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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9 20:03 수정 : 2015.11.30 11:06

어차피 주인공이 구조되는 뻔한 결말에도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 의해 결말의 품질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마션>은 그 자체로도 성공적인 생존담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물론 ‘화성인’이란 영단어를 그대로 표기한 이두향찰적 제목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션>이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마스와 미션의 합성어인가?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지나갔던 것은 아무래도 15년 전 개봉작인 <미션 투 마스> 때문일 것이다.

당시 본격 화성탐사 영화를 주창하며 기염을 토했던 이 영화가 아메바형 외계인 및 외계우주선까지 등장시킴으로써 남겼던 민망한 뒷맛은 이 영화에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바, <마션>이 ① 실패한 화성탐험무비 <미션 투 마스>의 전철을 혹시나 되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근심은, 답지하고 있는 해외발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감별의 필요성을 대두시키고 있다.

더구나 <인터스텔라>에 출연한 바 있었던 ② 맷 데이먼이 또다시 대동소이한 우주복을 입은 채 우주탐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려 지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으며, 또한 3년 전 또 하나의 우주탐험 영화인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고령에도 결코 녹슬지 않은 섬뜩함 및 호러함 및 무거움을 선보였던 ③ 리들리 스콧 감독이 <프로메테우스>에 연이어 연출한 우주탐험 영화라는 점 또한 관람 여부 숙고하는 우리를 움찔케 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무릇 ③ 리들리 스콧 정도의 거장 겸 거물이라면 작고도 쫀득한 블랙코미디부터 <블레이드 러너>같이 에스에프(SF)의 탈을 쓴 영화 시(詩)까지 그 어떤 장르나 스타일도 능히 요리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따라서 ③번 대목은 애초에 근심의 근거 자체가 성립하지 않은바, 감별 포인트로부터 제외다.

역시 비슷한 이유로 ② 맷 데이먼의 우주탐험 영화 재삼 출연이라는 점 근심 포인트에서 제외인데, 사실 우주복 입고 외계행성을 활보한다는 점만 빼면 <인터스텔라>와 <마션>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정반대다. 즉 그가 <인터스텔라>에서 연기했던 우주적 찌질이 ‘만 박사’와는 달리 <마션>에서 맷 데이먼의 캐릭터는 <어바웃 타임>의 대사처럼 ‘착하고도 지루하지 않은 남자’로서의 맷 데이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다. 뭐든 ‘전형적’인 듯하다는 점. 맷 데이먼, 화성에 홀로 남겨진 탐사대원의 로빈슨 크루소적 생존담, 그리고 지구에서 벌어지는 필사적 구조작전, 이 세가지 요소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영화를 다 본 듯 그림이 그려지는데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라는 이 영화의 헤드카피는 주인공 구출작전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천명하고 있는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건져야 할 것인가. 화성 경치? 그런 비주얼은 제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해도 약발이 채 10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은 새삼 논할 필요 없을 것이고, 아님, 화성에서 나 홀로 살아남기 전략?

아닌 게 아니라 영화의 초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홀로 화성에 남겨진 뒤 취하는 일련의 생존조치들과 그 과학적 원리들은 듣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카메라를 향해 독백하는 맷 데이먼의 다큐 내레이션스런 대사를 통해 읊어지고 있어, 영화는 흡사 내셔널지오그래픽(또는 디스커버리 채널) 특별 기획을 보는 듯한 감흥마저 불러일으킨다.

영화가 주인공의 로빈슨 크루소적 고립 상황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는 이러한 감흥은 현저히 감소하나, 그럼에도 필시 원작소설에서 추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과학적으로 말 되기’가 이 영화의 이야기의 기본적인 뼈대를 이루고 있는지라, 우주교육 다큐스러운 감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내셔널지오그래픽스런 건조함과 디즈니스런 상투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5년 전 <미션 투 마스>가 내놓은 복안이 바로 아메바형 외계인과 안드로메다 저 멀리 날아간 외계우주선이었다. 하지만 <마션>은 그러한 안타까운 패착을 반복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택한 포석은 다름 아닌 유머와 인간미였다.

예컨대 나사(NASA) 수뇌부가 기존의 구출계획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온 청년이 나사 국장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이 장면에서 청년은 국장의 슈트 주머니에 꽂혀 있던 볼펜과 국장의 머리를 재료로 계획을 설명함으로써 나름의 유머와 구수함을 득하고 있다.(만일 이 장면이 거대 모니터에 띄워진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것으로 처리되었을 때의 건조함을 상상해보시길.)

이처럼 찬스가 있을 때마다 대사, 음악, 편집 등을 통해 끊임없이 유머와 인간미의 잽을 날리는 이 영화의 전략은 마침내 관객의 마음에 훈훈한 펀치드렁크를 남기는 데 성공하고 있는바, 위아더월드적 낙관주의 충만한 가운데 어차피 구조될 주인공이 구조되는 뻔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 의해 결말의 품질까지도 바뀔 수 있음을 <마션>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마션>은 그 자체로도 성공적인 생존담이라는 것이 오늘의 감별 결론되겠다.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아, 물론, 생존과 구조를 위한 갖은 노력과 각종 돌발사태에 의한 절망, 그리고 그걸 뛰어넘는 의외의 전개들을 보는 재미도 못잖고 말이다.

아무튼 과정이 중요해, 과정이.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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