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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26 19:07 수정 : 2016.02.27 10:23

철저히 사건을 파헤치는 언론사 취재팀원들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무뚝뚝한 스타일은 영화의 의도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고 그런 이유로 성공적이다.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스포트라이트

① 실화, 그중에서도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 폭로 실화, ② 그것을 폭로한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 팀을 연기한 마이클 키턴-마크 러펄로-레이철 매캐덤스로 이어지는 든든한 캐스팅, ③ 아카데미 6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위시하여 길쭉하게 이어지는 수상 및 노미네이트 목록들… 이 중 <스포트라이트>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이 등장한 순간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스포트라이트>의 핵심은 사실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아니다. ‘있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겠다. 왜냐면 이 영화의 핵심은 이 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존폐가 걸린 은하왕자 절대도끼 등등을 논외로 한다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①이 영화만의 스타일의 없음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에는 자신만의 심미적 독창성을 성취해내겠다는 야심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이지 않는다. 화면은 신문사 캐비닛 깊숙이 틀어박혀 있던 문서처럼 탈색된 톤을 유지한다. 조명은 배우들의 얼굴에 반듯이 펼쳐진 신문지 정도의 그림자밖에 드리우지 않는다. 격렬한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이나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배우들은 거의 바스트샷으로 잡히고 있다. 컷 분할 또한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클로즈업 컷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배우의 표정이 아닌 성추행 혐의자를 찾아 보스턴 교구 신부 인명부를 한줄 한줄 훑어 내려가는 사무용 자를 비추는 클로즈업이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말한다면 <스포트라이트>의 스타일은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위장무늬에 가까워 보인다. 이 ‘눈에 띄지 않는 그릇’을 만들려는 의도는 이 영화를 후보로 올린 수많은 영화상 중 촬영이나 조명을 노미네이트한 상은 단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매우 성공적이다.

이 대목에서 ‘뭔 소리, 그건 그냥 촬영을 진부하고도 지루하게 해서 그런 거잖아!’라고 반박하실 독자 계실 줄로 믿는다. 실제로 일부 해외의 비평가들 역시 이런 ‘집 나간 스타일’을 결정적인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는바, 바로 이 대목이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결정적으로 갈릴 대목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영화에 없는 것’ 또 하나를 짚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②스포트라이트 팀이 당시 직접 보고 겪은 것들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이다.

슬쩍 엿보듯 사건의 핵심을 드러내주는 도입부 2분 남짓을 제외하고, <스포트라이트>는 어떠한 ‘지난 과거’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철저하게 스포트라이트팀의 취재과정과 그 시간 흐름을 따른다. 심지어 신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상당히 고통스럽게, 구체적인 부분까지 세세히 증언하는 장면에서조차 영화는 꿋꿋이 플래시백 재연의 유혹을 떨쳐내며 증언하는 피해자와 그것을 듣는 기자에 머문다.

이뿐이 아니다. 사건 전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 즉 봉인된 기밀문서의 공개 여부를 결정할 판사라든가, 오래전부터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던 변호사들, 취재팀에 은밀한 압력을 행사하는 지역사회 유력인사들 또한 철저히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의 시야 안에서만 보여진다. 그들이 취재팀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제보와 조언을 하는 전문가는 끝까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 등장한다. 이건 스릴러 영화에서 보통 전화협박범이나 얼굴 없는 범인을 다룰 때나 쓰는 방법이다.

저널리즘 영화의 걸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그대로 계승하는 듯한 이 원칙, 즉 ‘현재, 바로 이 자리’라는 원칙으로 영화는 말 그대로 스포트라이트팀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된다. 그 스포트라이트가 드러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취재과정 그 자체다. 스포트라이트팀의 취재과정은 그야말로 ‘영화처럼’ 박진감 있지도 않고 영웅적 순간도 없는, 어떻게 보면 따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공업의 연속이다. 앞서 얘기했던 ‘명부 훑기’ 장면에서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이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신부의 수는 수천명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영웅적’인 장면 중 하나다.

만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스타 배우들의 존재와 무뚝뚝하면서도 충분히 유쾌한 유머감각, 그리고 있지도 않은 리와인드 버튼을 절로 누르고 싶어질 만큼 많은 정보를 쏟아내면서도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 시나리오의 힘이 없었다면, 실제로도 지루해졌을지도 모를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진실을 향해 가는 과정은 ‘영화처럼’ 멋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끝에서 스포트라이트팀 자신들조차도 ‘영화처럼’ 멋들어진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과 맞닥뜨린다. 그렇게 영화는 자신이 보여주지 않고 말하지 않은 부분들을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돌려준다. 그런 면에서 전혀 감각적이지도 독창적이지도 않은 <스포트라이트>의 무뚝뚝한 스타일은, 영화의 의도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고, 그런 이유로 가장 성공적이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물론 이 영화의 촬영감독(다카야나기 마사노부)은 이 영화로 상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의상(웬디 척)도 미술(스티븐 카터 등)도 음악(하워드 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상 따위야 아무러면 어떤가. 잔뜩 과시적인 시도와 스타일로 ‘이래도 상 주지 않을 테냐’는 듯 윽박지르는 <레버넌트> 같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스포트라이트>의 ‘없음’들은 더욱 빛난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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