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구 감독의 <은밀한 유혹>은 재벌과 신데렐라 이야기를 핵심 골자로 서스펜스를 가미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따라서 이 영화의 승부처는 임수정과 유연석, 이경영이 연기하는 캐릭터다.
|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그 닳고닳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핵심골자로 표방하고 있는데다가 ① 늙고 병들고 성격 매우 나쁜 초재벌 ②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초재벌의 새장가를 기획하는 그의 아들 겸 비서 ③ 그 기획음모의 ‘배우’로 투입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주요 인물 설정만 들어도 대략 93퍼센트 이상의 그림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임수정과 유연석의 공동 출연, 그리고 <세븐데이즈> 각본가의 시나리오 및 연출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관심을 놓을 수 없던 <은밀한 유혹>.
하여, 결국 당 영화의 핵심 승부처는 캐릭터일 텐데, [① 재벌 회장님] ①-1 얼마나 재벌스런 면모를 실감나고도 상상 초월하게 보여주는가. 또한 ①-2 절대로 아무하고나 결혼하지 않을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가. 더불어 ①-3 성격 및 행동거지가 얼마나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유발시키는가. [② 젊은 여성] 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성공시켜내야 할 배우 역의 여성이 얼마나 매력적이면서도 영악해 보이는가. [③ 음모기획남] 그런 그녀를 캐스팅하고 배후조종할 아들 겸 비서의 계획 및 연출이 얼마나 기발하고도 치밀할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자, 일단 ① 재벌. <은밀한 유혹>의 재벌은 마카오 카지노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주장되는 초재벌인데, 이런 소개의 말씀 듣는 순간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궁금증은 ‘그런 초재벌은 어떻게 사는데?’일 것이다. 이에 대한 영화의 답은 다음과 같다. 요트에서 살아요.
이는 인간세계가 싫어서 착륙 않는 전용제트기에서 여생을 보내던 <콘택트>의 극재벌 ‘해든’의 라이프스타일과 제법 흡사한데, 그가 지병이 악화되면서 결국 러시아 우주정거장을 최종거주지로 택하는, 그야말로 극재벌스런 면모를 과시하였던 것과는 달리 <은밀한 유혹>의 회장님은 그냥 내내 요트에서만 산다.
그가 거기에서 영위하는 취미생활 또한 장기 한판, 낚시, 남의 수영 구경(이는 물론 주연배우들의 비주얼 팬서비스를 위한 알리바이), 남의 춤 구경(상동) 등등인데, 그것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것이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회장님의 다음 취미 행각으로 오목이나 알까기가 등장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함만 안겼을 뿐.
또한 ‘매우 더럽다’고 주장된 그의 성격은, 물론 그다지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만, 그저 버럭버럭 말투에 돌발성 히스테리를 부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이를 보강하기 위해 무슬림 하인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는 등의 만행을 추가 삽입한다만, 솔직히 내가 초재벌의 재산을 노린 기획결혼을 작정한 여자라면 그 정도로 “저 사람하고는 절대로 결혼 못 하겠어요!!”라는 대사(실제 대사다)를 흩뿌리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내 기필코 유산상속에 성공해서 저 무슬림에게 편한 여생을 보내게 해주리’라며 전의를 불사르면 불살랐지.
그런 식으로 ②번, 여주인공의 매력이라는 부분에서도 이 영화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금 여주인공의 ‘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자고로 이런 카인드 오브 여성이 갖춰야 할 ‘매력’이라 함은, 목표남이 당하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정신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신적 장악력인데, 여주인공이 회장님 장악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담배 달라고 떼쓰는 회장님 말 안 들어주기, 하인에 대한 회장님의 히스테리 저지하기, 회장님 장기 두시는 데 감히 훈수 두기, 그리고 아예 장기를 둬서 이겨버리기 정도인바, 장기… 뭐, 그래, 장기에 지면 아무래도 약이 오르고, 상대가 미워지고, 뭐 그러다 보면 정이 들고, 뭐 그럴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장기는 좀….
아무튼 ‘돌아가신 사모님 흉내’를 위한 장치마 위주의 여주인공의 패션 또한 그다지 호소해오는 바 없는 가운데, 회장님의 히스테리에 극심한 정신적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여주인공을 다독이며 다그치는, 회장님의 아들 겸 비서, 즉 ③번, 이 음모의 기획자는 어땠던가 하면, 그가 꾸민 ‘치밀한 계획’이라는 것 역시 초반부터 이후의 전개가 거의 84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로 예상되는 뻔한 것이었는데, 그런데, 영화 중후반께에 등장하는 그의 ‘돌변’을 설마하니 충격반전이라고 내놓은 것은 아닐 거고. 에이. 설마.
이쯤에서 수많은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만 일단 떠오르는 대로, 괴팍 오싹하고 오만 정나미 다 떨어지는 극재벌로는 <폭스캐처>의 ‘존 E. 듀폰’을, 목표남을 완전히 들었다 놓는 가공할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는 <매치스틱 맨>의 ‘앤젤라’를 10으로 놓고 볼 때, <은밀한 유혹>의 캐릭터들은 대략 1에서 2 사이를 오간다는 말씀으로 최종 감별 결과에 갈음한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