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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18:06 수정 : 2019.11.30 14:09

배정한 ㅣ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10년밖에 안 된 광화문광장을 1000억원을 들여 2021년 5월까지 뜯어고치는 서울시의 구상이 올해 초 가시화된 뒤 사업의 당위성과 과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왜, 누구를 위해, 지금 고쳐야 하는가. 전시성 공간 정치 프로젝트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마침내 지난 9월 박원순 시장은 광장의 주인인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의견 수렴 과정을 더 가질 것이며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업 중단이나 취소도 가능하다고 해석될 법한 박 시장의 발표 이후 서울시는 시민, 지역주민, 전문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형식의 토론회를 열고 있다. 연말까지 총 14회를 연다고 한다.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운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속도가 불안하지만, 소통과 공론화를 향한 이런 전향적 노력은 바람직하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 속도보다는 방향, 결과보다는 과정을 존중한다는 박 시장의 정치철학에도 걸맞다. 적어도 광속으로 직진해 졸작으로 귀결되고 만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숨가쁘게 이어지는 일련의 토론회에 대해 결국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강행을 전제로 사업의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는 불신이 적지 않은 것이다. 지난주에 열린 전문가 토론회 ‘광화문광장의 역사적 위상과 월대’에 패널로 초대받고 한참을 망설였다. ‘답정너’ 토론회라면 굳이 개진할 의견이 내게는 없었다. 여러 지면을 통해 펼친 반론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장고 끝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월대’(궁전 건물 앞에 놓는 넓은 단)라는 구체적 주제를 두고 전문성 있는 토론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전근대 조선 왕궁의 월대 복원이 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명분 중 하나인지, 서울시가 말하는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란 무엇인지 치열한 공방이 오가기를 기대했다.

아쉽게도 이날 내가 복습한 것은 월대가 왕의 공간과 신민의 공간을 구별하는 동시에 연결하는 기능을 했다는 점, 그리고 30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을 완성하려면 월대의 복원이 중요하다는 점 정도였다.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자리에서 수차례 던진 질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왜 역사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봉건 왕조의 궁궐 앞터를 되살리는 일에 2019년의 민주공화국을 사는 우리가 집착해야 하는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888년에야 중건된 뒤 30년 남짓 지탱된 장소가 왜 미래의 서울이 지향해야 할 순수의 원형인가.

조선에 머무르는 광화문광장 계획은 복고적이고 수구적이다(홍면기). 역사성 회복이 동시대에 설득력을 지니려면 과거의 가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에 복무해야 한다(염복규). 이제는 광화문 일대의 역사적 위상이 중요하다는 인식 자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제 제시의 기회를 다음 세대에게 줄 때다(장지연). 토론에 함께 참여한 패널들의 이런 날카로운 의견 덕분에 이날 행사가 답답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토론회를 더 의미 있게 한 것은 청중석 시민들의 목소리였다. 시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서 왜 내년 예산안에 공사비 600억원을 배정했는가. 월대와 해태상도 역사지만 10분 차이를 걱정하며 출근하는 우리의 일상도 소중한 역사다. 월대 복원을 위해 사직로를 막는 재구조화에는 치열한 과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답정너’ 토론회를 원하지 않는다면, 서울시는 이런 수많은 ‘너’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그치지 말고 답 자체를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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