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고자 하는 강박은 때로 사극을 망치고 진부하게 만든다. 영화 <사도>는 원전에 충실히 진중하게 밀어붙임으로써 격 있는 비주얼과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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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영화 <사도>의 등장은 천고에 없는 놀라움이라. 이제껏 소설, 드라마, 연극, 영화 등등으로 다루어진 종류와 횟수로 보아, 능히 자웅을 겨룰 이야기는 오로지 연산군 이야기뿐일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놀랍게도 또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어찌 장차 근심됨이 없겠는가마는, 세 사람의 성명이 근심을 잠시 미루게 하니 그는 물론 ① 송강호 ② 유아인 그리고 ③ 이준익, 이 셋이라. 이 중 특히 ③ 이준익 감독이라는 이름은 우리로 하여금 달라도 무엇인가 다르리로다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바, 감별하는 자 되어 이에 대한 것을 우선하여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로다. 우선 그 결과부터 전하노니 <사도>에는 과연 뭔가 다른 것이 있었음이라. 그런데 그 ‘다른 것’은 굳이 뭔가 다르지 않으려 하지 않음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 놀랍더라. 무슨 말인고 하니, <사도>는 이 영화의 근본이 된 <한중록>을 특별히 새로울 것 없다 가벼이 여기어, 없는 이야기를 굳이 애써 상상하여 보탬으로써 뭔가 남들과 달라보려 헛되이 애쓰는 어리석음을 따르는 대신, <한중록>을 충실하게 파고듦으로써 임오화변이라는 천고에 없을 변고에 얽혀든 ‘사람’들의 인간적이고도 심리적인 면모를 고스란하고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었음이라. 이렇게 굳이 없는 희한한 것을 만들어 보태지 않고 있는 것에 충실하려는 자세는 시나리오뿐 아니라 미술, 의상, 분장 등등의 비주얼에서도 유지되고 있었더니라. 작금에는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대개 복식과 세트 등에 있어 본디 궁중의 것은 관객들 보기에 심심할까 지레 근심하여 족보에 없는 갖은 스타일 및 복식 및 치장을 잡되이 섞는 바람에 오히려 보기에 더욱 진부해지고 마는 ‘과도한 퓨전의 오류’가 극심하였으나, <사도>는 이러한 잡스러움을 최대한 걷어냄으로써 오히려 궁중 이야기에 걸맞은 신선하고도 격 있는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었더니라. 비록 비주얼 이야기는 아니로되, 하나 더하자면, <사도>는 등장인물들의 어투에서 또한 그러하였으니, 이 감별사 같은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상황이나 격식에 맞지 않는 틀린 말을 진지하기 짝이 없게 구사하거나, 재미도 재치도 아닌 것이 앞뒤 분별 없이 요즘 말을 남발하여 이게 대체 사극인지 한복만 걸친 현대극인지 알 수 없도록 하는 최근 일부 사극들의 망령됨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어 오히려 신선하며 와닿는 바 더욱 각별하더라. 물론 “저는 무늬만 중전이지요”처럼 간혹 격식에서 벗어나는 대사도 돌출하나, 영화가 국어교과서는 아닐진대 이 정도의 함량은 능히 용납함이 가하더라. 이러한 ‘가급적 고증 충실’이라는 연출의 방향은 캐스팅에까지 능히 미쳐, 궁중의 큰 여인인 정성왕후(영조비)와 선희궁(사도세자의 생모)을 각각 연기한 박명신과 전혜진의 마스크와 연기는 과연 ‘사극에 나온 연예인’이 아닌, 실감나는 옛 시대 여인의 풍모를 한껏 드러내주고 있더라. 물론 인원왕후 역의 김해숙이나 혜경궁 역의 문근영은 익히 연예인스럽도록 알려지도록 알려진 배우인지라 이러한 실감효과를 다소 상쇄시키는 측면 없지 않으나, 그러한 이름난 캐스팅 없이는 영화의 이름 널리 알려짐을 장차 바랄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이를 큰 허물이랄 수 있으리. 캐스팅의 면면을 찬찬히 뜯어본즉, 위 배우들뿐 아니라 박원상, 소지섭 같은 배우들 역시 출연하여 캐스팅의 화려함을 한껏 거들되, 그중 핵심 중 핵심은 뉘 뭐라 하여도 영조와 사도세자를 연기한 ① 송강호 ② 유아인, 두 배우라. 그중에서도 40대에서 80대까지의 드넓은 연령폭을 아우르며, 후대에 ‘편집증’이라 불릴 정도의 까탈스러움과 카랑카랑함 그리고 큰 감정 기복을 가지고 있었던 영조 역을 맡은 ① 송강호의 연기에 대하여서야 이 감별사가 굳이 미주알고주알 논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요, 또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익히 알고 계실 것이나, 그럼에도 한마디를 거들지 않을 수 없으니, 그리도 모진 모멸과 설움을 안기며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아들 사도세자의 마지막 순간에 임하여 지극한 회한을 담아 울며 마지막 말을 건네는 영조의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복잡한 심리를 그리도 자연스레 느껴지도록 만든 것은 송강호가 아니면 그 뉘라 할 수 있었으랴 싶더라. 그 반대쪽에서 ‘본디 총명하고 자질이 고귀’하였으나 부왕과의 불화로 인하여 점점 울분과 광증으로, 그리하여 결국 비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으로 내몰리는 세자를 연기한 유아인 또한 그에 상응하기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 과연 그릇되지 않은 선수들의 조합임을 알겠더라. 그리하여 서두부터 결말까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야기를 계속해갈수록 마침내 북받쳐 오르는 격한 감정을 차마 억누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감별사로서의 냉정한 분별 되찾은 지금에도 <사도>의 관람 가치는 근래 나온 한국 영화 ‘수작’들 중에서도 단연 출중함을 능히 알겠더라.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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