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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8 18:37 수정 : 2015.11.30 11:07

‘우리동네 특공대’의 진지함, 펑키한 비주얼은 <아메리칸 울트라>의 핵심 매력이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아무리 포스터, 제목, 배우, 예고편 등을 노려보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도 볼까와 말까 사이의 균형이 좀처럼 깨지지 않는, 이런 <아메리칸 울트라> 같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우리는 이 영화의 [볼까 포인트]를 ① 주연 남녀배우 ② 생활밀착형 스파이 액션 ③ 스토리 및 비주얼에서의 참신함, 그리고 [말까 포인트]를 ① 과도한 독특함의 오류 ② 과도한 잔혹함의 오류 ③ 저예산스러움의 오류, 각각 세 가지로 잡고 감별에 착수한다.

우선 [볼까 포인트] ① 주연 남녀배우인 제시 아이젠버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포스터를 각각 좌청룡 우백호 하고 있을 만큼 영화의 양대 핵심이라 할 것인데, 각자의 라이방 걸치고 있는 얼굴까지는 제법 스파이스럽다만, 그 아래로 이어지고 있는 적색 체크무늬 상의와 후줄근한 회색 란닝구(러닝셔츠가 아님)는 아무래도 액션인보다는 생활인스러워 보인다. 더구나, 그나마 샷건을 손에 들어 액션인 꼴을 갖추고 있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는 달리, 제시 아이젠버그가 손에 들고 있는 소품은 다름 아닌 밥숟가락인 것이다!

이 밥숟가락의 영문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논하도록 하고, 아무튼 아이젠버그는 이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스튜어트는 비교적 심각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 배합은 상당히 멋진 것이었다.

특히 시골 동네 마트 알바로 근근 먹고사는 아마추어 만화가이자 공황장애 환자라는 매우 취약한 삶 영위하던 주인공 ‘마이크’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4억달러짜리 초첨단 액션스파이로 ‘가동’(activate)되면서 벌어지는 점입가경적 각종 상황은 당연하게도 예상되는 코믹함뿐만이 아니라, 넉넉잖은 현실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풋풋한 청춘남녀적 서정성까지 가미되면서 이런 카인드 오브 영화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코믹 일색의 오류’, 즉 완급 없이 시종 웃기려고만 들다가 제 개그에 제가 지쳐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는 우를 영리하게 피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코믹 장면에서 굳이 코믹하려 들지 않는 두 배우의 촌티 없는 연기와, 대사보다는 상황을 통해 코믹함을 만들어내는 시나리오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사실 아이젠버그는 지금까지 <소셜 네트워크>나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 등에서 발군의 고속대사 능력을 앞세운 고지능형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연약하고도 심약한 시골 청년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내가 최종병기였네? 깜짝이야를 성공적으로 연기해냄으로써 출연 영화마다 대동소이 그게 그거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특히 밥숟가락, 컵라면(한글 로고 선명한), 프라이팬, 폭죽, 그리고 각종 마트 진열 상품들을 즉석 무기화시키는 그의 ② 생활밀착형 스파이 액션은 ‘제이슨 본’ 시리즈의 법통을 코믹 계열로 이어받으면서도 나름의 독창성과 카리스마까지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트와일라잇>(물론 1편)에서 능히 보았던 스튜어트의 풋풋함은 그러한 아이젠버그의 예측불허스러움을 효과적으로 중화시키며 영화를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지 않도록 붙들어 매어주고 있어, 두 배우의 조합은 매우 바람직했다 하겠다.

또한 영화의 ③ 비주얼 또한, 뭐, 대단히 독창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야 없겠다만, 상당한 재치와 펑키함을 선보였다 하겠는데, 특히나 마지막 엔드 크레디트와 함께 별책부록 삼아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보통의 상업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함을 보여준다.

더불어 대사 또한 양보단 질로 승부하는 치고받는 맛 쫀쫀한 것이었던바, 무엇보다도 남녀 주인공이 저 멀리서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을 보며 자신들의 관계를 ‘자동차와 나무’에 비유하여 읊조리는 대사는 비록 미량이긴 하나 시적인 운치까지 풍겨주며 호감도를 부쩍 높여주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 그 자체에 있어서는 <아메리칸 울트라>는 그다지 울트라하지 않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최근 스파이물들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 즉 독창적 스토리가 아닌 기존 스토리를 주무르며 노는 맛에 주안점을 두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 거론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말까 포인트]들, 그중에서도 특히 ② 과도한 잔혹함의 오류는 매우 중차대하다. 내가 당하지도 않았는데도 비명 및 신음 절로 나오는 각종 잔혹 장면들은, 물론 이 영화가 추구하는 ‘펑키한 감수성’의 일환이라 할 것이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찌르고 꿰고 베고 날리는 그런 장면 딱 싫다는 신조 평소 고수하시는 관객께서는 이 높은 잔혹도를 부디 염두에 놓고 관람 여부를 판단해주시길 바라 마지 않는다.

또한, 결코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처럼 세계 각국 섭렵하는 범대륙적 로케이션 없이, 시골 마을과 랭글리의 시아이에이(CIA) 본부, 두 공간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③ 저예산스러움 또한 반드시 고려하실 포인트다. 뭐,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런 우리동네특공대스러운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만….

한동원 영화평론가
하지만 이 감별사가 개인적으로 꼽는 가장 결정적인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상영시간이다. 요즘으로선 정말이지 드문 100분이 채 안 되는(95분) 깔끔한 상영시간에도 나름 할 건 다 해주고 있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 최고의 강점이자 매력이다.

요즘 영화들은 다들 너무 길어. 쓸데없게스리.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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