면 장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등장인물들의 성별 변환과 그에 의해 아저씨 조크가 아줌마 조크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 리부팅이 딱히 오리지널로부터 더 나아갔다고 보이는 부분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리부팅은 리메이크-리부팅-재활용 영화들이 따르는 공식들에 충실하다. 원년 배우들과 귀신 캐릭터들의 카메오, 오리지널에 등장한 장비·의상·로고 등의 탄생 비화 등등 오리지널의 팬을 위한 각종 기본 서비스들을 곳곳에 포진시키기. 오리지널의 골격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리모델링된 ‘안전한’ 시나리오 안에 새로운 배우들을 투입하기. 그를 바탕으로 오리지널 팬들이 검증해준 성공 요소들을 그대로 재생하기 등등.
하여, 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나름 소소히 즐길 만한 단발성 잽 같은 조크들을 보며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2년이라는 세월 동안 달라진 것이라곤 고작 브이에프엑스의 품질과 주인공들의 성 변환 정도뿐이란 말인가?
‘특수효과+코미디’ 1984년 원작
리부팅 승부수는 역시 코미디
핵심 캐릭터를 여성으로 교체
남성중심적 시선 되돌려주기
아저씨 조크가 아줌마 조크로
비엘리트 블루칼라 여성 ‘패티’
유일한 흑인 ‘윈스턴’의 판박이
원작의 성공요소 답습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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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머리 특유의 시니컬하고도 천연덕스러운 분위기가 시종일관 압도한 1984년 원작.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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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밸 갈등 상황 반영한 설정?
그러한 실망감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고스트버스터즈 멤버들 중 가장 낮은 비중과 낮은 존재 근거를 가진 캐릭터이자 유일한 흑인 캐릭터인 ‘패티’(레슬리 존스)다. 지하철 티켓부스에서 근무하는 역무원이던 그녀는 지하철에서 유령을 목격한 뒤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스트버스터즈에 조르듯 합류하게 되는데, (그래 봬도) 전원 핵물리학자로 구성되어 있는 (알고 보면) 초엘리트 집단인 고스트버스터즈에서 그녀는 유일한 비엘리트이자 블루칼라이다.
그녀는 약간의 향토사학자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화 내내 딱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이는 영화 중간에 상당히 뜬금없이 고스트버스터즈에 합류한 뒤 영화 끝까지 내내 겉돌던 유일한 흑인 멤버 ‘윈스턴’(어니 허드슨)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물론 출연 컷 수 면에서는 다소 늘어나긴 했어도 말이다). 이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를 내는 한편으론 거의 내전을 방불케 하는 흑백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의 상황을 반영한 설정인가 등등의 과도한 해석 및 진지함의 오류까지는 굳이 가지 않으련다만, 그래도 리부팅 <고스트버스터즈>가 안긴 실망은 32년 전 그 영화를 다시 꺼내 보도록 하고 있다. 사실 추억을 떠나 냉정하게 말하면 영화사에 남을 엄청난 걸작은 결코 아니었던 그 오리지널을 말이다.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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