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1대1 단식경기’로 줄거리를 이끄는 <서부전선>은 영화 중반까지 두 인물의 대치 상황을 충분히 발효시키면서 작위성을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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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서부전선
멀게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부터 가깝게는 <고지전>까지 ‘우리 이러지 맙시다’ 무비들로부터 확립된 산업표준을 <서부전선>은 엄수한다. 즉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험악한 첫 만남을 기록하였으나, 각종 밀고 당기고 업어치고 메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면서 점점 풋풋한 감정을 나누며 절친 되었으되, 결국 전쟁이라는 괴물이 그 모든 것을 말아먹더라’라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설마 이 정도로 스포일러 당하였다 비난의 돌을 던지실 독자는 안 계시리라 믿으며 계속하자면, 따라서 <서부전선>의 핵심 포인트는 의외의 결말 같은 것이 아닌, 그 정해진 출발지-경유지-도착지 사이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느냐가 될 것인바, 우리는 그를 위해 이 영화가 수립한 작전의 핵심을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 요약해볼 수 있겠다.
①남북한 1대1 시스템 ②탱크(또는 전차)
우선 ①번 포인트.
물론 여타의 ‘우리 이러지 맙시다’ 무비들에서도 남북한 각 진영을 대표하는 원톱(예컨대 <제이에스에이>에서는 이병헌과 송강호, <동막골>에서는 신하균과 정재영 등)이 존재하였다. 허나 이들은 모두 부하나 동료 등 자기 진영 사람들을 대동한 채 움직이는 ‘그쪽 대표’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서부전선>의 남측(‘남복’, 설경구)과 북측(‘영광’, 여진구) 선수들은 영화 초반부터 일찌감치 혼자 고립된 상태가 된 다음 곧장 1대1로 맞닥뜨린다. 즉 팀플레이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나갔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서부전선>은 처음부터 1대1 단식경기를 표방하고 나가는바, 이는 성공적일 경우 높은 감정이입 밀도를 확보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단조로움과 작위적 사건의 남발이라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라 할 것이다.
그의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다는 감별 소견을 드릴 수 있겠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팽팽한 대치 상황을 영화 스스로 견디지 못하여 성급하고 설익은 화해 향해 무너져 버리는 대신, 대략 영화의 3분의 2 지점까지 끌고 가며 대치 상황을 충분히 발효 숙성시킨 시나리오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이 계속되는 대치 상황에 의외의 상황들을 다채롭게 가미하도록 해주고, 그를 통하여 각종 코믹함을 득하게 한 핵심 열쇠로서 ②탱크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탱크(소련의 주력전차인 T-34/85)는 단순히 돈 들여 한번 티 내주기 위한 소품이나 소수 밀리터리 마니아들을 위한 팬서비스 아이템에 머물지 않는다. <서부전선>의 탱크는 [②-1] 두 사람의 그야말로 어깨 맞비비는 밀착형 티격태격을 위한 초미니 밀폐공간을 제공하는 ‘연극적 세트’의 기능성과 [②-2] 두 주인공을 전장이나 폐허가 된 시가지는 물론 폐가, 시골마을, 시냇가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이런저런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도록 해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알리바이를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이동식 세트’의 기능성, 그리고 심지어는 [②-3] 그 자체가 일종의 배우 되어 몸개그까지 해보이는 ‘기계식 배우’로서의 기능성까지 갖추고 있는바, 이 탱크의 다목적 활용법은 상당히 기발하고도 현명한 것이었다 하겠다.
더불어 탱크의 외관과 실내를 실물에 상당히 근접하게 재현해낸 미술 또한 충분히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겠는데, 그러면서도 탱크라는 기계(또는 무기) 그 자체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적으로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그것을 어디까지나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구로 한정시킨 것은 이 영화가 보여준 영리함의 핵심이라 하겠다.
물론 실제 탱크는 이 영화의 탱크처럼 ‘만화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T-34/85의 포탑은 그렇게 빠르게 돌지 않고, 대전차포를 맞은 포신이 그렇게 기역자로 꺾일 수도 없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탱크와 무스탕 전투기 사이의 ‘주먹다짐’도 현실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도로 리얼한 전차전과 전차병의 생활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여 사람의 이야기를 놓쳐 버려 따분하기 그지없었던 할리우드산 탱크영화 <퓨리>의 우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 점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던 <서부전선>.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종착점에서 보여주는 막판 쥐어짜기에 대해서만큼은 도무지 긍정적인 감별결과를 내놓기 어렵다. 이미 이야기가 완전히 마무리되어 관객들은 박수치며 떠나고자 할 시점으로부터 거의 10분가량 오에스티(OST) 전곡을 다 틀어줄 기세로 기나길고도 장구한 감정 및 눈물 압출 과정을 거친 뒤에야 간신히 엔딩크레딧 올려주는 이 영화의 마무리는, 이미 형성되어 있던 관객들의 눈물지심에 오히려 실리카겔을 뿌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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