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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25 19:39 수정 : 2015.11.30 11:06

남북한의 ‘1대1 단식경기’로 줄거리를 이끄는 <서부전선>은 영화 중반까지 두 인물의 대치 상황을 충분히 발효시키면서 작위성을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서부전선

멀게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부터 가깝게는 <고지전>까지 ‘우리 이러지 맙시다’ 무비들로부터 확립된 산업표준을 <서부전선>은 엄수한다. 즉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험악한 첫 만남을 기록하였으나, 각종 밀고 당기고 업어치고 메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면서 점점 풋풋한 감정을 나누며 절친 되었으되, 결국 전쟁이라는 괴물이 그 모든 것을 말아먹더라’라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설마 이 정도로 스포일러 당하였다 비난의 돌을 던지실 독자는 안 계시리라 믿으며 계속하자면, 따라서 <서부전선>의 핵심 포인트는 의외의 결말 같은 것이 아닌, 그 정해진 출발지-경유지-도착지 사이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느냐가 될 것인바, 우리는 그를 위해 이 영화가 수립한 작전의 핵심을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 요약해볼 수 있겠다.

①남북한 1대1 시스템 ②탱크(또는 전차)

우선 ①번 포인트.

물론 여타의 ‘우리 이러지 맙시다’ 무비들에서도 남북한 각 진영을 대표하는 원톱(예컨대 <제이에스에이>에서는 이병헌과 송강호, <동막골>에서는 신하균과 정재영 등)이 존재하였다. 허나 이들은 모두 부하나 동료 등 자기 진영 사람들을 대동한 채 움직이는 ‘그쪽 대표’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서부전선>의 남측(‘남복’, 설경구)과 북측(‘영광’, 여진구) 선수들은 영화 초반부터 일찌감치 혼자 고립된 상태가 된 다음 곧장 1대1로 맞닥뜨린다. 즉 팀플레이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나갔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서부전선>은 처음부터 1대1 단식경기를 표방하고 나가는바, 이는 성공적일 경우 높은 감정이입 밀도를 확보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단조로움과 작위적 사건의 남발이라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라 할 것이다.

그의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다는 감별 소견을 드릴 수 있겠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팽팽한 대치 상황을 영화 스스로 견디지 못하여 성급하고 설익은 화해 향해 무너져 버리는 대신, 대략 영화의 3분의 2 지점까지 끌고 가며 대치 상황을 충분히 발효 숙성시킨 시나리오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이 계속되는 대치 상황에 의외의 상황들을 다채롭게 가미하도록 해주고, 그를 통하여 각종 코믹함을 득하게 한 핵심 열쇠로서 ②탱크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탱크(소련의 주력전차인 T-34/85)는 단순히 돈 들여 한번 티 내주기 위한 소품이나 소수 밀리터리 마니아들을 위한 팬서비스 아이템에 머물지 않는다. <서부전선>의 탱크는 [②-1] 두 사람의 그야말로 어깨 맞비비는 밀착형 티격태격을 위한 초미니 밀폐공간을 제공하는 ‘연극적 세트’의 기능성과 [②-2] 두 주인공을 전장이나 폐허가 된 시가지는 물론 폐가, 시골마을, 시냇가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이런저런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도록 해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알리바이를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이동식 세트’의 기능성, 그리고 심지어는 [②-3] 그 자체가 일종의 배우 되어 몸개그까지 해보이는 ‘기계식 배우’로서의 기능성까지 갖추고 있는바, 이 탱크의 다목적 활용법은 상당히 기발하고도 현명한 것이었다 하겠다.

더불어 탱크의 외관과 실내를 실물에 상당히 근접하게 재현해낸 미술 또한 충분히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겠는데, 그러면서도 탱크라는 기계(또는 무기) 그 자체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적으로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그것을 어디까지나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구로 한정시킨 것은 이 영화가 보여준 영리함의 핵심이라 하겠다.

물론 실제 탱크는 이 영화의 탱크처럼 ‘만화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T-34/85의 포탑은 그렇게 빠르게 돌지 않고, 대전차포를 맞은 포신이 그렇게 기역자로 꺾일 수도 없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탱크와 무스탕 전투기 사이의 ‘주먹다짐’도 현실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도로 리얼한 전차전과 전차병의 생활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여 사람의 이야기를 놓쳐 버려 따분하기 그지없었던 할리우드산 탱크영화 <퓨리>의 우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 점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던 <서부전선>.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종착점에서 보여주는 막판 쥐어짜기에 대해서만큼은 도무지 긍정적인 감별결과를 내놓기 어렵다. 이미 이야기가 완전히 마무리되어 관객들은 박수치며 떠나고자 할 시점으로부터 거의 10분가량 오에스티(OST) 전곡을 다 틀어줄 기세로 기나길고도 장구한 감정 및 눈물 압출 과정을 거친 뒤에야 간신히 엔딩크레딧 올려주는 이 영화의 마무리는, 이미 형성되어 있던 관객들의 눈물지심에 오히려 실리카겔을 뿌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기왕 왕림하신 김에 눈물 한번 제대로 쏟을 기회 기필코 마련해 드리고야 말겠다는 주최측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적인 충정이야 잘 알겠다만, 그래도 좀 짤막하고 여운있게 끝내줬으면 안 됐을까! 관객을 믿고! 총부리 서로 겨누던 남북한 병사도 결국 서로를 믿게 된 마당에!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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