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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2 17:43 수정 : 2019.11.23 14:16

노광우 ㅣ 영화칼럼니스트

코믹 공포물 <좀비 랜드: 더블 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좀비영화는 최근 자주 만들어지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다. 좀비는 카리브해 아이티섬의 민담에서 유래했다.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래, 카리브해 지역에는 원주민과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삼은 플랜테이션이 성행했다. 원주민과 노예 사이에서 주술사가 시체를 움직이게 하고 중노동을 시켰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영혼 없이 주인의 명령대로 중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그런 상상 속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산업화된 근대 서양의 과학소설에선 로봇이 노동을 대신한다. 통제된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로, 자원을 채굴하는 식민지 주변부에선 주술적인 좀비를, 자원을 가공하는 제국주의 중심부에선 기술로 무장한 로봇을 상상해낸 것이다. 이들은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좀비와 로봇의 중간적 존재가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이다. 이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공동묘지에 묻힌 시체 한 구를 실험실로 가져와 번개의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부활시킨다. 그런데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부활한 시체는 외견상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형태만 다를 뿐 모두 고된 노동과 관련돼 있다.

좀비를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현대적 괴물로 확립한 것은 조지 로메로의 영화 <나이트 오브 더 리빙 데드>(1968)다. 좀비는 주술이 아닌 공해와 오염과 같은 과학기술의 재앙으로 인해 발생한다. 사람을 물고 내장을 파먹는 식인성과 좀비에게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된다는 전염성이 더해졌다. 늑대인간은 은으로 만든 탄환으로 심장을 쏴서 죽이고 흡혈귀는 마늘이나 햇빛으로 퇴치하는 것처럼, 좀비의 퇴치 방법은 몸통이 아닌 머리를 쏘는 것으로 설정했다. 좀비가 증가하는 만큼 인류는 감소한다. 좀비의 창궐은 재난영화와 같이 인류의 위기를 의미하고 등장인물의 가족적 유대를 강조한다. 좀비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좀비에 물린 친지에 대한 애정 때문에 좀비로 변해가는 친지를 죽일지 망설이곤 한다.

좀비는 인격과 영혼이 없고 오로지 식탐만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 월등한 초자연적 신체 능력은 없다. 이는 인격과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존재인 늑대인간이나 흡혈귀와 다른 점이다. 늑대인간이나 흡혈귀는 인간처럼 자기들끼리의 계급과 서열이 있다. 늑대인간과 흡혈귀는 자기 처지와 한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뇌하는 존재이고, 인간과 교감하기도 한다. 또한 늑대인간과 흡혈귀는 퇴치될 때에는 죽음과 소멸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늑대인간과 흡혈귀는 여러모로 인간적인 특성이 있고 때로는 매력적이고 섹시한 존재로 그려진다.

좀비영화가 인기 장르로 부상할 수는 있지만, 좀비 그 자체는 사실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좀비는 채워지지 않는 식탐 때문에 항상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하지만 자아가 없기에 다른 좀비들과 충돌하지도 않는다. 좀비는 사회적 욕망이나 목표가 없기에 사회생활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오로지 군집생활을 하거나 무리에서 이탈해 혼자 돌아다닐 뿐이다. 좀비는 영화의 주인공과 감정적 교감도 하지 않고 제거될 때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 식욕만 해결하면 그만이고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노동의 수고에서 벗어나 타인과 교감하고 때로는 신분 상승을 꿈꾸기도 한다. 어떤 이들에게 좀비는 괴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좀비는 사회적 관계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공포영화 속 괴물은 어쩌면 인간의 욕망이 뒤틀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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