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비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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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극비수사’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단호하게 대처하는 북한 관련 사안을 뺀 웬만한 일은 다 조용히 넘어감으로써 전국민의 인격도야와 득도성불의 기회를 전혀 뜻하지 않게 제공하는 은둔보살형 정부각처를 둔 덕분에 전국민이 재난영화에 출연중인 요즘, 극장에 가는 일조차도 상당한 결단력을 요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연기뿐 아니라 시나리오와 연출까지 전부 공룡들이 맡은 건 아닐까 강력히 의심되던 <쥬라기 월드>가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 감별사는 누가 묻지도 않은 책임을 깊이 통감하며, 갓 출하된 곽경택 감독의 영화 <극비수사>의 당도 및 선도 및 영양가를 감별해 올리는 것으로 직무태만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고자 한다.
일단 아직까지는 <친구> 이외의 작품으로는 그닥 기억되지 않는, 그럼에도 항상 왠지 모를 기대를 품게 만드는 곽경택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김윤석, 유해진이라는 신뢰도와 내공 높은 두 배우의 공동 출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 최고의 핵심은 ‘형사와 점쟁이의 유괴사건 공동수사’라는 상당히 솔깃한 실화를 소재로 채택했다는 점일 것이다. 필자는 두어해 전 <한겨레> esc에 ‘나의 점집문화 답사기’를 연재하는 등 평소 점집이라는 제도에 관심이 많은지라 유해진이 연기한 ‘김중산’ 캐릭터, 즉 ‘점쟁이 파트’에 특별히 감별의 초점을 맞췄는데, 사실 이 대목이야말로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실 대목이라 여겨진다.
자, 여기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영화 하나가 있다. 그렇다. <살인의 추억>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맡게 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라는 핵심 설정에서 거의 자매품이라 해도 무방할 두 영화는, 심지어 두 주연배우의 얼굴을 나란히 박아넣은 포스터에서마저 유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그러나 점쟁이에 대한 입장에서 두 영화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에서 점술은 ‘무능한 경찰이 답답해진 끝에 벌이는 삽질’임과 동시에 점술자는 ‘그에 편승해 돈 챙기는 준사기꾼’이었다. 하지만 <극비수사>에서의 점술은 ‘유능한 경찰이 답답해진 끝에 만난 돌파구’임과 동시에 점술자는 ‘그와 한배를 탄 유일한 동료’다. 다시 말해서 <극비수사>는 점술자를 사기꾼이 아닌 ‘특수직능 보유자’로 대우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런 식으로 점술을 완전 긍정하고 들어가는 태도는 ‘미신숭배’와 ‘혹세무민’이라는 비난에 노출될 위험을 그대로 안게 된다. 하여, 이는 호러나 코미디가 아니라면 그다지 선호하는 태도가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알리바이를 준비해뒀다. 하나는 ‘진짜 도사’에 대한 대조군으로서 돈만 밝히는 ‘사짜 도사’를 배치해둠으로써 사기성 점쟁이에 대한 일반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력하고도 결정적인 포인트는 영화의 헤드카피도 사뭇 강조하고 있듯 ‘1978년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이다. 미신이건 혹세무민이건 뭐건, 뭐 어쩔 거야,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데야. 월남전에서 자신과 전우들을 지켜준 ‘영험의 방탄 스타킹’에 대한 얘기를 쓴 소설가 팀 오브라이언이 정확히 지적했듯 ‘팩트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수는 없’는 것이다. 더불어 이 ‘점쟁이’ 카드에 더해 ‘그라나다 V8’, ‘포니’, ‘브리사’ 등 추억의 옛날 차는 물론 고속도로 ‘유공’ 주유소부터 길거리의 간판 하나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대충 넘어가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1978년을 재현한 미술과 의상 또한 당 영화의 당도를 한껏 높여주는 포인트 중 하나라는 점도 언급해둬야겠다.
하지만 문제는 선도다. 앞서 말했듯 복고적 배경부터 정반대의 두 남자의 합동수사라는 점까지, 이 영화의 외관은 <살인의 추억>을 곧장 떠올리지 않으면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라도 당할 것 같은 형국인데, 그렇다면 대체 이 영화만이 보여주는 신선함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뚜렷한 답을 보여주지 않은 채 약 한 시간을 느슨하게 보낸 영화는, 하지만 마침내 중반부부터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바, 말하자면 ‘합리 대 불합리’의 영화였던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극비수사>는 ‘인간 대 비인간’이라는, 어찌 보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 구도를 제시한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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