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분간 미국 세계무역센터(WTC)에서 주인공이 고공 줄타기를 하는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지극히 정적인 액션임에도 아슬아슬함과 시적인 정감, 코믹함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관객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데 성공했다. 트라이스타 픽처스 제공
|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하늘을 걷는 남자
이제는 사라진 전설 세계무역센터(WTC), 그리고 이 쌍둥이 빌딩 사이에 놓인 412m 상공에서 안전띠도 없이 외줄타기를 감행한 한 남자.
이 섹시해 마지않는 ①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거늘, 무역센터 외벽을 수직으로 고속 질주하여 단번에 옥상까지 도달한 뒤, 그 끝에 튀어나온 강철빔의 끝까지 기어이 걸어 나가서는 심지어 한 발을 들어올리기까지 하는 주인공으로도 모자라, 그의 발밑 높이를 굳이 수직앵글로 에누리 없이 보여주던 예고편만으로도 알 수 있듯 <하늘을 걷는 남자>는 줄타기의 아찔함을 최대한 ②체감할 수 있는 영화를 추구함으로써 극장(특히 3D 및 IMAX) 수요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고, 덕분에 많은 분들께서 좋은 시설 갖춘 몇몇 상영관들의 좋은 자리 일찌감치 예매지심을 자극받고 계시리라 믿는다.
더구나 주연배우인 조지프 고든레빗과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예절 바른 상업성’을 견지하는 배우와 감독인지라, 이 전대미문의 줄타기 자체뿐 아니라 그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③이야기를 깊이 있게 구현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즉, 이 영화의 감별 포인트는 ①소재 ②체감강도 ③이야기,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일단 이 고공 외줄타기 장면에서의 ②체감강도부터 논하자면 영화는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을 줄 수 있는 연출 및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2000년 당시로선 최고의 체감강도를 보여줬던 <캐스트 어웨이>의 비행기 추락 장면과 가장 최근작인 <플라이트>의 추락 장면 등에서 여실히 보여줬듯, 관객을 현장으로 곧장 끌고 들어가는 듯한 체감 연출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특기 중의 특기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도 토끼 만난 마술사처럼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다만 이전의 비행기 추락 장면들과 다른 점이라면 고공 줄타기는 지극히 정적인 액션이라는 점인데, 감독은 영화의 메인 이벤트인 30여분간의 세계무역센터 줄타기 동안 아랫배 울렁거리는 아슬아슬함을 안겨야 할 때, 평화롭고 시적인 정감에 머물도록 할 때, 코믹함을 던져야 할 때 등등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관객의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추출시켜놓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 주인공이 절대로 줄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임(이야기의 실제 인물 ‘필리프 프티’는 현재까지 멀쩡히 살아 있다)이 너무나도 자명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2시간 하고도 3분. 적게 잡아도 영화의 4분의 3은 이 줄타기 이외의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모름지기 영화의 ①소재가 극적이거나 독특할 경우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는 쉬우나, 한편으로는 얘기하는 사람만 재밌고 신나는 ‘휴가병 군대 얘기’가 되어버릴 개연성 또한 높아진다는 것을.
특히나 <하늘을 걷는 남자>의 경우는 주최 측 뜻대로 극적인 전개를 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엔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실화 소재 영화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미 이 영화와 똑같은 소재를 꽤 상세히 다뤘던 다큐멘터리인 <맨 온 와이어>가 2008년 공개된 바 있어, <하늘을 걷는 남자>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하는 삼중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에 <하늘을 걷는 남자>는 크게 ‘동화화’와 ‘컴퓨터그래픽(CG)화’ 두 가지 대책을 취한다. <맨 온 와이어>에서 이 줄타기의 실제 인물 필리프 프티가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예요”라고 언급한 것에 영감을 얻은 듯, 영화는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 위에 올라선 주인공이 동화책을 읽어주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 수다스럽고 때론 야단스럽기까지 한 내레이션은 영화의 끝까지 일관되게 계속 등장하는데, 뭐, 자유의 여신상 횃불 너머로 보이는 뉴욕의 전경이야 시원스럽다만, 대사나 연기로도 충분히 묘사 가능한 내용까지도 친절무쌍히 설명해대는 이 내레이션이 굳이 필요했는지는 끝내 의문이다. 더구나 그렇게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도 귀여운 어른용 동화보다는 저조한 유머와 겉핥는 인물묘사로 인해 밋밋하고 식상한 할리우드식 모험담에 머문 마당에 말이다.
더불어 ‘어차피 컴퓨터그래픽인 거 다 알잖아?’라는 듯 시지의 존재를 계속하여 의도적으로 드러내주는 저메키스식 연출은, 물론 <맨 온 와이어>와의 가장 큰 차별 포인트이긴 하겠다만, 종종 이게 뭔가 싶은 뜬금없음을 선사하고 있다(대표적인 예로, 그 촌스럽기 짝이 없던 ‘와이어 꼬기’ 시지는 정말이지).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