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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08 20:00 수정 : 2016.04.09 20:06

<배트맨 대 슈퍼맨>은 ‘왜 악당이 아닌 히어로들끼리의 대결인가’를 앞세워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왕년의 아동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하고, 거론하고, 논쟁하고, 그러다가 몰지각하게도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가곤 했던 그 뜨거운 논쟁적 화두, ‘태권브이하고 마징가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그대로 가져다 번안한 듯한 제목을 앞세움으로써 개봉 훨씬 전부터 범지구적 주목을 끌어냈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BVS〉).

굳이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건만 주최측에서 ‘모든 대결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헤드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 〈BVS〉를 둘러싼 의문은 사실 ‘누가 이길까’에 앞서 ‘대체 왜 싸우는데?’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팬들은 ‘제목의 상석(즉, 앞)을 놓고 싸운다’부터 ‘영화의 주인공 자리를 두고 싸운다’까지 다양한 학설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사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답은 명확했다. 전자에 대해서는 배트맨 역의 벤 애플렉이 직접 “알파벳순이다”라며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내림차순적 답을 내놓았다. 후자 역시 처음부터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BVS〉는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의 감독이었던 잭 스나이더가 다시 감독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던 그 유명한 ‘우주방아’(주최측 호칭으로는 ‘월드엔진’)를 영화의 도입부부터 등장시킴으로써 애초부터 <맨 오브 스틸>의 속편임이 확실하게 천명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싸울 일이 뭐가 있는데? 이에 대해 벤 애플렉은 앞서와는 달리 “그 질문 자체가 이 영화의 내용이다”라는, 어물쩍 뭉개고 넘어가는 답변을 내놓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극장을 향해 미심쩍은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과연. 영화는 그 질문에 확실한 답이 되는 장면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 장면이란 영화 중반, 배트맨과 슈퍼맨이 슈트를 입은 상태로 첫 대면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배트맨은 신형 배트모빌을 몰고 적진 한가운데에 등장하여 (이 무지몽매한 필자로서는 아직까지도 영문과 목적을 뚜렷이 파악할 수 없는) 추격액션을 벌인 뒤, 뒤미처 현장에 나타난 슈퍼맨과 조우하며 잭 스나이더 풍의 장중한 슬로모션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예고편에서의 바로 그 장면).

그런데 이 문제의 장면에서 슈퍼맨은 다짜고짜 새 배트모빌의 문짝을 한 짝도 아닌 두 짝 다 뜯어내는 도발을 자행한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그의 슈퍼한 파워는 누구나 다 아는지라, 무슨 긴급히 전할 전갈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치지만, 웬걸, 슈퍼맨은 뜯은 문짝을 내던진 뒤 별다른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채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음속돌파하여 사라진다. 바로 이 대목이 배트맨의 그 분기 어린 대사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너도 피를 흘리나? (슈퍼맨, 무시한 채 날아가고) …흘리게 될 거다.”

그렇다. 배트맨은 어딘지 러시아 용병대장스러워진 새 ‘알프레드’(제러미 아이언스)가 새로 뽑아 준 신형 배트모빌을 타고 첫 출격 하여 호쾌히 액션하고 있었거늘, 갑자기 등장한 슈퍼맨으로부터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 배트모빌의 문짝을 뜯기는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보험처리-사진촬영-연락처 교환 등의 아무런 후속조치도 없이 슈퍼맨이 밤하늘 저 멀리로 사라질 때까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뺑소니의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 당연하다. 싸우는 거. 별 시답잖은 일에 목숨 건 보복운전 난무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감히 그런 폭거를.

그렇게 영화는 1차 의문을 확실하게 해소해준 다음, 2차 의문이자 의문의 심장인 ‘누가 이기나’의 해소를 위해 전력질주한다. 이 자리에서 구구절절 늘어놓기에 심히 복잡다단계스러운 우여곡절을 거쳐 배트맨과 슈퍼맨은 마침내 세기의 빅매치를 한 치의 몸 사림도 없이 확실하게 보여주며 관객과의 기초 상도의를 준수한다.

물론 이때의 배트맨은 이미 보복지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슈퍼맨의 슈퍼함에 대비한 중무장에만 치중, 배트맨이라기보다는 아이언맨(사실 외관만으로는 너구리맨)에 훨씬 더 근접해 있다만, 그때까지 영화가 진행해온 배트맨의 비배트맨화 정책(예컨대 ‘정체 감추기’ 콘셉트의 포기, ‘살인하지 않는다’ 콘셉트의 폐기 등)을 망연자실 바라봐온 우리 관객 입장에서 그 정도는 이미 전혀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결의 끝에서 등장하는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그 극적인 화해 장면에서 튀어나오던 그 기상천외한 대사가 안긴 충격에는 그 누구라도 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전편의 우주방아에 이은 이번 편의 촛농괴물의 환란으로부터 지구를 구한 것이 배트맨도, 슈퍼맨도, 원더우먼도 아닌, 작명철학이었다는 기상천외한 전개를 지구상의 그 뉘라 하여 감히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들께서는 이 대목쯤에서 작명철학? 이게 다 뭔 소리? 하고 신음하시리라. 이에 대하여 필자는 차라리 모르고 마시길, 이라는 고언 드리며 에 대한 오늘의 감별 소견에 갈음한다.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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