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06 20:38
수정 : 2015.11.30 11:05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더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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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셰프'는 처음부터 줄곧 상식 이하의 요리를 내놓다가 당연히 나왔어야 할 요리를 막판에 내놓으면서 엄청난 궁중요리인 듯 자랑스러워하는 레스토랑 같다. 누리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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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과 셰프는 다른 존재다. 먹방과 쉐방이 다른 존재이듯. 주방과 키친이 다른 존재이듯. 미쉐린과 미슐랭이 다른 존재이듯.
그러한 현 정세를 적극 반영하여 ‘Burnt’라는 원제를 ‘더 셰프’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각종 쉐방 팬들의 이목을 끈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 사료되는 가운데, <더 셰프>는 ‘미슐랭 스타를 위한 불꽃 튀는 키친 전쟁’이라는 헤드카피를 통해, 올해 초 상당한 주목을 끌었던 음악 액션 전쟁 영화 <위플래쉬>의 요리 버전임을 은연중에 표방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플래쉬>의 그야말로 피 튀기는 사제간 전쟁에 사용된 흉기인 드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칼, 강판, 분쇄기, 끓는 물과 기름 등등의 예리하고도 살벌한 진짜 흉기로 가득한 주방(아니 ‘키친’)에서의 전쟁에선 어디 ‘불꽃’만 튀겠는가, 튀어도 뭔가 제대로 튀어주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지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겠다.
하여 <더 셰프>의 감별 포인트는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고수 요리사 사이의 전쟁이 얼마나 긴박하고도 살벌한가 ②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실제 주방의 모습이 얼마나 적나라하고도 흥미진진한가, 그리고 ③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어디 가서 써먹기 좋은 요리업계 전문지식을 얼마나 풍부하게 흘려주고 있는가.
우선 ③번 항목부터 짚자면, <더 셰프>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영양가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영화 내내 요리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요리뿐 아니라 각종 조리기구, 요리재료, 요리기법 등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오로지 그림으로만.
그렇다. 영화 속 곳곳에서 화사한 색채와 빠른 리듬감의 클로즈업으로 섬광처럼 명멸하며 휙휙 지나가는 요리 과정 및 음식들의 그림(!)은 그 자체로서는 매우 때깔 좋은 것이었으되, 그에 따른 사연이나 조리 기법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들은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영화는 요리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러한 <더 셰프>의 ‘뭐 그런 걸 촌스럽게 일일이’ 정책은 위화감과 더불어, 뭔가 잔뜩 먹은 것 같긴 한데 뭘 먹었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 허허로움을 안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요리와 음식에 대한 알찬 정보가 좋은 음식영화, 나아가 좋은 영화의 조건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기억한다. <바베트의 만찬>이라든가 <음식남녀>처럼 음식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나 이야기 없이도 충분히 훌륭하였던 ‘음식’영화들을. 따라서 ‘불꽃 튀는 키친 전쟁’을 표방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우리가 실제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개성 및 세계관 및 욕망 등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②주방 안의 모습일 것이다.
일단 그 주방 안의 모습은 난폭살벌하다. 욕설과 고함과 접시 날리기가 난무하며, 멀쩡해 보이는 요리들이 바닥에 투척되고, 심지어는 제대로 된 한 상 차림도 팔 저어 휩쓸기 한 방에 쓰레기통의 제물로 산화하여 간다. 물론 ‘키친’(주방 아님) 내에서 그런 난폭행위가 허용된 인물은 단 한 사람, 바로 영화의 주인공인 ‘헤드 셰프’(주방장 아님)다.
그런데 잠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그 난폭행위를 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걸 지켜보는가이다. 예컨대 이 영화가 은근 유사성을 표방하고 있는 <위플래쉬>에서는 고수 중의 고수인 밴드 리더 ‘플레처’의 각종 난폭행위는,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순진무구한 음악학교 1학년생의 시점에서 관찰됨으로써 엄청난 낙차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상당량의 낙하 에너지는 그대로 관객들의 정서적 충격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었다.
<더 셰프>의 시점은 기본적으로 주인공 ‘아담 존스’(브래들리 쿠퍼)에게 줄곧 맞춰져 있다. 물론 ‘수셰프’(부주방장 아님)인 ‘스위니’(시에나 밀러)나 ‘미쉘’(오마르 시) 같은 인물들이 그의 주위에 포진하여 그의 행동을 보고 당하고 맞불도 놓는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지위에 머물 뿐이다. 영화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헤드 셰프인 주인공뿐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①미슐랭 가이드 최고점인 별점 세 개를 따기 위한 ‘키친 전쟁’의 핵심이 있다. 영화는 주인공의 라이벌 셰프를 등장시키고 종종 그와의 신경전을 묘사하고는 있으나 이 영화의 ‘전쟁’은 그것이 아니다. <더 셰프>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재능과 열의는 엄청나나 인간적으로는 초등학적 수준을 면치 못하는 주인공 아담 존스의 개과천선 과정, 즉 ‘나 자신과의 전쟁’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아담 존스의 행동거지는 말 그대로 상식적 수준에 워낙에 미달하는 초등학적인 세계인지라, 영화가 막판에 회심의 일타로서 내놓는 그의 개과천선 대사 한마디는 애초부터 마땅히 그러했어야 할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 ‘깨달음’까지 도달하는 과정의 허술함 및 지루함은 둘째 치고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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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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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오늘의 감별 소견은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줄곧 상식 이하의 요리를 내놓다가 막판에 가서야 애초에 당연히 나왔어야 할 수준의 요리를 내놓으며 뭔가 엄청난 궁중요리인 듯 자랑스러워하던 레스토랑.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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